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십 대 1부

(1999~2008)

by 한수남

아이의 새까만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듯 배고픈 줄 몰랐지만

어느새 아이는 둘이 되고, 네 식구 끼니 장만에

허둥지둥, 전전긍긍하던 그 시절



1999년 나는 30세가 되었고 아들은 4살이었다. 아이는 밤에 잠을 잘 자지 않았고 전체적인 잠의 총량도 다른 아이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이것이 우유 알레르기가 있어서 뱃속이 불편해서 푹 잠을 못 자는 것인 줄도 모르고 젊은 엄마인 나는 짜증만 냈다. 아이 엄마는 처음인지라 모든 게 서툴렀던 시절이었다. 임용고시에 2차에서 떨어진 나는 생계를 위해 학원 강사를 두세 군데 뛰었는데 학원 수업은 학생들이 하교하는 오후 5시~ 6시에 겨우 시작이 되니 밤 10시 정도가 되어야 끝나는 게 대부분,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가면 밤시간의 힘든 육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1999년은 밀레니엄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였다. 사람들은 새 천년의 기대에 들뜨기도 했지만, 반대로 종말론의 영향을 받아 말세론에 빠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예수를 진실하게 믿는 사람들만 공중으로 들어 올려져서 하늘나라 천국으로 간다고 믿는 이른바, 휴거(携擧)를 기다리며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휴거를 기다리다 결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끝나고 마는 해프닝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으므로 그들이 집단으로 자살을 하는 사건도 일어나는 등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는 뒤숭숭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통 기독교가 아닌 이단적인 주장이었으나, 천년 단위로 연대를 나눠온 기독교 중심의 서양에서는 999년에 그랬듯이 1999년이 '종말의 해' 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정통한 예언자로 불렸던 프랑스 출신의 노스트라다무스가 1999년을 '지구 멸망의 해' 로 예측했다는 강력한 설(說)까지 가세해 '멸망론 신드롬' 을 불러오기도 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2000년 1월 1일에 태양은 눈부시게 떠올랐다.


해마다 신년이 시작될 때 하는 1월 1일의 해맞이가 유명한 행사가 된 것도 그때가 시작점이었던 것 같다. 2000년이 되어 맞이하는 태양은 무언가 다를 것 같았고 사람들은 새 희망에 부풀어 산으로 바닷가로 찾아가서 빼꼼 하고 고개를 밀어올리는 해를 놓치지 않으려고 새벽잠을 설치면서 기다렸다. 당시의 대통령은 15대 김대중 대통령(1998~2003)이었는데 그전 14대 김영삼 대통령(1993~1998)의 말기에 터진 IMF의 영향으로 경기 침체는 계속 이어지던 시기였지만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시기이기도 했다. 김대중은 과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던 군부정권의 위협으로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인물이었다. 하지만 최초의 문민정부를 이루었던 김영삼과 함께 오랫동안 민주 진영의 양대 지도자가 되어 군사 정권에 항거하였고 마침내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루었으며 남북관계의 진전과 사회 전반적인 인권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에는 노벨 평화상까지 받게 된다. 이는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이었다. 양김은 어쨌거나 대통령의 한을 두 분 다 돌아가며 풀고 간 셈이 되었다. (나중에 터진 아들들의 비리가 안타깝지만..정치적인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 하고 싶다..)


아이 엄마들은 아이를 키우는 시기에는 문화적으로는 암흑기가 되기 십상이다. 뉴스를 듣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아이 잠 깨울까 봐 얼른 끄기 예사였고 보는 것은 아이와 함께 보는 비디오테잎 정도였다. 그 당시 나는 아이와 함께 '패트와 매트'(체코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손재주 있는 두 사람이 일상에서 엉망이 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연출함). '배고픈 애벌레' 등을 자주 보았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돌려보았고 아이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모짜르트의 음악도 시디로 자주 들었다. 대중문화에는 암흑기일지 몰라도 그림책이나 전래동요, 클래식 음악 등 고전적인 것을 오히려 가까이 하게 된 시기였다. 그 시절이 모티브가 되었던 시 몇 편을 첨부해 본다.



아기 몸 속에 / 한수남

얼굴은 동글동글 달님

눈은 반짝반짝 별님

입술은 뽈그스름 꽃송이

귀는 쫑긋쫑긋 조개껍데기

손은 보드라운 나뭇잎

발은 꼬물꼬물 올챙이

몸통은 꾸물꾸물 쭈꾸미

배꼽은 막 올라온 새싹

동그란 배에 가만히 귀를 대보면

꼬륵~ 꼬륵~ 시냇물이 흘러가고

꼬르르~ 꼬르르~ 바닷물이 움직이고

작은 아기 몸속에

이 세상이 다 들어있구나

우리 사는 세상이

사람 몸속에 이미 다 들어있구나



미역 / 한수남

바짝 말라 비틀배틀 꼬인 몸통이

물을 만나면 살아난다

싱싱하게 불어난다

적당히 잘린 미역 줄기

참기름 두른 냄비에 들어가 달달 볶이다가

맑은 물 흠뻑 부어주면

뽀얀 국물로 우러난다


기운 없어 누워만 있던 어떤 엄마가

겨우 겨우 일어나 앉아

뜨거운 미역국 한 그릇 훌훌 떠먹더니

이마에 송송 땀이 맺히고

앙앙 우는 아기 달래어 젖을 꺼내어

앙앙 우는 아기 입에 물리면

아, 드디어 뽀얀 젖이 나온다

처음에 시커멓던 미역이

새하얗고 달콤한 젖으로 변했다

아기의 통통한 젖살로 변했다



먹이 / 한수남

어미 새는

모두 공평하게 주고 싶은데

새끼들은

제가 더 먹겠다고 아우성

깍깍깍깍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맛있는 벌레 한 마리 받아먹으면


꿀꺽

하자마자 또 깍깍깍

동생한테 절대 양보도 안한다

어미 새야!

그 애는 금방 먹었단다

옆에 저 작은 새도 좀 줘라

작은 새 한 마리

배고파서 깍깍깍

살아남으려고 깍깍깍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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