성장의 미묘한 차이
저학년과 고학년의 차이는 뚜렷했다.
처음에 친해지기 좋은 아이들은 저학년 아이들이었다. 낯가림이 고학년보다 덜하고, 선생님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고작 한 두 학년 차이었는데 저학년과 고학년의 차이는 꽤나 강렬하게 느껴졌다.
고학년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나 또한 조금 더 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쭈뼛함이 있었지만 그들 또한 나에게 말 걸기를 낯설어하였다.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말없이 위험할 때만 “뛰지 말자! 위험해! 다쳐 “ 이 정도의 소통만 하였다. 친하지 않아서인지 내가 카리스마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곧장 잘 들었다.
초반에는 저학년 아이들과 놀다가 은근히 주위를 맴도는 고학년 아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트는 순간 오! 하는 느낌을 받아버린다.
저학년 아이들은 얼핏 보면 쿨 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아직 아이 같은 면모가 있다. 특히 1학년들은 초등학생의 면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은근히 유치원 아이들의 특성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2학년은 그보다 조금 더 독립적이고, 3학년부터는 완벽하게 자아가 형성된 것처럼 담백한 모습이었다.
이런 말을 해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진정한 교사는 아니니 소신 발언을 해본다.
3학년부터는 장난치기 딱 좋은 학년이었다.
그들과 놀면서 사실 현타가 많이 왔다. 내가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놀아주는 것인지, 내가 그들과 놀아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행복감에 미쳐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나는 여전히 순수하고도 어린 마음을 가진, 어른인 척하는 어른일 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팍팍한 세상 속에서 어른인 척 억지로 살아왔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어린아이들이다. 하지만 조금 더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그리고 사회 속의 일원이 되어 쓸모 있기 위해서 아등바등 책임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아무 책임도 갖지 않는다면 대부분 중 일부의 사람들은 유년기로 돌아가버릴 것이다.
성장하지 않았지만, 사회의 요구에 의해 성장한 척 철든 척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희철 우진 VS 지윤 재현
희철과 우진은 3-4학년이다. 지윤과 재현은 1-2학년이고, 외적인 성장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희철이는 학년에 비해 작은 편이었고, 재현의 경우에는 학년에 비해 큰 편이었다. 그렇지만 게임 한판이면 저학년 고학년 차이는 확연했다.
그중에서도 희철과 재현의 학년 차는 확실했다. 그것은 규칙 준수 여부에 있다. 고학년일수록 지든 이기든 규칙 준수가 확실하다. 하지만 저학년은 규칙은 잘 지키지만 규칙을 잘 지키다가 자신이 지는 상황이 반복되면 쉽게 표정에 드러난다던가 혹은 반칙을 쓰는 경향이 종종 있다.(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자기 조절이 잘되고 안되고의 차이였다. 확실히 성향차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희철이는 정말이지, 장난꾸러기였다… 하루에 한 명 이상은 꼭 울렸다. 말 그대로 힘이 넘치는 아이.
우진이라는 친구는 학년에 비해 조금 큰 편이었다. 첫날부터 가끔 눈이 마주치긴 했는데, 인사만 했지 그 아이도 늘 쭈뼛거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말을 트게 된 것이다. 희철이와 게임을 하다가 우진이가 옆에 온 것이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같이 게임을 하게 됐는데, 아마 우진이는 나에게 말을 걸고 싶었는지, 말을 할 때마다 표정이 밝아졌다.
그 이후로는 거의 또래처럼 놀게 되긴 했지만….
우진이는 그다음부터 나만 보면 장난을 걸어왔다. 그럼 나는 적당하게 반응해 주고 도가 지나치면 자제를 시키는 것이었다.
우진이의 가장 큰 장점은 ‘인정하는 아이’라는 점이었다. 승부욕이 넘치는 아이도 있었다. 게임을 하다가 선생님을 위해서 배려하는 경우는 많았다. 이 부분이 매우 신기한 부분 중 하나였다. 아이들은 의외로 또래 아이들에게는 팍팍하지만 선생님한테는 양보해 주거나 져주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은 그러하지만, 또래들한테는 잘 지지 않는다. 자신이 이겨야 하는 승부욕이 있다. 하지만 우진의 경우에는 승부를 확실하게 인정하는 아이였다.
‘팝잇’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톡톡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그것을 하면서 (채원)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4학년이었지만 소극적인 여자아이 었다. 그 친구와 톡톡이 놀이를 하고 시간을 재고 있었는데, 우진이가 다가온 것이다. 나와 채원이가 그 놀이를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진이는 채원이를 보며 “와! 너 진짜 천재 아니야?” “엄청 빠른데?” “와 선생님 얘는요. 신인 거 같아요! 진짜 빠르네” “와 내가 못 이기겠다” 이런 식이 었다. 채원이는 빠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 빠른 것도 아니었다. 소극적인 채원이를 위해 나는 그녀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중이었고, 그에 우진이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비슷비슷한 시간대였지만, 우진이는 0.0001초 차이를 가지고 채원이의 자존감을 올려주었다.
그때 우진이라는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흐뭇함으로 바뀌었고 아이에 대한 호감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었다.
선생님들은 욕심이 많은 아이들을 쉽게 구분한다. (나 또한 욕심이 많았으니, 이제쯤 어린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욕심만 많은 것과 욕심이 많아서 뭐든 열심히 하지만, 결과는 쿨하게 인정하는 아이는 차이가 있었다. 우진이는 그런 아이였다. 어쩌면 자존감이 높은 아이일지도 모르겠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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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른의 도피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