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십 대 2부

(1989~1998)

by 한수남

동아리의 시 쓰는 선배들은 내 시의 독특한 점을 좀 인정해 주었다. 특히 바다 정서인 점이 개성 있다며 좋은 평가를 해주었다. 하지만 내 삶이 너무 평범하다고 했다. 시를 쓰려면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거나, 출생부터 성장까지 남다른 비밀이 있거나, 그도 아니면 박노해 시인처럼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시를 쓰는 생활이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고만고만하고 평범한 건 선배들도 마찬가지 아니냐며 나는 날선 목소리로 대들었다.

그 시절의 내게는 목가적인 시, 전원생활에 대한 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들은 거의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런 고리타분한 서정시의 시대는 갔다고 어느 합평회 자리에서 말했다가 어느 선배와 대판 말싸움을 하기도 했다. 나는 이상의 초현실주의 시들을 읽었고, 기형도(1960~1989)의 시집을 끼고 다녔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두꺼운 미술 서적에 들어있는 명화들을 구경하거나, 프랑스의 천재 시인 랭보나 보들레르의 시를 읽었다. 때로는 방탕했지만 천재적이었던 그들의 예술 세계를 막연하게 동경했던 것 같다. 2학년 2학기에 휴학을 한 학기 하고 이곳저곳 바닷가로 여행을 다니다 다시 학교로 복학한 나는 사범대 건물에는 수업 외에는 거의 가지 않고 서클룸(동아리방)에만 출근도장을 찍고 있었다.


그 무렵 우리에겐 연이은 죽음이 있었다. 동아리의 선배 한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던 밤의 빗길에서 뺑소니 트럭에 치여 즉사를 한 것이다. 선배의 무덤은 야트막한 야산에 만들어졌고 땡볕 아래 줄지어 선 우리는 막 만들어진 무덤의 붉은 흙 위로 막걸리를 조금씩 돌아가며 부어 주었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농대에 다니던 여자 후배가 급성 폐렴으로 죽었다. 기말고사 때문에 입원을 미루던 그녀는 시험을 치러 가던 등교길의 버스 안에서 객혈이 기도를 막아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했다. 우리는 우르르 화장장(火葬場)으로 몰려가서 그녀의 시신이 관 안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고 화장(火葬)을 마치고 한 줌의 뼛가루로 변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 보았다.

사회적으로도 젊은이들의 연이은 죽음이 있었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학교 앞에서 시위 도중에 1학년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의 무차별 폭행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터지고 난 후 1991년(당시 나는 대학교 3학년) 5월투쟁이 이어지는데 수많은 대학생들이 연이어 자살을 했다. 약 10명의 대학생들이 분신하거나 투신을 했는데 젊은이들의 죽음이 신드롬처럼 이어지던 이 현상을 두고 '분신정국'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 때 시인 김지하(1941~2022)는 생명사상을 이야기하면서 젊은이들이 죽음으로 맞서는 것은 옳지 않으니 생명을 귀하게 여기라는 칼럼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를 조선일보에 실었는데 이것 때문에 변절자로 불리게 된다. (후에 그는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을 탄압했던 독재자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안타깝게도 ‘변절’ 논란을 더욱 확고히 하고 만다. )


하지만 나는 김지하 시인에 대해 할말이 많은 일인이다. 내가 40세의 늦은 나이로 겨우 겨우 등단(제 1회 목포문학상)이라는 관문을 넘을 때, 내 시를 뽑아준 분(심사위원)이셨으며 살아계실 때 꼭 한 번 만나뵙고 싶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전화로 대신하고 말았던, 많은 후회가 남는 은인이시기 때문이다. 얼마 전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그당시에는 너무 이른 시기상조가 아니었던가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무려 40여년 전 우리에게는 생소했던 생명운동과 생명사상은 이젠 우리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화두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40대에 '김지하시인' 이야기는 다시 나오므로 여기서는 이쯤에서 생략한다.)


이런 정신 없는 와중에 내가 붙들고 싶었던 것은 오로지 시(詩)였다. 국어교육과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모든 수업이 '실제 수업 현장에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로 귀결되어 정작 작품의 해설에는 수박 겉핥기처럼 넘어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시를 배우면 나는 그 시 한 편에 들어있는 시인의 정신세계에 대해서, 그 시를 쓴 시인의 삶에 대해서 뼛속 깊이 알고 싶었으나 그런 공부는 사범대에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나는 차라리 국어국문과나 문예창작학과를 갔더라면 하는 후회에 시달리기도 했다.

나는 대학4학년 때 동아리 회장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우리 국어교육과 친구들은 열심히 임용고시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캠퍼스 화단 구석에 시화전이나 펼쳐놓고 파리나 쫓으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내가 시화전에 낸 시는 제목이 '해인(海人)'이었는데 후에 이 시의 제목을 '해녀'로 바꾸어 목포문학상에 응모한 것은 40세 때의 일이다. 시인에게는 평생을 고치고 있는 시가 있기도 한데 내게는 이 시가 그러하다. 시화전은 파리나 날리고 있었다고 기억되기는 하지만, 우리 과(科) 어느 후배는 내 시를 보고서 액자 앞에 그만 털썩 주저앉았다고 하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으니 전부 실패한 것은 아니었던 나의 20대였나 보다.

12월이면 신춘문예에 응모하느라 몰래 우체국에 가서 등기우편을 보내보기도 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당선 소식은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나간 학원에서 남편을 만났고, 만난 지 두달 만에 강한 운명의 힘을 느끼며 결혼식을 올렸다. 1995년 11월 늦은 가을에 결혼을 하고(당시 26세) 1996년 10월, 첫 아이를 얻었다. 이 모두가 이십대에 일어난 일이다.




해녀 / 한수남


혼백 상자 등에다 지고

가슴 앞에 두렁박 차고

한 손에 빗창 쥐고

한 손에 호미 쥐고

한 질 두 질 수지픈 물속

허위적 허위적 들어간다

이여싸나 이여도싸나*


섬에 와서 노래를 배웠다. 민박집 할매는 죽은 할머니와 여러 군데 닮았다

담배도 잘 피우고 욕도 잘하고 이여싸나 이여도싸나

큰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방바닥 장단을 두드리더니

숭한 년, 옆집 살던 과부 욕을 해댔다.

고데구리배 그물이 몸뗑이 감아드는 줄도 모르고 젊은 것이 욕심을 부렸다고,

해삼이고 전복이고 소라고 하나 더 따믄 뭣에 쓸 거냐고,

온 동네 발칵 뒤집힌 사연, 날수를 헤아리다 아껴둔 소주병을 꺼냈다

홍합을 까먹으며 매운 소주를 마시며 섬에 온 지 사흘째 나던 밤이었다

내일 아침배로 어서 떠나라고, 육지가시내 갯바람 들면 탈 난다고 해놓고

뜨건 국물을 자꾸 부어주고 있었다.

열여덟에 시집와서 어언 오십 년 물질 안하고 놀면 몸살 나는 내력을

조곤조곤 털어놓고 있었다.

비닐장판이 익어가는 아랫목 스르르 잠이 들면 꿈에서 꼭

이어도를 볼 것만 같은 밤이었다.

낭창한 허리에 볼그족족 뺨이 붉었다는 그 젊은 과부가 살고 있을까

이여싸나 이여도싸나 이여싸나 이여도싸나

마당가 빨랫줄에 걸린 검정고무옷도 휘잉 휘이잉 슬픈 노래를 부르던 밤이었다.


* 해녀들의 노동요



남은 생(生) / 한수남


또 어떤 사랑이 내 발목을 잡을 것인가

또 어떤 말 못 할 그리움이

꾸역꾸역 목젖까지 차오를 것인가


혼자 먹는 저녁 끝에

창문에 비치는 내 옆모습에 흠칫 놀랄 것인가

드르륵 문이 열리고

또 어떤 누군가가 내 생에 끼어들 것인가

희미해진 지난날의 상처 위에

또 어떤 새로운 상처를 입힐 것인가


불 속에 들어간 쇠처럼

뜨거웠다가 식고, 식었다가 뜨거워지며

얼만큼 강해질 수 있을 것인가


또 어떤 낯선 사랑이 나를 지목할 것인가

또 어떤 후회로 말 못 할 사정으로

가슴을 칠 것인가

난데없이 나타난 파란 하늘 흰 구름에

웃을 것인가 조용히 울 것인가



작별 / 한수남


당신이 떠난대도

저는 울지 않고 당신을 잡지 않고 그저

달이나 한번 쳐다보겠어요


유독 정 깊은 달이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는

손이나 한번 흔들어 주겠어요

꽃 지는 봄도 가고 이슬비도 가고

지루한 장마와 폭염 사이에서

쟁글쟁글 태양은 익어갈 테니


당신은 세상의 길목 길목을 좀더 떠돌다가

어느 눈 오는 날 돌아오세요

당신이 이 밤에 기어이 떠난대도 저는

따라나서지 않고 다정스레 웃지도 않고

창밖 어둠이나 평화롭게 쳐다보겠어요. 저는

작은 일에 눈물이 많고 큰 일에는

덤덤하였으므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어느 눈 내리는 저녁 당신이 돌아오면

제 가슴에 쌓인 몇 알의 소금을 꺼내

보여 드리겠어요


다시 당신이 떠난다 해도

이번엔 내가 떠난다 해도


캠퍼스 화단에서 시화전을 하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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