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십 대 1부

(1989~1998)

by 한수남

대학에 들어갔으나, 꿈꾸던 대학이 아니었지

큰 학문(大學)은 무언지 잘 모르겠고

그저 막막한 세상에 던져진 느낌이라

나는 다만 시(詩)라는 그물코에 걸리고 싶었네



1989년 나는 스무살이 되었고, 드디어 대학교 1학년이 되었다. 고3이던 1988년에 88올림픽이 열렸던 터라 올림픽의 열기가 지방 소도시까지 들썩이게 하는 묘한 흥분의 분위기가 있었고, 실제로 그당시 고3들은 입시 준비에 몰두하지 못하고 성적이 곤두박질치거나 술, 담배, 도박, 춤 등 유흥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여학생이라 그랬는지 원래 타고난 성격이 소심한 편이라 그랬는지 다행히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무난하게 학력고사를 치르고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나는 4녀 1남 중에 넷째딸, 위로 언니가 3명에 귀하게 태어난 남동생이 하나 있었으니 등록금이 가장 싸면서 성적은 우수해야 갈 수 있었던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들어가게 된다.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에 들어가고 싶고, 글을 써서 유명한 작가가 되고싶은 막연한 동경은 있었지만 고만고만하게 사는 우리 집 형편에 교사라는 직업은 딸로서는 최선의 선택지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에 들어갔으나 그만큼의 실망감도 분명 있었다. 그동안 학교라는 울타리에만 갇혀있었으니 이제 세상을 좀 알아야겠는데 소위 운동권 선배들은 너무 무서웠고 (종종 삭발시위를 하거나 손가락을 자르거나 시위를 하다 투옥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학교 정문을 통과해야 하는 하교길에는 거의 날마다 빠지지 않고 화염병이 투척되었다. 대한민국 제 13대 대통령이었던 노태우 대통령은 36%의 낮은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그의 대통령 당선에는 김영삼과 김대중, 양김의 분열이 한몫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80년대 말까지는 1987년에 있었던 6월 민주항쟁의 열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시기였는데, 여기에 1990년 사범대학 종합대책안이 발표되면서 나의 대학생활은 아주 이상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사범대학은 입학 때부터 교사 발령이 의무사항이라 졸업과 동시에 교육현장으로 나가 교사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였는데, 사범대학 졸업생은 자꾸 늘어나는 반면에 교육현장에 필요한 교사 수는 적어지니 임용고시를 쳐서 합격한 사람만 교사 발령을 내주겠다는 법(교원임용에 대한 종합대책안 이름하여, 종대안)이 통과됨에 따라 사범대학의 학사일정은 말 그대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우리 89학번을 비롯하여 기존에 사범대학을 다니고 있던 학생에 대해서도 임용고사를 치라고 했으니 임용고사 1세대인 87학번을 비롯하여, 88학번, 89학번들은 당연히 수업을 거부하고 강의실 밖 광장에서 연일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떠했을까, 교사가 되겠다는 엄청난 사명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대의 부당한 현실 앞에 목소리를 높이며 투쟁할 용기도 없었던 나는 결국 이방인처럼 겉돌다가 문학 동아리(그때는 서클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다.)에 들어가서 그나마 눈을 좀 빛낼 수가 있었다. 드디어 내가 할 일을 찾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좀 건방진 후배였다. 점수로는 서울에 있는 S대도 갈 수 있었지만 이런 촌구석 대학에 다니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 입학 때에는 의무발령이라 그나마 교사 자리라도 따놓았던 상황이 뒤집어져 이제 임용고시라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만 교사라도 할 수 있게 된 상황에 대한 불만, 그 밖에 여러가지 불평과 불만들은 자꾸 나를 삐딱한 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내가 들어간 동아리는 시 창작 동아리였는데 매주 한번씩 창작 시를 써와서 돌려 읽고 '합평회'를 했는데 유독 나는 삐딱하고 날선 목소리로 선배들에게 대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가 배경이 된 시 몇 편을 첨부하자면,




삼천포(三千浦) / 한수남


삼천포는 내게

삼천 가지 한(恨)이 서린 땅


소 장수 할아버지

평상 위에 앉아 있다 풍(風) 맞아 쓰러진 땅


젓갈 장수 할머니 젓갈 판 쌈짓돈

소매치기한테 홀라당 털린 땅


중학교 중퇴 아버지

친구들 피해 골목길로 숨던 땅


딸을 내리 넷이나 낳은 울 엄마

꺼이꺼이 미역국 억지로 넘긴 땅


결석한 짝을 찾으러 쥐포 공장에 가면

미자인지 순자인지 그 아이 얼굴도 꼭 쥐고기를 닮아있던 땅


태풍이 사납게 지나간 해는

집도 배도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집도 절도 없어진 사람들 길바닥에 나앉던 땅


스물두어 살 때, 그 바다에 빠져 죽으려고

방파제 끝까지 가서 서 있던 땅


사는 게 뭔지 천지 분간도 못하던

그 시절이 그래도 가장 그리운 땅.



남해 미조 / 한수남


미조항을 아시나요

새벽에 나갔던 멸치 배가 정오쯤 돌아오면

그물에 걸린 멸치를 오달지게 털어대던 곳


저 멀리 수평선은 반짝이고요

은빛 멸치들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착하게 몸을 누이며 쌓여 가며는


눈이 부신 채로

눈이 부신 채로

나 세상의 그물코에 덜컥 걸리고 싶었지요

오랜 방황을 끝내고 당신 앞에 돌아가

반짝반짝 춤을 추고도 싶었지요


미조항을 아시나요

산 것들의 싱싱한 비린내와 함께

잘 삭은 젓갈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는 항구


눈부신 봄날

저와 함께 미조항에 가보지 않으렵니까



진주(晉州) / 한수남


여고 다닐 때

교련복 입고 어설피 간호장교 흉내 내던 시간

삼각건 압박붕대 실습을 너는 유독 잘했다

흙먼지 나는 운동장을 열 바퀴쯤 뛰는 것도

너는 별로 힘들어하지 않았다


개천예술제라

남강에 유등 띄우러 가던 밤

한복 아래 가슴을 꼭꼭 싸매고

한 손으로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촛불이 등 종이에 옮겨 타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강물에 띄워 보낸 등은 모조리 꽃밭 같았다.

그날 처녀애들의 한복은 색이 무척 고왔고

얼굴들이 모두 환한 등불 같았다


남강 옆으로 장어 굽는 냄새 진동하는데

너는 고기와 생선을 안 먹는다고 했다

너는 고향이 함양이었고

나는 고향이 삼천포였다


대학 졸업사진 (1993년 8월의 코스모스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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