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아, 뭐 해?”
“어, 구름이 또 자고 있네.”
나는 지금 엄마 인간의 어깨 위에서 노곤한 잠에 빠져 있다. 엄마 인간이 부지런히 손을 놀릴 때면, 앉아 있을 곳이 마땅치 않다. 나는 엄마 인간의 손가락 위에서 흔들거리며 털을 고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엄마 인간이 일할 때는 그 위에서 균형을 잡기 힘들다. 그럴 때면 엄마 인간의 어깨 위에 앉아 있거나, 컴퓨터 모니터 위에 앉아서 오수를 즐긴다.
사실 나는 틈만 나면 잔다. 장난칠 거리가 없거나, 배가 고프지도 않거나, 털을 고르지 않을 때는 슬쩍 눈이 감긴다. 나이가 들어가는지, 요즘 부쩍 잠이 더 는 것 같다. 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엄마 인간은 작은 나무 둥지를 사서 내 집 안에 넣어주었다. 그 둥지 안에 부드러운 천도 깔아주었다. 내 전용 침대였다. 하지만 나는 엄마 인간을 무척 실망시키고 말았다. 횃대에 앉은 채로 잠을 잤기 때문이다. 엄마 인간이 공들여 만들어 준 침실은 나의 배설물로 얼룩지고 말았다. 그녀는 실망한 채로 그 둥지를 치워 버렸다.
내가 횃대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우리 종족만이 가진 독특한 능력 덕분이다. 횃대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다리가 구부러지면서 발가락을 움직이는 힘줄이 자동으로 당겨진다. 덕분에 나는 힘을 들이지 않고도 발이 계속 횃대를 잡고 있게 된다. 힘을 쓰지 않고도 나뭇가지나 횃대에서 편안하게 잘 수 있다. 마치 인간이 주먹을 꽉 쥐고 있다가 손목을 구부리면 손가락이 더 단단히 말려드는 느낌과 비슷하다. 엄마 인간은 내가 오랫동안 횃대에 앉아 있으면 다리가 아플까봐 걱정하며, 부드러운 침대에 누워 자라고 배려해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종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알을 낳거나 알을 품기 위해 잠시 둥지를 이용할 뿐이다.
그런데 엄마 인간이 더 놀란 것은 내가 한 발로 서서 잠자기 신공을 보여줄 때이다.
“와우! 구름아, 너 한 발로 잠을 잘 수 있어?”
‘뭘, 이런 걸로 놀라시나.’
“꾸룩~ 꾸룩~”
나는 가끔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린 채 잠을 청한다. 이렇게 하면 다리 근육을 덜 사용하면서 균형을 잡을 수 있어서 효율적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한 바로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 때문이다. 지금은 집에서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거친 자연 속에서 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야 했다. 우리 조상들 중에 성격이 유난히 느긋했던 이들은 두 발을 쭉 뻗고 누워서 잠을 잤다. 조금 더 경계심이 있는 이들은 두 발로 서서 잠을 잤다. 그러나 경계심이 많고 삶에 대한 애착이 많은 이들은 한 발로 잠을 자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포식자가 나타나면 언제든 날개짓을 하며 도망가야 하는데, 한 발만 딛고 있으면 훨씬 빨리 날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성격이 느긋한 조상들은 포식자에게 손쉬운 먹잇감이 되어 사라졌다. 결국 나에게 유전자를 물려준 조상들은 주변에 대한 경계심이 많고 삶에 대한 끈질긴 애착을 갖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정보대로 나는 오늘도 한 발로 잠을 자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내가 터득하지 못한 신공이 하나 있다. 바로 날면서 잠을 자는 것이다. 이 기술은 우리 종족들에게도 신공으로 통한다. 장거리 비행을 하는 알바트로스나 군함조 같은 친구들이 구사하는 기술이다. 이 친구들은 몇 시간이 아니라, 몇 달 동안 지상에 내려오지 않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밤에도 계속 비행을 해야 하므로 그들은 하늘을 날면서 반구 수면을 취한다. 한쪽 뇌만 자고 다른 한쪽 뇌는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늘을 날면서도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행 중에는 완전히 깊이 잠드는 것은 어렵고, 짧고 얕은 수면을 여러 번 취하면서 피로를 풀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날아다닐 일도 없고, 포식자를 경계할 필요도 없으니 그런 신공까지는 욕심낼 필요가 없다. 하지만 깊은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나도 그 친구들과 마찬가지이다. 주변에 포식자가 없어도 유전자에 새겨진 대로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깨어나 주변을 살핀다.
이제 엄마 인간도 내가 왜 그렇게 한 쪽 발을 들고 자주 오수를 즐기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종족에 대한 이해는 서로에 대한 배려이자 공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