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지 않는 칼이 필요하다. 날카롭고 단단한. 투명하고 눈이 멀 정도로 반짝이는 칼.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내 몸에만 상처를 냈다. 그런 내가 어른이 되고 나를 해치려 하는 것에 칼 끝을 겨눴다.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욕을 했다. 그리고 집안의 누군가를 때렸다.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넌 내 자식이 아니야, 칼 가져와. 비수같은 발이 날아와 꽂혔다. 아 가끔 진짜 칼이 날아오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칼이 필요했다. 그 다음 날에 아버지는 꼭 돈을 쥐어줬다. 악몽의 대가일까. 나는 억울한 마음으로 돈을 꽉 쥐었다. 결국 쓸 수 없을 정도로 일부가 찢어졌지.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는 말이 틀렸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그때 왜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한다. 왜 멍청하게 당하고 있냐고. 평생 살아보지 않았으면 닥쳐라. 늪에 빠지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것처럼 마찬가지다. 정적을 깨는 계기가 필요하다. 툭 치면 울 것 같은 사람은 눈알을 뽑아내라. 그래야 그 사람 산다. 그게 누구든 해야 한다. 빠짐없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미안하니까 말 대신이라도 표현한단다. 지랄한다. 마음을 표현하는 건 진심 뿐이다. 명백한 악은 사라져야 한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성장이 멈춘 채 어른이 된다. 나이를 더해가며 책임감을 져야 한다. 배운 거라곤 미움받지 않으려 살을 떼어주는 거 하나. 나는 설계된 인생이 있었다. 외고를 나와 명문대에 입학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 그게 성공한 삶. 부모에게 당연히 효도하고 명품백을 사줘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허상. 나는 그 선에서 탈주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이 생각이 짙어지는데, 오히려 좋다. 그러면 이 지옥을 겪지도 않았을 테니까.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힘든 걸 받아주지도 못하냐며 화를 냈다.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비싼 옷을 걸치는 게 자신 덕분이라고. 웃음이 났다. 아이를 낳으면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고 책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도덕적으로 법적으로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나는 죄가 없다. 잘못한 건 아마 세상에 존재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