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십 대 2부

(1999~2008)

by 한수남

2002년에는 나의 소중한 딸도 태어나게 된다. 2002년은 우리나라에서 월드컵(2002.5.31~6.30)을 개최하던 해, 그해 6월은 만삭의 부른 배로 6살 아들과 함께 태극기가 프린팅된 새빨간 면티를 입고 머리에도 새빨간 두건을 두른 채 열렬하게 한국 축구를 응원하던 해였다. 우리는 그해 한국-스페인 8강전에서 무려 스페인을 꺾고 4강신화를 이루었으니 그해 여름은 두고두고 광기와 흥분의 여름으로 기억된다. 둘째인 딸아이는 첫애(1996년생, 쥐띠) 때와 마찬가지로 자연분만으로 그해 6월에 건강하게 태어나 (2002년생, 말띠) 친척들 사이에서 월드컵둥이로 불리게 된다.


여섯 살 터울이 지는 남매를 키우면서 참 많은 애완동물을 길러 보았다. 우리는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를 집에 들이지 않는 대신 금붕어, 새(금화조), 거북이, 달팽이, 고슴도치, 햄스터, 토끼 등등 비교적 손이 덜 가는 작고 귀여운 애완동물을 길렀고 그들이 떠나갈 때면 진심으로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고슴도치를 만질 때면 뾰족한 가시 때문에 면장갑을 끼고서도 가시에 찔려가며 발톱을 깎아 주었고, 날카로운 가시 안에는 그 무엇보다 부드럽고 연약한 분홍빛 속살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토끼 2마리를 위해 시골에서 따온 칡이파리와 토끼풀을 몇 년 간 부지런히 제공해 주다가 지린내가 심해져서 다시 학교의 사육장으로 보내 준 적도 있었다. 몇 년을 같이 살던 새 2마리는 유난히 춥던 어느 겨울에 베란다에 방치되어 있다가 얼어 죽었다. 처음에는 지극 정성으로 돌보던 것들이었지만 아이들의 학년이 점점 올라가고 바쁘다는 핑계로 다들 관심이 시들해지고 나자, 작은 생명들은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을 처음 만날 무렵(1995년) 그는 가난한 대학원생이었다.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에 막 들어선 그는 고정 수입이 없었고 방학이면 학원의 영어 강사로 뛰고, 학기 중일 때는 인근 지역의 대학교 시간강사를 두세 군데 돌고 있었다. 교수 자리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였고, 기다린다고 해서 교수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공부를 하고 논문을 쓰고 있다는 그 사실만이 그저 좋았다. 아이 둘을 키우느라 직장에서 돈 버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우리는 어떤 주제에 꽂히면 밤이 새도록 떠들었다. 주로 인간이란 무엇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등등 답도 없는 개똥철학을 서로 피력하느라 두 세 시간은 훌쩍이었다. 무엇보다 서로 말이 통한다는 사실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밤늦게까지 논문과 씨름하다 귀가하던 남편이 어느 날은 불같이 화를 내었다.


겨울이라 가습기를 틀어 두고 자고 있었고 가습기 안에는 그당시 광고를 많이 하던 살균제를 넣어두었는데 밤늦게 귀가한 남편은 불같이 화를 내며 창문 부터 모조리 열기 시작했다. 방에서 왜 이리 독한 냄새가 나느냐며 내가 집을 독가스실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었다. 둔감한 나는 가습기를 통해서 나오는 수증기가 으레 그려려니 하는 편이었고 예민한 남편의 후각에는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독가스로 느껴졌던 것이었다. 남은 가습기 살균제를 몽땅 화장실 변기에 부어 버렸으니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가 싶다. 실제 그 당시에는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가습기 살균제를 의심도 없이 많이들 쓰던 시기였다. 나는 광고를 의심 없이 잘 믿는 어리숙한 면이 많았고, 일이 잘 안풀리던 남편은 매사에 불신이 많은 편이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가족을 구해내는 일이 되었다. 남편은 결혼한 지 만 십 년이 되던 해에 드디어 교수가 되었고, 그동안 펴낸 저서나 번역서가 몇 권 있지만 모두 전문 학술서적이라 대학 강의의 교재용으로 주로 쓰이고 있다.




어깨 / 한수남

아이의 조그만 어깨 위로

척,

어른이 두 손을 올릴 때면

뭉클한 감정이 솟아올라요.

너무 무거운 책가방 대신 들어주거나

어른의 튼튼한 어깨로 대신 매주고 싶지만


참아야지요,

어려도 다리는 다리

어려도 어깨는 어깨

축 처진 어깨 말고

으쓱으쓱 솟아나는 어깨이기를

어른은 두 손을 척, 하고 올리지요

이상하게 더 위대해 보이는

저 조그만 어깨 위로



주먹 / 한수남

아이의 작은 주먹을 본다.

가느다란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 넣어

꼭 쥔 작은 주먹 하나

저 작은 주먹으로

세상이라는 벽을 꽝꽝 두드려도 보겠지

세상이 총공격을 해오면

가드를 올리며 막아도

당해낼 수 없을지 몰라.

하지만 큰 걱정은 말아야지

바들바들 떨리는 작은 손가락도

꼭꼭 안으로 말아 움켜쥐면

단단한 주먹이 되고 마니까

작은 주먹은 곧

야무지고 단단한 주먹이 될 테니까.



젓가락질 / 한수남

콩은 쏙, 도망가고요

도토리묵은 미끄덩, 흘러내리고요

김은 두장, 세장 따라오고요

어디 만만한 반찬 없나?

하얀 두부에 푹, 젓가락을 찔러서

간장 조금 적시려다 풍덩, 빠뜨리고요

그냥 국만 떠먹고 있으니

누가 밥 위에 척, 깻잎절임 한 장 얹어주고요

젓가락질 연습하는 일곱 살에게

우리나라 반찬들은 쉽지 않아요

어른들도 가끔 흘릴 수도 있는데

괜찮다, 잘한다, 응원했더니

나날이 실력이 늘어나네요

여덟 살 아홉 살의 위대한 젓가락질.



종이배 / 한수남

종이로 만든 종이배

갈 수 있겠지

물 위를 동동 갈 수 있겠지

종이로 만든 비행기

날다가 콕, 떨어져도 난 게 어디야

종이로 만든 종이배

동동 흐르다가 멈추어도

동동동 흘러간 게 어디야

부디, 막지는 말아주세요

종이배 동동동 흘러갈 수 있도록



청개구리 같았던 나의 아이들 (지금은 벌써 30세, 24세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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