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유독 음악을 좋아한다. 앵무새 호텔에서 이틀 밤을 지낼 때, 녀석들이 연이어 내지르는 괴성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물론 그것도 음악이라면 음악이겠지만, 내게 있어 음악이란 위안과 평화를 주는 소리이다.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 인간들은 저마다 다른 음악을 듣는다. 덕분에 나는 다양한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누나 인간의 음악 취향은 늘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다. 어렸을 때는 아이돌의 신나는 음악을 좋아하더니, 중학생이 되어서는 팝송을 좋아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잔잔한 발라드에 빠지더니 어느새 부모 세대의 옛날 발라드까지 섭렵하기 시작했다. 엄마 인간의 음악 취향은 언제나 같다. 엄마 인간은 사람 목소리가 나오는 노래보다 오로지 악기 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좋아한다. 특히 바이올린이나 첼로처럼 부드럽게 속삭이는 악기 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엄마 인간이 곁에 있으면 음악 속에서 깊고 고요한 잠에 빠질 수 있다. 아빠 인간은 다소 격렬한 음악을 즐긴다. 인간들이 시끄럽게 소리치거나 비장하게 부르는 노래를 즐겨 듣는다. 덕분에 나의 음악 취향은 다양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물소리나 새소리를 들으면 특별히 마음이 고요해진다. 발가락부터 머리까지 음악 소리로 세례를 받는 기분이다.
생각할수록 음악은 참으로 신비롭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다채로운 노래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음악은 아마 태초부터 존재했을 것 같다. 물 흐르는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까지 모두가 음악이다. 인간은 분명 이런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여 음악을 만들었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음악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심장이다. 우리의 심장 박동은 규칙적인 리듬으로 뛰고 있다. 조용한 방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이 규칙적인 리듬 속에서 음악의 본질을 깨닫는다.
엄마 인간과 아빠 인간이 가끔 싸울 때면 이렇게 말한다.
“말로 해야 알지.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아?”
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 말이 이런 뜻인줄 알았지. 아니었어?”
언어라는 것은 뜻을 명확하게 전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오히려 오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한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궁금증이 호감인지 사랑인지, 아니면 호기심인지 우리는 언어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느끼는 아픔이 죽음의 고통인지,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인지, 넘어져 다친 찰과상과 같은 것인지 언어는 모두 담아낼 수 없다. 이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끊어질 듯한 아픔과 슬픔을 Adagio로, 설렘과 환희를 Serenade로 표현한다. 수많은 악상 기호들은 우리의 감정을 알파벳으로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누나 인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놀라운 종족이다. 누나 인간의 놀라운 능력 중에 하나는 절대 음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피아노의 화성을 듣고 서너 가지 계이름을 한꺼번에 맞출 수 있고, 전기밥솥에서 나는 밥이 되었다는 알람음도 계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다. 비 오는 어느 날에 엄마 인간이 누나 인간에게 물었다.
“빗소리를 계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어?”
“아, 그건 쉽지 않아. 빗소리는 정확한 음을 갖고 있지 않아. 레와 미 사이에 있는 어느 음이야.”
“그러면, 레# 이나, 미♭ 이야?”
“아니. 엄마, 레와 미 사이엔 무수히 많은 음이 존재해. 그걸 피아노로 전부 표현할 수 없거든.”
맞는 말이다. 악보에는 레와 미 사이에 반음 하나만 있지만, 자연에서는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음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직선을 볼 때 하나의 선처럼 보이지만, 확대하면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점들이 모여서 하나의 선을 이루는 것처럼. 우리 감정의 선도 그렇다. 하나의 감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레와 미 사이에 무수히 많은 감정이 존재한다.
이제 음악은 우리 존재의 본질이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음악 없이 살 수 없다. 누나 인간은 하루 종일 이어폰을 끼고 살아간다. 공부할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음악 속에서 살아간다. 엄마 인간도 항상 라디오 음악을 켜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이 든다. 나 역시 음표와 음표 사이를 날아다니며 오늘도 하루를 견뎌낸다. 우리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존재가 아니라 음악을 창조하고 음악과 감정적으로 연결되며, 음악을 통해 사고하는 존재이다.
음악을 즐기는 인간, Homo Mus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