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018)
누가 그랬던가, 마흔이면 이제
흔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고.
내 나이 마흔쯤에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흔들렸으나
온갖 비바람 맞으면서 그 뿌리는 좀 더 튼실해지고
가지며 잎새 또한 좀 더 두꺼워졌지
2009년에 드디어 등단이라는 것을 했다. 내 나이 40세, 너무 늦은 등단이었다. 소설 쓰시던 故박완서 작가의 등단 나이 40세를 보면서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로를 삼았던 것이 내게도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틈틈이 시를 써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신춘문예나 중앙문예지 등단은 벽이 너무 높았다. 여름방학 중에 우연히 공모전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목포문인협회에서 주최하는 신인상 모집 공고를 보고 시를 몇 편 추려서 응모했는데 다행히 바다 정서나 여성 정서의 독특함이 개성으로 인정을 받은 것 같았다. 당선 상금은 무려 500만원이었다. (후에 이 상금은 조금 낮추어 조정된 것으로 안다.) 제1회 문학상이었기 때문에 의미도 있었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심사위원이 무려 김지하 시인이라는 것이었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하나뿐인 사위이면서 박정희 유신체제를 반대하다 7년여를 투옥되셨고 사형선고까지 받으셨던 저항시인의 대부 격인 그 이름, 대학 때 목이 터져라 부르던 민중가요 '타는 목마름으로'의 김지하 시인이라는 사실에 나는 내 귀를 의심하기까지 하였다. 시상식은 가을에 목포에서 조촐하게 열렸으나 심사를 하셨던 김지하 시인께서는 건강이 매우 안 좋으셔서 참석하지 못하셨다. 시 뿐만 아니라 소설, 희곡, 수필 등 다른 부문의 당선자도 있었고, 지역의 문인협회에서 하는 행사였으므로 비교적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심 사 평
시 부문 : 당선작 「해녀」(한수남, 경남 진주시)
심사위원 : 시인 김 지 하
쉬워서만이 아니다.
다른 작품들이 거의 예외 없이 너무 빠른 이들의 ‘짱구 돌리기’나 너무 늦은 이들의 ‘詠物詩’ 차원이어서 지겨운 탓만도 아니다.
현재 우리시의 가장 큰 문제점인 다음 세 가지에 대해 자의식을 우선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점, 몇 마디 하겠다.
첫째, 노래와 줄글이 함께 있다. 물론 그 자체로서 온전치는 않다. 그러나 기왕의 전통 音譜律을 ‘지옥’이라는 폄하까지 곁들여 대책 없이 내던지고 줄글로 무장해제하는 것에 대한 경계와 자각이 분명히 깔려 있는 점은 우선 중요하다. 산문이 혼돈 그 자체는 아니다. 散調에도 本疾이라는 미학적 규범의 조건이 분명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국권상실과 함께 이미 있었던 이른바 ‘허튼소리’의 전통까지도 다 잃어버린 점이다. 사설시조로 봐도 ‘한양가’에는 노래와 줄글의 엇섞임이 있다. 이런 엇섞임이나마 되살리고 싶은 의지가 은연중 서려있는 점 때문에 감히 당선작으로 고른다. 겉으론 줄글이지만 그 밑에 서양식 ‘비트’가 집요하게 거늘려 있는 요즘의 시유행 따위는 도무지 봐줄 건덕지가 없다. 그리고 ‘엇’은 특별히 ‘성교소리(voice of sex)’라고 부른다. 높낮이도 없는 평균적인 ‘퉁퉁퉁’과 왔다 갔다 뿐이니 애당초 지루하다. 성교도 사랑이 있을 땐 높낮이는 상식 아닌가!
지금 우리시의 제일 명제는 새 차원에서 들숨 날숨의 장단을 회복하는 것이다. 장단위에서 그 나름으로 줄글이다. 박둥을 잡아야만 바람직한 요즘의 ‘엇 그늘’이 생기는데 ‘해녀’는 일단 그 소망에 접근하고 있다.
둘째, 분명 민중시 계열임에도 남성 코드가 아닌 여성적인 바다감성이다. 이것은 앞으로 다가오는 여성중심의 ‘음개벽’에서 매우 중요하다.
셋째, 머지않아 ‘흰 그늘’의 네오, 르네상스는 시산기의 상식이 될 것이다. 그 전제가 지금 대유행중인 色魔性에서 惡魔性에로의 검은 그림자 이동 현상인데 바람직한 것은 그 ‘검은 그림자’ 말고 ‘툭 터진 열과 색정’의 세계, 그야말로 ‘흰 그늘’ 일 것이다.
해녀들의 그 큰 엉덩이의 숭한 ‘년’이나 낭창한 허리에 ‘볼그족족 뺨이 붉은 젊은 과부’ 등의 그 칙칙한 색정의 그늘은 ‘이여싸나 이여도싸나’의 저 새하얀 신비의 섬 ‘이어도’의 투명한 빛과 융합된다.
15세기 피렌체 르네상스의 미학적 열쇠말은 ‘어스름한 저녁 그늘 속에 문득 솟아오르는 흰빛’인데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말의 부정적 출처가 다름 아니라 당대한 젊은 시인의 다음의 시 구절이었다는 사실이다.
‘흰눈부심을 거느린 검은 악마들의 시위’ 마지막으로 ‘해녀’의 玄覽性(여성스럽게 아기스러움)이 앞으로 큰, 목포문학의 큰 미덕이 될 것이다. (2009년, 목포문학 제32호 수록)
생각해보면, 당선소감을 쓴 적이 두어 번 있으나 이게 또 쉽지가 않다. 오히려 시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고치게 된 적도 많은 것 같다. 그 이후의 일들은 40대 2부에서 밝히기로 하고 여기서는 시 1편만 첨부하고 넘어갈까 한다.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바다 안 보이는 곳에 무덤을 만들라 하셨네
평생 바다에서 한 노동이 죽어서도 따라올까 봐
지겹다고 하셨네.
그녀가 사랑한 바다는 철없는 낭만이었을까
아버지, 순한 산자락에 묻히셨지만
조금만 나가면 바다는 여전히 출렁거리지
어쩐지 아버지의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으로 다가오는 오늘.
그녀는 부서지고 부서지는 파도가 좋았네
부서져서 다시 태어나는 바다
늘 싱싱하게 살아있는 바다를 사랑했네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어쩌면 더 깊은 사랑
그녀가 사랑한 사람들을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오늘도 바다는 서늘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치네
그녀의 가슴을 때리고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