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한계를 넘어서면 파란색으로 일렁인다. 뜨거운지도 모른 채. 피가 나고 몸 어딘가에 얼룩 져도 알아채지 못했다. 침대 위에서 한참을 묶인 채 울었다. 관짝 안에 누워있는 기분을 이겨내고 눈가를 만졌을 땐 눈물 껍질들이 손등에 묻어져 나왔다. 아 정말 죽을 때가 왔구나. 핸드폰을 들고 정신과를 검색했다. 가장 가까운 곳을 찾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한 시간을 씻었다. 아니 이걸 씻었다고 할 수 있나? 뜨거운 물만 끼얹은게 30분이다. 샴푸로 몸을 닦은건지 바디워시로 머리를 감은 건지. 꾸역꾸역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집 밖을 나왔다. 땅에 발이 닿을 때마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현실과 동 떨어진 나의 세계. 그 세계 가운데를 가로지른 우울. 그건 걷잡을 수 없는 기류였다. 소나기를 예측할 수 없듯이 감기를 막을 방법은 없다. 그래도 살고 싶었는지 겁이 나더라. 잃을 것도 없는데 뭐가 그리 무섭던지. 숨 쉬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조금 억울했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다 하는 것들은 해보고 죽고 싶었다.
병원에 들어가자 초진 문진표를 받았다.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확인하는 테스트였다. 거침없이 항목을 체크하고 간호사 선생님께 문진표를 드린 후 초조하게 기다렸다. 병원 안은 고요했다. 할아버지부터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주변을 살피다 내 이름이 불려졌고 나는 진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죽고 싶어요? 네. 첫 질문 첫 대답. 간결했다. 나한테 죽고 싶냐고 적나라하게 묻는 이는 처음이었으니까. 선생님은 뭐가 제일 문제냐는 말에 그냥 삶이 무너졌다 말했다. 한참을 진료를 하시던 선생님은 정신과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는 종이에 포스트잇을 하나 붙이시더니 무언가를 적어 나가셨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들면, 여기 적혀 있는 번호로 언제든 전화하세요. 그게 언제든. 새벽이라도 좋아요. 그리고 번호 밑에 적은 건 질병 코드입니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면 이 질병코드를 보여주시고 지원 받으시면 됩니다. 나는 천천히 종이를 받아 들고 진료실 밖을 나왔다.
이만 원이 넘게 나온 걸로 기억한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죽고 싶은 걸 막는데 이 정도 가격이면 합리적인 가격을 넘어섰다 생각했다. 병원을 나와서 질병 코드를 검색해봤다. F.322. 정신병이 없는 중증 우울 장애. 자살 위험성이 가장 높은 코드. 역시나, 최악이구나. 온몸에 힘이 빠져서 바닥에 주저 앉았다. 한참을 앉아있다가 고개를 들었을 땐 편의점이 보였다.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