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역사교육 Note: 짧은 절정기 #3
2024년 7~8월,
'이렇게 잘 풀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완벽했던 때였다.
시한부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직전의 순간들은 아름다웠다.
꽃도 지기 직전이 제일 아름답듯이.
이 장에서는
집필진 생활을 마무리하기 전,
보았던 그리고 만들었던 '생명력'을
얘기해보겠다.
이 장이 2년간
제3지대 교육의 바깥부터 중심까지
달려온 여정의 최종장이다.
5월에 팀장님과 선임 집필진 한 분이
홀연히 자리를 떠난 이후
팀의 운영 구도는 세 갈래로 나뉘었다.
기존의 선임 집필진들이 팀의 운영부가 되고,
필자는 독립적으로 시험지를 제작하거나
교재를 편집하는 중견 집필진이 되었으며,
그 밑으로 신입들이 있었다.
그렇게 필자는
이제 막내살이를 벗어나
노련함을 보여주는 경력자가 되었다.
주어지는 업무의 중요도도 높아졌다.
신입일 때는
교재를 만든다거나
시험지를 출제한다고 하면,
단독으로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협업이 이루어졌다.
협업은 필자의 실력을 성장시키는 양분이 되었다.
양분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으니
단독으로 교재와 시험지를 만들라는 건
'알아서 잘해보라'라는
팀 차원의 믿음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리고 필자는 머지않아
집필진 생활이 끝나는 시한부가 걸렸기에
2년차 집필진치곤
상당히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팀은 분기마다 출판물을 제작한다.
신입 때는 출판물에 대한 기여도가 적었다.
그냥 팀에 속해있으니 이름만 올렸던 정도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필자도
출판물 제작에 많은 관여를 할 수 있었다.
출판물만으로도
학생들이 교과목을 학습하는 데 있어서
탄탄한 커리큘럼이 갖춰졌다는 것이
팀의 강점이다.
계속 그러한 커리큘럼이 강화되어 왔다.
그리고 확립에 이른 게 2024년이라 생각한다.
올해 커리큘럼도 작년과 비교했을 때,
큰 틀에서 변한 건 거의 없다.
출판물은 재종학원에 공급하는
교재, 모의고사와 달리
온라인 사이트에서 전국적으로 판매하는 것이므로
팀의 이미지에 더 큰 영향을 준다.
따라서 출판물 업무는
팀의 지도부가 수행하는 게 관례로 이어졌다.
그 관례에 따라 필자도
출판물을 제작하는 업무를 하게 되었다.
(2년 근속이긴 하지만) 오래 일하고 볼 일이다.
출판물 하나하나가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을 꼽으라 하면
고난도 N제와 실전 모의고사이겠다.
팀의 이미지를 구축한 출판물이다.
이것에 관해서는
여기서 얘기를 하지 않고,
'문답'이라는 부제가 붙는 뒤의 글에서
자세히 논할 예정이다.
핵심은 2년차에 접어들면서,
그리고 시한부가 가까워지면서
중요한 업무들을 단독으로 맡아서 했다는 점이다.
필자가 단순한 팀원이 아니라
'어느 정도 역할이 있는 팀원'이 되었다는 증거이기에
기분이 좋았다.
이 부분에 대한 얘기는 여기서 끝맺겠다.
더 얘기하면 자기 자랑이 될 것 같다.
필자가
제3지대 교육의 바깥에서 중심까지 걸어오고,
다시 중심에 안착하는 과정은
외로운 여정이었다.
필자는 팀 내에서도
쟁쟁한 사람들 사이에서
툭 튀어나온 그런 존재였다.
필자 대학 출신의 인물이 없었다는 소리다.
사학과 내에서도
필자의 여정을 지원해주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기적처럼' 필자 팀에서 만든 교재로
공부한 수험생이 필자의 학과 후배로 들어오고 나서야,
사학과 내에서도 역사교육 그리고 제3지대 교육에 대해
터놓고 얘기할 상대를 얻었다.
사실 제3지대 교육이라는 판 말고도
역사를 교육의 도구로 활용할 공간은 많다.
유튜브에 역사 콘텐츠를 업로드하거나,
큐레이터가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해설한다면
그 또한 역사교육이다.
대중에게로 다가가는 진정한 역사교육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형태의 교육이
공교육 현장의 역사교육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못하는 한계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학교에서의 역사교육은
'평가'에 종속된 게 큰 문제이다.
수행평가나 비교과 활동(동아리 등)을 통해
역사라는 대상을 시험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 그 자체의 의미를 음미하는 방법이 있다지만,
그렇다고 지필고사의 영향력이 없어진 건 아니다.
지필고사는 여전히 학생을 측정하는 기준이다.
역사 교과목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육을 뿌리부터 바꾸는, 근본적인 변혁이 일어나야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작금의 교육 체제가 쉽게 깨지지 않는 전제에서
학생들이 그 체제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다.
제3지대 교육은 현실적인 방안의 하나일 뿐이다.
역사 교과목이 지필고사의 틀에서 자유롭지 않으므로,
그 틀 안에서 학생들이 잘할 수 있게끔
교재를 내는 것뿐이다.
물론 사교육, 제3지대 교육이라는 세계가
'장사치'라는 인식이 있고
완전무결한 공간도 아니라지만,
과연 그간의 공교육은
역사와 역사교육에 대해 진심이었는지
묻고 싶다.
필자는 '그렇지 않았다.'라고 생각한다.
팀에서 출판물을 낼 때
항상 첫 페이지에는 '저자 소개'를 한다.
팀에 대해 소개하고 저자 목록을 나열하는데,
팀 소개글은 언제 봐도 가슴을 때린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소외된 과목', '열악한 환경'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것이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현주소이다.
이 팀은 그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양질의 역사교육 콘텐츠 개발'이라는 방법으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등장한 존재인 셈이다.
역사교육의 입지가 좋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알고도 외면해온 건 아닐까?
모두가 가지 않는 길, 외면하는 길을 걸으려 하면
주변에서는 '해봤자 안 될 걸?'라며 만류하기 마련이다.
필자가 제3지대 교육에 갓 입문했을 때에도
학과 동기들은 미지근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연한 반응이다.
필자의 선택은 누구도 하지 않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깊은 신념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열성을 다해 2년의 시간을 제3지대 교육에 바치고
그것으로 인한 긍정적 영향을 증명하면서
몇몇 학과 사람들도 '저건 인정해줘야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필자에겐, '학과 후배가 된 수험생'이라는
살아 있는 증인이 존재한다.
교육은 정말로 미래를 바꾼다.
제3지대 교육이라는 판을 떠나면서
'좋은 방향으로 달라진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일단 필자와 마음의 결이 맞는 후배가 생긴 것도 그렇고,
'수능 역사 대비에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라는
수험생들의 리뷰가 늘어났다.
필자가 팀에서 검토진으로 일했을 때만 해도
교재 리뷰가 많이 없었다.
팀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증거이겠다.
후배에 대한 얘기는 아래 링크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45
후배와 교재 리뷰를 쓴 수험생들을
과거의 필자랑 견주어 바라보니
'정말 세상이 달라지긴 했다.'라는
감회를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외로웠고,
다른 외로운 이를 위해 더 외로운 길을 택했지만
그 노력이 결실을 거두며 외롭지 않게 되었다.
필자는 집필진 생활의 끝이 임박해지며
이 귀중한 경험이 필자만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비록 필자 대학 사학과를 깠지만,
적어도 외부에서 보이는
필자 대학, 그리고 사학과는
다른 곳과 비교했을 때 꿇리지 않았으면 했다.
외부의 이미지, 선호도가
내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홍보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데 필자 대학은 홍보를
굉장히 못하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그런 대학 내에서 사학과는
더더욱 존재감이 없다.
팀에서 출판물을 내면
저자를 소개할 때
이름과 함께 학력이 기재됐다.
(지금은 학력을 기재하지 않는다.)
필자가 그 팀에서 일하고 싶은 계기가
그러한 '보여짐'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필자가 그 팀에서 일하며
필자의 이름과 함께 어느 대학을 다니는지 보여준다면,
수험생들의 대학에 대한 이미지, 선호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저자들은 말했듯이 고학력자이다.
교재에 기재되는 학교는 곧 상징이다.
'이런 학교에 다니니까 멋진 일을 한다.'라는 상징이다.
필자 대학, 그리고 사학과가 정말 좋은 곳이라면
여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후배도 교재의 저자 소개란을 볼 때
필자의 이름과 필자가 다니는 대학을 봤다고
얘기했었다.
대학 원서도 거기로 넣어서 합격했고,
베일에 가린 필자의 실체도 알게 되었으니
참으로 신기했을 것이다.
필자가 할 마지막 책무는
출판물에서 필자의 이름은 없어져도
필자의 대학은 남기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제3지대 교육에서
같이 일할 동문이 필요했다.
후배도 필자가 일하는 것에 관심을 보여서
시켜주고 싶었다.
그런데 기회가 나려면 시간이 걸렸다.
예의주시하다가, 6월 말쯤
검토진 자리가 하나 비었을 때
후배를 그 자리에 넣고자 주선했다.
그 주선이 먹혀들어
후배는 1년간 검토진으로 일할 수 있었다.
마음같아선, 집필진을 시키고 싶기도 했지만
집필진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책무가 무거운 데다가
새내기 생활을 즐기지 못하고
학원 일에 시간을 많이 뺏기는 건
그리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도 검토진에 있으면서
'집필진은 참 힘들 것 같다.'라는 얘기를 했으니
결과적으로 잘한 결정이었다.
후배와 같은 사무실에서 같이 일한 건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제3지대 교육이라는 세계에서
필자의 뒤를 잇는 동문이 생겼으니
후련히 떠날 수 있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것들을 얻었고,
많은 것들을 바꿨던,
제3지대 교육에서의 2년간의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필자는 그 여정을 거치며
내면까지 성숙한 어른이 되었고,
소중한 인연을 얻었으며,
사학과의 위치에서도 역사교육에
기여할 수 있다는 선례와 미래를 남겼다.
이렇게 서사가 완성되었다.
2024년 8월 23일,
마지막 출근 및 회식을 마치고
제3지대 교육에서 물러났다.
좋은 방향으로 달라진 미래를 목격하고,
그것이 이어지리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