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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빨래 건조대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by 구름이

따뜻한 햇살이 부드러운 음악처럼 내 몸을 감싸는 순간만큼 포근한 휴식이 또 있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햇살을 좋아했다. 내가 전에 살던 앵무새 카페는 햇살이 잘 안 드는 곳에 있었다. 형광등을 종일 켜 놓아서 비교적 밝긴 했지만, 햇살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어떤 친구들은 햇살이 눈 부시다며 싫어했지만, 나는 언제나 그 따스함을 좇았다. 한 줌의 햇살이라도 비추면 졸졸 따라다닐 정도였다. 햇살은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엄마와 헤어지던 날 햇살은 엄마 품처럼 나를 품어주었다. 아빠 인간을 기다리다 지쳐갈 때도 햇살은 괜찮다고,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햇살이라는 단어도 참 따뜻하다. 태양은 너무 거칠고, 햇빛은 지나치게 눈이 부신다. 하지만 햇살은 마치 나의 다정한 친구의 이름처럼 부드럽다. 심리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비타민D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일광욕이 필요하다. 우리 집에서 가장 좋은 일광욕 장소는 단연코 거실 창문 앞이다.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햇살이 쏟아지는 그곳은 마치 작은 온실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기분전환도 필요한 법이다.


어느 날 엄마 인간이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분주하게 어디론가 가지고 갔다. ‘나를 두고 어디 가지 마세요!’ 나는 부리나케 엄마 인간의 뒤를 따랐다. 빨래를 갖고 들어간 곳은 안방 베란다였다. 엄마 인간은 베란다 위에 있는 빨래 건조대를 내리더니 빨래를 널었다. 처음 가 본 곳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꽤 괜찮아 보였다. 햇살이 넉넉하게 스며들었고, 저 멀리 산과 나무도 보였다. 창 아래 도로 위로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모습도 쓰릴 있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빨래 건조대 한쪽에 걸터앉았다. 엄마 인간은 아직 내가 여기에 있는 줄 모르는 모양이다.


빨래 건조대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나만의 사색에 빠지는 시간이 늘어났다. 물론, 이건 따듯한 여름날에만 허용되는 사치스러운 일광욕이다. 겨울에는 빨래가 얼어서 엄마 인간은 이곳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바깥세상은 참으로 복잡하고 무척 바빠 보였다. 모두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각자의 목적지가 있는 듯하다. 한가롭게 거니는 존재는 산책 나온 개들밖에는 없는 것 같다. 개 집사들마저 바삐 걸음을 재촉하며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줄 하나에 매달려 있는 개들은 다리 하나 올리고 오줌도 싸고, 주저앉아 똥도 싸고, 흙냄새를 맡기도 했다.


개들에게는 목적지가 따로 없었다. 그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땅의 흙냄새를 맡고, 풀섶에 맺힌 이슬을 혀로 핥으며, 가끔 꽃을 뜯어 맛을 본다. 온몸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느끼는 생물은 개 집사들이 아니라 바로 개들이었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사색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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