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을 넘길 생각이 없다. 이 말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한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내 입에서 뱉어진다. 말 그대로이다. 나는 29살 10월 중순에 죽을 생각이다. 왜 29살이냐 묻느냐면 청춘의 한 가운데에 멈추고 싶기 때문에. 찬란하고 가장 예쁜 모습으로 영원하고 싶다. 내가 죽는 이유는 간단하다. 삶이 너무 개같아서. 태어난 순간부터 뒤틀린. 모든 것을 리셋하기로 결심했다. 이 결심은 꽤 오래전부터 했는데, 여전히 같은 마음이다. 지금부터 내가 죽을 이유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나는 아버지의 직업을 몰랐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어린 아이들이 돈 걱정을 하며 전전긍긍 살아가는 삶과는 멀었기에. 집에서 엄마가 돈 걱정을 하거나 돈에 대한 한탄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만큼 우리집은 부유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건 아버지가 대기업의 높은 직급을 갖고 있는 사람, 그뿐이었다. 늘 햇빛이 비추고 평화로운 일상은 당연했다. 그게 잘못된 아니다. 다만 부모 자격이 없는 부모들에 당첨된 아이였을 뿐. 참 재수도 없지. 하필 나는 머리도 나쁘고 특별히 뭘 잘하는 것 없는 아이. 그래서 엄마는 나를 자신의 트로피로 만들기 위해 수학 영어 공부는 물론 피아노, 수영, 미술 개인 레슨과 과외를 미친듯이 시켰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캐나다 유학을 다녀온 선생님한테 영어 과외를 받았는데 보충수업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셨다. 엄마는 말했다. 넌 왜 이렇게 공부를 못하냐고. 온전히 내 걱정이 아닌 자신의 창피함에 대한 짜증.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죄같이 느껴졌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6년 내내 일기장에서 빠지지 않던 문장이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려야겠다’ 이 문장에 마침표는 찍지 않겠다. 나는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도구라는 걸 그때 알았다면 좀 달라졌을까.
스무 살. 처음으로 술을 마셨을 때 나는 해방감을 찾았다. 그렇게 소화도 못 시킬 맥주와 소주를 위장에 밀어넣었다. 그래도 좋았다. 갈증을 해소시킬 무언가를 찾은 거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첫 반항이었다. 잔뜩 술기운에 절어 잠들면 어떤 꿈도 꾸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마셨던 걸지도 모른다. 엄마에겐 나는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시키는 대로만 하는 못생긴 인형. 술을 많이 먹지 않는 이미지의 자식이니까. 그래서 한 두 병 술을 비웠다. 비우면 비울수록 엄마의 분노는 커졌다. 그 커진 분노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비로소 나로서 살아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