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이 되자마자 담배를 피웠다. 심장 소리가 하늘까지 치솟고 담배 냄새가 심장을 뚫을 때 작은 자유를 얻었다.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은 나한테 말했다. 절대 담배같은 건 피면 안 된다고. 물론 담배 뿐만 아니라 뭐든 자신의 기준에 어긋나는 것들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말했다. 어긋난 순간 나를 죽여버릴 듯 달려 들었다. 그래서 나는 목졸린 채 비웃음으로 화답했다.
파란색 장미를 좋아한다. 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혹은 불가능. 불가능 위에서 맥주를 마시는 기분은 째진다. 분홍색 가방과 분홍색 옷을 입었던 나를 벗어 던지고 파란색 장미를 볼에 부비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간혹 가시가 찔러도 상처는 아프지 않았다. 내 유일한 안식처는 파란색 장미와 글이었다.
고등학생 때 보고 울었던 드라마가 있다. 바로 학교 2013. 무너져 내리는 터널 속에 서로를 의지하며 나아가는 두 소년. 거울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 위로를 받았다. 그때부터 나도 위로를 건네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루고 싶은 꿈. 그게 글이었다.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은 내 영원한 안식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다. 공부도 못하는 내가 그나마 가족들 얼굴에 먹칠하지 않고 멋져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일거다. 가족들은 그게 필요했다. 남에게 내세우고 자랑할 수 있는 것. 내가 행복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글을 왜 쓰고 싶은지도 이유 따윈 관심조차 없었다. 애초에 그건 필요하지 않았다. 내 장기라도 빼서 써야 하는 짐승들이니.
본격적으로 과외를 받으며 글을 배웠다. 문장과 서사,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워나갔다. 그렇게 글을 쓰던 도중 선생님은 ‘자화상 쓰기’ 를 해보자고 하셨다. 간단하다. 내가 살아온 일생들을 글로 쓰면 되는 거다.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셨는데 여전히 동의한다. 글로 거짓말을 하는 순간 독자들은 떠나갈 테니까. 나는 그렇게 내 일생을 글로 써내려갔고 내 안의 가장 큰 문제는 가족이었다. 제 3자의 입에서 나온 말 중 가장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구하기로 했다.
구원자는 나 말고는 절대 없어. 나는 내가 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