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내용 따위에는 관심 없고, 가르치는 사람의 생각을 배우려 한다
"어른하고 이야기할 때는 닥치고 조용히 들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많은 시간이 흘렸다. 어느덧 비슷한 걸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의 말에 60%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어느 때와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대화의 주제는 마침 뉴스에 나오는 HMM의 이야기가 되었다. 회사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주식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질문을 하였다. 팬오션이라는 회사가 HMM을 인수하려고 했었는데, 무엇 때문에 인수하려고 하고, 왜 인수하지 못했으며, 인수에 성공했었다면 지금 쯤 어떻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최대한 대답을 하는 데 있어서 부담감이 없는 표현을 썼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먹혔다. 전에는 "네가 곰곰이 생각해 봐"라고 했었지만, 이번에는 나름의 생각을 알려주셨다.
아버지가 바라보시기에,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다.
1. 예초에 인수할 생각이 없었다.
2.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다르지 않게, 인수에 실패한 것이다.
"예초에 인수할 생각이 없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아버지.
아버지가 과거 사업을 시작할 때, 왕왕 사용했던 방법론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업체를 인수할 때, 판매 측은 본인의 사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가격을 측정하고 협상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업체의 상황과 운영방향성을 벤치마킹해 온다는 것이다. 그렇다 처음부터 살 생각도 없었고, 살 수 있는 자금도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바라보시기에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하셨다. 다만, 이 실정을 기업체에서 모를 리가 없다. 해운이라는 거대 기업의 노하우를 공개하는 것은, 그것도 경쟁업체에게 공개하는 것은, 그만한 리스크가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것과는 좀 다르다고 바라보신다.
기업체는 협상우선권이라는 것을 만든다.
협상우선권이 뭔가요?
솔직히 들어본 적 있는 말이고, 나름의 정의한 바도 있지만, 모르는 척 닥치고 듣기로 했다.
아무에게나 기업체의 협상권리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충분히 본 회사의 자본금이 HMM을 인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증빙을 해야 한다. 아버지는 이걸로 예시를 들어주었다.
협상을 위해서 총 3조 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팬오션이라는 회사의 현금자산 1조, 그 위에 하림그룹에서 1조, 그리고 사모펀드에서 1조를 마련한다. 이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가기 위해서, 자산을 오픈하는 과정 자체를, 기업에서는 전략으로 채택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그러면, 자금상황을 노출하면서 주가상승을 노렸다는 말인가요?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2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이는 게 전부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죠?
"전문 경영인과 책임 경영인"
HMM이라는 회사의 주인은 기업은행이다. 그 회사를 매각해야 하는 이유는, 기업은행이 전문 경영인이기 때문에, 성장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때문에 회사의 값이 높을 때, 매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관점이다. 이 관점을 이해하려면, 판매자가 누구인지 바라보아야 한다. 판매자를 상상해 보아라, 이 판매자는 60대 기업은행의 총수, 정년퇴직을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런 삶에 있어서, 회사를 높은 값에 팔고, 이제는 안정적인 노후를 추구할 것이라는 시점이다.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이해하는 척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하지만, 다른 관점도 있다. 기업체가 시장에 자신의 기업의 시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떠본걸 수도 있다는 관점이다. 때문에 예초에 팔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업 시가를 알아보고, 회사의 성장성을 바라보았을 때, 조금 더 후에 높은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협상을 미뤘을 수도 있다는 관점이다.
사실 잘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의 말을 60% 정도 이해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가르침이 있었다. "어른하고 이야기할 때는 닥치고 조용히 들어야 한다.", 나의 말을 아끼지 않고 구구절절 끼어들었다면, 나는 내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판매자가 누구인지 바라보아야 한다. 판매자를 상상해 보아라, 이 판매자는 60대 기업은행의 총수, 정년퇴직을 바라볼 수도 있다."이라는 관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내가 "가르치는 내용 따위에는 관심 없고, 가르치는 사람의 생각을 배우려 한다"는 자아를 관찰결과이다.
내가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종종 말 끊는 사람에게 지쳐서, 나의 정보를 더 이상 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비록 자식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이를 염두에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