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의 빈틈은 무엇인가?

제3지대 역사교육 Note: 문답 #1

by 샤를마뉴

'문답'이란 부제가 붙는 장들에서는

일반 독자의 관점에서

제3지대 교육 전반과 관련해서

궁금함을 가질 만한 점들에 대해

상세한 답변을 하겠다.


이 문답을 통해 독자들이

제3지대 교육의 구조,

제3지대 교육의 오해와 진실의 간극,

제3지대 교육에 몸담는 사람의 현실

제3지대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과 지식을

얻어가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 공교육, 우리나라 교육 전반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장과 다음 장에서는

제3지대 교육의 구조를 다룬다.

교재(교육 콘텐츠)는 제3지대 교육의 구조 그 자체이다.

교재의 특징과 제작 과정을 알면

제3지대 교육이 돌아가는 원리를 얼추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을 다루기에 앞서

이 장에서는 왜 제3지대 교육이 부상했는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사교육은 공교육의 대립항이다.

즉, 공교육에 '없는 것'이 사교육에는 '있다'는 뜻이다.

사교육에 공생하는 제3지대 교육 역시도

공교육에 없는 것을 취하고 있다.

이를 알아야 제3지대 교육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장에서 공교육의 문제점을 짚으며

제3지대 교육이 떠오르게 된 배경을 고찰한 뒤,

다음 장에서 제3지대 교육 교재의

특징과 제작 과정을 다루며

제3지대 교육의 내부를 조망할 것이다.


제3지대 교육에서 만드는 교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계교재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평가원과 협력하여

EBS에서 출판하는 연계교재는

수능특강, 수능완성이 있다.


수능특강과 수능완성은

개념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연습 문항을 많이 수록한

공통점이 있다.


평가원은 두 교재의 연습 문항을 참고해

6월, 9월 모의평가 및 수능에

이를 반영한 문제를 출제한다.

반영 비율은 50%로,

탐구 과목의 경우 10문항이

두 교재의 연습 문항을 반영한 문제이다.


여기까지가

고등학교를 다녔고 수능을 봤다면

모두 아는 원론적인 내용이다.


필자는 수시 전형으로 대학을 갔기 때문에

사실 수능은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다.

그래서 연계교재의 문제가

어떻게 실제 평가원 모의평가, 수능의 문제로

반영되었는지 몰랐다.


상위권 학생이나

비싼 돈을 들여 '고급의, 최신의'

대치동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라면

연계교재와 평가원 모의평가, 수능의

연결고리를 어느 정도 알 것이다.


반면, 중위권 이하의 학생이나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이라면

그 연결고리를 모를 확률이 높다.

필자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어딘가 이상하다.

연계교재를 편찬하는 목적은

누구든 그 교재를 충실히 공부하면

사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수능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게끔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 개인의 공부 능력과 사교육,

이 두 가지 요소로 인해

'격차'가 생기는 상황이다.


원칙적으로 이 격차는 공교육이 줄여줘야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연계교재를 다룬다.

수업 시간에 연계교재의 문제를 풀어보거나,

연계교재를 정기고사의 시험 범위에 넣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별다른 문제가 없어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문제가 있다.

'학교의 불균등성'을 대표적인 문제로 꼽을 수 있다.

어떤 고등학교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과

열정적인 교사들이 모여 있어 일명 '명문고'라 불리고,

어떤 고등학교는 놀자판 분위기의 학생들과

적당히 수업만 하는 교사들이 모여 있기도 하다.


학교의 수준 차이에 따라

정기고사 수준에도 차이가 생긴다.

전자의 고등학교라면,

매우 어렵게 시험 문제를 출제해야

그나마 변별력이 확보되고

후자의 고등학교라면,

시험범위를 오로지 교과서로만 정해도

변별력이 확보되는 차이가 생긴다.


연계교재를 학교 수업과 시험의 일부로

편입했을 때 학생들의 입장도 달라진다.

전자 학교의 고등학생이라면,

이미 어려운 시험으로 '단련'했으니

연계교재를 공부하는 것이나

이를 반영한 시험 문제를 푸는 것에도

무리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후자 학교의 고등학생이라면

교과서만 출제 범위로 삼은 시험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더라도,

연계교재를 출제 범위로 삼은 시험에서는

고전할 확률이 높다.

쉬운 전투만 치르다가

난공불락의 적을 만난 기분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떤 학교를 다니든

상위권은 뛰어나고 견고하다.

될놈될이라는 소리이다.

문제는 중하위권이다.


경쟁이 치열한 학교의 중하위권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교의 중하위권 학생은

차이가 극명하다.

전자의 학생은 내신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수능을 볼 만한 역량이 충분할 수 있다.

그런데 후자의 학생은 똑같이 내신 성적은 좋지 않은데,

수능을 볼 만한 역량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학교의 불균등성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단순히 연계교재를 수업에 활용하고

정기고사 출제에 반영하는 것은

'공교육의 틀만으로도 수능을 대비할 수 있다'라는

교육적 본령을 실천하는 게 아니라

학생 개인의 공부 능력, 사교육 등의 요인으로

생긴 교육 격차를 그대로 두는 행위이다.


사교육과 제3지대 교육은 이 허점을 간파하여

연계교재의 연장선이 되는 교재들을 만든다.


인적 자원은 균등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그래서 엄격한 선발 절차를 둔다.

대학은 엄격한 선발 절차로 만들어진 교육 현장이다.

대학 서열화, 학벌주의는

뿌리깊은 전통이 된 형국이다.


대학 서열화, 학벌주의에 대해

'남들 놀 때 더 열심히 공부했으니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건 당연한 거야!'라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부정하지 않는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공교육의 균등성이 대입의 공정성으로

이어지느냐?'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교육의 균등성은

어떤 선발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의 균등성이 아니라,

누구나 교육받을 기회를 부여하는

기회의 균등성을 의미한다.


공교육은 기회는 균등하지만,

결과는 균등하지 않다.

고등학교에서 그 특성이 더 두드러진다.

학생 누구나 똑같이 3년을

고등학교에서 보내지만,

졸업하고 가게 될 대학교는 달라진다.


공교육에서 나타나는 결과의 불균등성은

기본적으로 학생의 의지, 행동에서 결정난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착실히 쌓는다면

좋은 결과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공부 못하는 학생은 도태'되는 걸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학생은 미성숙한 존재이다.

어른(부모, 교사)이 어떻게 지도하느냐에 따라

학생의 앞길은 달라지게 된다.

학생의 학업 성적이 좋지 않은데,

그를 잘 격려해주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계기를 만든다면

무서운 잠재력이 발동되기도 한다.

'수능 기적 신화'도 하나의 예시이다.


사교육은 학생 한 명의 미래를

'성적 향상'의 방법으로 바꾸지만,

'인격 도야'의 방법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학생에게 인간미와 감동을 주는 건

참된 교사만이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요즘은 사교육으로

미래를 바꾸는 방법을 더 원하는 상황이다.


사교육 팽배 현상이 근본적으로 개선되려면,

사회부터가 달라져야 한다.

시험 성적만이 곧 미래를 결정하는 지표로 여기는 교육 분위기,

그에 따라 나타난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가 타파되어야

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 논의를 현실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매우 어려운 문제이며,

필자 역시 논의할 역량이 안 되므로

여기서는 사회 문제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공교육은 '기회의 균등성'이란 특성을

무조건 가져야 하므로

'차별화' 전략을 선뜻 택하기도 어렵다.

차별화 = 상위권 중심 교육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마다 교사, 학생이라는 인적 자원은 불균등하다.

그러니 공교육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해야 되는데,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평등이 하향 평준화로 여겨지고,

상위권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추자니

중하위권 학생도 챙겨야 하는 공교육의 본령이 무시된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공교육에도 과정의 균등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과정의 균등성은 '교육 인프라'를 의미한다.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지면,

인적 자원의 불균등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필자가 말하는 교육 인프라는

교육 도구와 같은 기술적 수단부터

교육 문화(풍조)의 정신문화적 수단까지

광범위하게 아우른다.


작금의 공교육에는

과정의 균등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어느 고등학교가 대학을 잘 보내는 명문고인가?'

'어느 지역이 좋은 학군인가?'를

학부모들이 앞다퉈 따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 두 질문이

교육 인프라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교육 인프라의 관점에서 봤을 때,

사교육 팽배 현상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

사교육 = 좋은 교육 인프라라는 인식이 공고해지면서

학생의 좋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사교육에 많은 돈을 지출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공교육에서

과정의 균등성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사교육에서 이를 보충하는 현상이 보편화되었고,

제3지대 교육은 '좋은 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는 핵심 역할'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사교육에서 말하는

좋은 교육 인프라의 정의는 무엇일까?


'실제 시험에 효과적으로 대비하는

양질의 교육 콘텐츠'이다.

N제, 실전 모의고사가 그 예시이다.


양질, 그러니까

질적으로도 뛰어나야 하는데

양적으로도 '많아야' 한다.

질과 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챙기기는 어렵다.


사교육은 이 문제를 '자본'으로 해결했다.

'안 되면 돈으로 되게 하라.'라는

사교육만의 신조가 있는 것 같다.

제3지대 교육은 사교육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탄생했다.

제3지대 교육 역시 '교육 인프라의 산물'인 셈이다.


양질의 교재도

수많은 교육 인프라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공교육의 교육 인프라가 균등하지 않고,

대입을 통해 결과의 불균등성이 생기는데

그 핵심이 시험이기 때문에

양질의 교재가 각광받는 교육 인프라가 된 것이다.


사교육 그리고 제3지대 교육은

양질의 교재를 개발하여 교육 인프라를 개선했다고 선전할 만하다.

확실히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학생에게 '좋은 교육법'을 선택할 권리를 주고,

교재 개발자들도 나름 교육에 대한 고민을 갖고,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드는 만큼 교육적 가치 또한 있다.

필자의 경우처럼, 제3지대 교육이 하나의 '직장'이 되어

사회 경험, 실무 경험을 쌓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확실히 순기능은 있다.


그런데 또 다른 격차 역시 생겼다.

돈이다.

돈이 있으면 좋은 교육 인프라를 누릴 수 있지만,

없으면 불이익이 더 생기는 셈이다.

학부모 입장에서 남들은 좋은 교재 쓰는데

내 아이만 사용하지 못한다면, 가만히 둘 리가 없다.

그 결과, 사교육비 지출은 계속 최고점을 갱신하고 있다.


과연 공교육은

사교육이 내세우는

'우리가 만드는 양질의 교재로

효과적인 학습 방법론을 구축하고

시험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가자!'라는

전략을 단숨에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지금의 사교육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공교육의 붕괴가 가속화될 것 같다.


사교육의 선전을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접속해보길 바란다. 아래 링크는 대형 학원의 콘텐츠팀이 제작한 시험지를 판매하는 사이트이다. 접속하면 뜨는 문구들을 유심히 살펴보자.

https://www.sdijc.com/?utm_source=bsa_PC&utm_medium=naver&utm_campaign=%EB%9F%B0%EC%B9%AD&utm_content=title&utm_term=%ED%83%80%EC%9D%B4%ED%8B%80%EB%A7%81%ED%81%AC


'공공'은 하향 평준화가 아니다.

공중 화장실도 깨끗해야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듯이.


공교육에도

과정의 균등성이 온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상위권 학생은, 상위권 학생대로 능력을 발휘하고

머뭇거리는 중하위권 학생은 앞으로 가는 힘을 얻는

교육 인프라가 갖춰져야

공교육 = 하향 평준화 교육이라는 오명을 벗고

공교육의 공(公)이 가지는 의미를 되살릴 수 있다.


사교육은 공교육의 빈틈을 노려

파생된 것이다.

공교육이 치밀해야 사교육 열풍도 사로잡힌다.

한 책의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결국 이런 현상에는 불편한 진실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커뮤니티를 포함하는)
광의의 사교육이 자연발생적인 천재지변이 아니라
공적 영역의 빈틈을 메우며
팽창하는 보완물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빈틈이 '빈틈이어서는 안 될 부분'에서마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입시 영역이야 사교육의 전문분야라 쳐도,
교육과 진로지도, 그리고 학생 개인과의 유대감이라는
측면에서는 공교육이 힘을 발휘할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공교육의 역할이자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말인즉슨 책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므로,
즉 학교 수업이 부실해지고
진로지도가 파행에 이르므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므로
좌절한 학생들이 사교육에 이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 문호진, 단요, 『수능 해킹』, 창비, 2024, pp.35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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