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역사교육 Note: 문답 #3
이 장에서는
제3지대 교육을 포함한 사교육을
'소비'하는 입장과
'직업'으로 삼았을 때의 입장 간의 차이가
어떠한지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보통은 사교육을 소비하는 선에서 끝나지,
직업으로 삼는 경우는 많이 없다.
설령 직업으로 삼더라도
평생 직업이 아니라 거쳐가는 직업으로
인식하는 게 대부분이다.
사교육에 몸담는 사람에 대한 인식은
두 갈래로 나뉠 것으로 보인다.
'선망'과 '경멸'이다.
성공한 학원강사의 삶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유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유함은
선망을 이끄는 요인이다.
한편, 사교육은
학생을 학원에 종속시키고
학부모에게 많은 돈을 소비하게 만드므로
'코흘리개 애들의 돈을 뺏는다'라는
인식도 분명히 있다.
또한, 사교육은
'시장 경제에 종속된' 교육이므로,
경쟁에서 밀려나면 생명이 끝장난다.
그래서 사교육에서는 인간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비싼 가격으로 장사를 벌이고,
장사를 좇으면 이익에 골몰하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므로
좋은 인식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사교육 역시
'교육'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므로,
교육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얻어갈 경험이 많기도 하다.
필자도 그런 사람이었다.
사교육을 소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학원 다니기 싫다.'
'그래도 학원에서 만드는 콘텐츠는 좋네?'와 같이
사교육을 단편적으로 인식하겠지만,
사교육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복잡한 인식이 교차하게 된다.
이 장에서는
필자가 경험한 제3지대 교육을 중심으로
외부에서는 잘 모르는
사교육 내부자의 현실을 다각도로 짚어보겠다.
교육자가 갖는 사명은 무엇일까?
저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겠지만,
학생의 미래, 인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계기를 만드는 건
교육자들의 공통된 마음가짐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을
인간이 원하는 방식으로 현실에 구현하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뜻이다.
교육자도 저마다의 사명을 갖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사명을 이루기 어려운 장애물이 존재한다.
게다가 인간은 불완전한 동물이다.
완벽하지 않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놀거나 쉬는 행위'가 아니면 에너지가 소모된다.
재충전을 때때로 해줘야 한다.
교육자 역시 인간이다.
학생에게 언제나 모범을 보여야 되는
책무를 진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때는 '내가 조금 편해진다고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이 가겠어?'와 같은
이기심의 유혹에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상과 현실은 같지 않다는 세상의 섭리,
인간의 불완전한 특성이라는
두 가지의 불가항력 때문에
교육자는 각기 다른 그릇을 가지게 된다.
교육자 본연의 정신이
불가항력에 종속되지 않은 교육자,
불가항력에 종속된 교육자로 그릇이 나뉜다.
전자의 교육자는
흔히 '스승', '은사'라는 경칭이 따라온다.
단지 수업을 잘해서 그런 수식어가 붙는 게 아니다.
훌륭한 덕성(virtue)을 가져야 붙는다.
덕성은 교육자로서의 성실성,
학생을 향한 진정성,
사람을 끌리게 하는 인격 등이 있다.
이런 교육자는 결코 흔치 않다.
후자의 교육자는
대개 교육을 '업무'로 취급하는 교육자이다.
주어진 일만 해치우면 그만인 셈이다.
교육은 그렇게 취급하면 안 되는데도 말이다.
사교육자는 보통 이런 교육자이다.
학생 한 명의 미래를 위해
도움을 주는 고민보다는,
어떻게 해야 많은 이익을 올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더 많이 한다.
사교육자가 진정한 교육자가 되기 어려운 이유는
사교육업이 갖는 특성에서도 기인한다.
사교육을 공간적으로 규정하면 '학원'이다.
학교는 학생에게 어떤 지식만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의 성장, 사회화를 돕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필자도 그랬고)
대부분 학생이 '이런 걸 왜 하지?' 싶은
진로 지도 교육, 인성 교육 등을 학교에서 시킨다.
반면, 학원은 어떤 지식을 가르치는 역할만
수행하면 목적을 달성하는 공간이다.
시험 성적을 올리는 각종 방법을 전수하면
학원의 명망은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사교육에서의 교육은
'인간의 교화, 성장'을 돕는 교육이 아니라,
'경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연구하는 교육이다.
그런 교육은 업무에 가깝다.
그런데 학교의 교사가
교육을 업무 그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것은 교육 문제를 일으키는
교육문화적 문제점이다.
다만, 그러한 교사의 태도를
교사 개인의 문제로 탓하면 안 된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라는 격언이 있듯이,
본래 교사가 갓 됐을 적에는 열정과 사명감이 충만했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식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예컨대, 초임 교사가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쳐 각종 학습 자료를
제작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 교사는 '내가 이렇게 많이
노력했으니, 학생들도 감응하겠지?'라는
기대를 내심 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수업을 했을 때
학생들이 존다거나, 귀찮아하는 등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교사의 반응은 어떨까?
'무엇이 부족했나?'라는 성찰도 하겠지만,
허탈감도 클 것이다.
그리고 공교육에서는
교사의 '개인적인 수업 연구'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면 '사서 고생하지 않는' 인간의 특성상
수업 연구보다는 월급만 따박따박 받으며
주어진 일만 해내는 보신주의를 택하게 된다.
또한, 교사는 수업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교사들이 수업을 하지 않을 때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컴퓨터를 보는 모습'이 떠올리지 않는가?
행정 업무도 한다는 뜻이다.
인간을 상대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교사는 매일 수많은 학생을 상대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그런데 '위계도 있는' 교사, 학부모들도 상대한다.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육을 업무 그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교육자의 태도에 대해
'당신이 교육자의 덕목이 부족한 거야!'라고
비난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물론 정말 교육자로서의 덕목, 능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실의 압력에 굴복한 경우가 많다.
공교육에 종사하든,
사교육에 종사하든,
교육을 다룬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
이타심과 이기심의 간극에서 투쟁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어른이 되면서
'먹고살기 힘들다'라는 발언이
왜 자조적인지를 알게 되었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한다.
신체적 자유, 시간적 자유, 경제적 자유가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지금은 노예와 같은
공식적인 '인신 구속'은 철폐되었다.
하지만 비공식적인 인신 구속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이 바로 노동으로 인한 '시간적, 경제적 부자유'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월급날 하나를 위해 한 달을 고생한다.
자유롭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
시간을 담보로 일을 해야 되고
그렇게 돈이 생겨 자유로워지려 하면,
해야 할 일이 많아 시간이 없기 마련이다.
돈 벌기 참 힘든 세상이다.
자연스럽게 부자를 선망의 시선,
질투의 시선으로 눈여겨보게 된다.
일명 '1타 인터넷 강사'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상이다.
최근 1타 인터넷 강사들이 방송 또는 SNS로
자신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그들은 재벌 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선망과 질투를 동시에 받는다.
하지만 1타 인터넷 강사처럼
살아보라 하면, 그렇게 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실제 1타 인터넷 강사의 발언을 한 번 살펴보자.
해당 영상
"내가 뭐 2주라 해서 하와이 가서
뭐 이러고(쉬는 의미) 있는 게 아니야.
바빠요 다. 바쁜 게 아니라
나는 이거 PPT(이기상 강사는 Powerpoint를
통해 재밌게 개념 설명을 하는 게 특징이다.)
만드는 거, 이게 제일 행복해서
그것만 하고 있어요."
"인생 빡빡하게 살아. 그게 제일 재밌어.
무슨 워라밸이야, 워라밸은.
그 유명한 사람이 한 말 있잖아.
일론 머스크의 'Doesn't hang.'
그 말 알지? 빌 게이츠의 'Dosen't hang.'
hang이 뭐야? hang in around.
빈둥대지 않는다고."
"그 뭐 맨날 워라밸이야. 워라밸하면서
나는 꿈이 일론 머스크래.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성공 그런 건 없지만
취미도 일로 만드시면 그게 되게 좋아져요.
팁을 드리면."
- 위 동영상 발언 中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은
워커홀릭(Workaholic, 일 중독자)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하루에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빼면
일에 골몰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일평균 10시간 넘게 일하는 셈이다.
위의 발언에서 눈여겨볼 게 있다.
수업에 활용할 PPT를 만드는 게 '재밌다.'
인생을 빡빡하게 살아야 '재밌다.'
취미를 일로 만들면 '성공에 가까워진다.'라는
발언이 그렇다.
덕업일치 = 워커홀릭을 잘 보여주는 발언이다.
일을 '빨리 해치울 대상'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놀이'로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취미를 일로 삼으면,
그 취미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덕업일치는 결코 쉽지 않다.
보통 사람은 덕업일치의 길을 택하지 못한다.
그러니 워라밸을 추구하는 것이다.
반대로, 덕업일치의 길을 택하면
워라밸은 꿈도 꾸지 못할 수 있다.
덕업일치로 워라밸을 잃는 건
좋아하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다는 기질의 발현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무슨 워라밸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남들보다 어떤 분야에
더 골몰하고, 더 노력하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독보적인 위치에 이르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사회적 성공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셈이다.
특히 조금이라도 경쟁에서 밀려나면
입지가 확 줄어드는 사교육계에서는
주어진 일만 잘하겠다는 태도를 가지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근본적으로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교육업의 수명이 짧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로 일을 하면,
반드시 지치게 되어 있다.
건강 문제로 사교육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당연히 필자가 속했던 팀에서도
건강 문제를 이유로 일을 그만둔 사람이 있었다.
사교육을 거쳐가는 직업이 아니라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을 때는
먼저 스스로를 자가진단해야 한다.
일평균 10시간 이상을 일에 투자할 정도로
내가 그 일에 진심일 수 있는지,
그 일이 정말 재밌는지,
워라밸을 포기해도 괜찮은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1타 인터넷 강사가 자랑하는 부는
남들보다 몇 곱절은 더 노력해서 얻어진 것이다.
부를 질투하기 전에,
그 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고민하는 태도를 가졌으면 한다.
'능력만큼 받는 것', 자본주의의 냉정한 법칙이다.
일에 미칠 자신이 없으면,
그냥 적당한 월급과 워라밸에 안주하는 삶이
훨씬 행복하다.
'워커홀릭을 요구하는' 사교육계의 특성 때문에, 필자도 제3지대 교육에 있으면서 고됨을 겪었다. 아래 링크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41
여기서 아이러니한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사교육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이
일에 골몰하는 태도가
교육을 업무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
과연 그 태도가 자발적으로 나온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노동이 고되면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확실한 보상 체계'가 있다는 전제에서
사교육 먹이사슬이 치열하게 작동하는 셈이다.
필자도 실력 따라 보상을 확실히 해주는 게 좋다.
실력을 인정해주지 않거나,
실력 대비 보상이 허접하다면
필자는 그 순간부터 정을 떼고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덕업일치'를 기대하고 들어온
필자 대학 사학과도 그랬기 때문에,
제3지대 교육으로 길을 트고, 준거집단으로 삼았다.
노사관계는 대등해야 한다.
사용자는 노동자를 착취하면 안 되고,
노동자는 '을질'이라 불리는 과도한 권리 요구를 하면 안 된다.
사용자와 노동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요소가
확실한 보상 체계라고 생각한다.
확실한 보상 체계가 있어야
노동자에게는 자신의 노동이 '착취'가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받고 하는 행위'로 인식하고,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보너스를 조금 더 지급해
그 이상의 운영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계는 실력에 따라
자신이 받는 돈을 '고고익선'으로 만들 수 있다.
'나는 워라밸은 갖다버려도
돈은 많이 받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교육계에 인생을 투자할 만하다.
그런데 사교육계에는 두 가지의 악습이 있다.
박한 초봉과 포괄임금제가 그것이다.
사교육계에서의 신입 생활은
일도 일대로 힘들지만,
돈도 일한 것에 비해 궁해서 힘들다.
돈보다는 '사교육만의 노하우'를 얻는 것에
의의를 두고 위안을 삼아야 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동자의 노동 시간을 확실히 산정해서
그에 맞는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시급제는 그 점에서 가장 투명하다.
월급제를 채택한다면,
월 근무 시간에 따라 받는 급여가
당연히 최저임금 이상이 되어야 하고,
정해진 근무 시간 이외의 추가 근무가 발생하는 경우,
그것도 급여로 산정해야 한다.
하지만 포괄임금제는
월급을 정액(定額)으로 고정하여,
정해진 근무 시간 이외의 추가 근무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교묘히 회피하는 문제점이 있다.
'노동 착취'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교육계에서는
사무실, 집을 가리지 않고 업무를 보는 특성이 있는데,
여기에 포괄임금제를 적용해버리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사교육계의 하부에 있는 대학생에게는
비록 포괄임금제일지라도, 지급하는 보수가
그들의 관점에서는 상당한 금액이고
사회 경험을 쌓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착취 문제를 '묵인'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1) 국어 TA를 한 N수생의 인터뷰 中:
TA 근무 형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가지예요.
오프라인은 TA들이 부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학생 요청이 들어오면 대면으로 질문을 받고 대답해줘요.
기본적으로 시급이 있고,
질문 처리한 갯수에 따라 인센티브가 나오니까
최저시급은 보장이 되죠.
온라인은 학원 자체 앱에서 업무를 보는데,
까다로운 질문에 시간을 오래 쓰면
최저시급이 안 나오게 돼요.
그렇다보니 오래 걸리겠다 싶으면 대답을 안 해주고
거르는 TA들이 많은 것 같아요.
2) 실전 모의고사 출제진으로 있었던 N수생의 인터뷰 中:
저는 단순히 문제 만들고, 친구 가르쳐주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서 일을 시작했어요.
이 일은 일찍 시작하고 수명은 짧고 그래서 걱정이 있긴 해요.
나쁜 이야기를 좀더 하자면, 시급제가 아니라
건당으로 페이를 받는 분들 중에는 '실제 일하는 시간을
계산하면 최저시급도 안 나온다'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꽤 많죠.
3) 강사 조교로 있었던 N수생의 인터뷰 中:
근로계약서는 학원 아르바이트 할 때 한 번 썼고,
조교 할 때는 한번도 쓴 적 없어요.
그냥 어련히 주시겠지 했던 것 같아요.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고, 업무 형태를 확실히 정하는 게
서로를 위해 낫다는 생각이 들긴 하죠.
또 개인적인 상황을 떠나 일반론적으로 말하자면,
수능판이 사회 경험 없는 어린 학생들을 조교로 쓰면서
인력을 빨리빨리 교체하는데 이들을 보호할 시스템이 없어요.
만약 당사자가 사회생활을 해보고
자발적으로 내린 결정이라면 문제가 없는데,
갓 입시를 치른 학생들이 조교로 뽑히는 거니까 좀 그렇죠.
4) 강사 조교, 실전 모의고사 출제진으로 있었던 N수생의 인터뷰 中:
출제팀 이야기를 해볼게요. 문제를 만든다기보다는 찍어낸다 싶은
수준으로 출제를 했어요.
일이 굉장히 고됐어요. 사무실에 3층 침대가 있는데
사람들이 밤을 새워야 하니까 있는 거에요.
자체 모의고사 양도 많은데 부교재들도 계속 나가요.
특히 7월부터는 계속 교재를 찍어내야 하니까 잠을 못 자요.
그런데 시급이 말이 안 되는 거에요.
사무실에 오기 전에 미리 문제를 읽어 와야 하고,
초안이 이미 짜여져 있어야 해요.
그러면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이랑
집에서 추가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거의 비등비등하거든요.
그런데 계약서는 사무실 시급만 카운트되도록 되어 있어요.
합하면 최저시급이랑 별로 차이도 안 나요.
- 문호진, 단요, 『수능 해킹』, 창비, 2024, pp.296, 299-301.
필자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두 가지로 꼽고자 한다.
첫째, 사교육계의 폐쇄성이다.
사교육계에서는
노하우가 새나가는 것을 철저하게 방지하며
사람이면 사람, 돈이면 돈을 끌어오는 물밑경쟁도 빈번하다.
자연히 폐쇄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이에 따라 '투명해야 하는' 경제적 계약 관계에도
폐쇄성이 침투해 악습이 나타났을 것 같다.
둘째, 사교육계의 비인간성이다.
사교육계에서는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남들이 쉴 때도 일해야 한다.
'일을 많이 하는 것', '노는 것보다 일이 우선인' 게
사교육계의 노동문화이다.
그러니 인간성은 뒷전이 되고,
일한 만큼 돈을 두둑히 주면 장땡이라는 풍조가 공고하다.
사교육 먹이사슬의 중하위에 있는 사람들도
상위에 있는 사람들처럼,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받는 돈, 노동 여건 등에서의 격차는 크다.
자본주의의 차별성이 극대화된 폐해가 아닌가 싶다.
한편, 대형 학원과 같은 사교육 회사는
사교육 내부자들이 만든 교재, 유명 강사의 강의를
대대적으로 선전하여 막대한 매출을 끌어모은다.
학생은 사교육에 '시간'을,
학부모는 사교육에 '재정'을 막대히 소비한다.
소비자들에게 사교육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곱지 않다.
사교육 회사는 벌어들인 매출을
사교육 내부자에게 다르게 분배한다.
유명 강사와 같은 상위의 사교육 내부자는
유명세와 함께 막대한 돈을 쓸어가고,
교재 집필진과 같은 중위 이하의 사교육 내부자도
열심히 일에 임하지만, 대개 '샐러리맨'이다.
이 역시도 씁쓸하지만, 자본주의의 냉정한 법칙이겠다.
계급, 계층은 암묵적으로 남은 것 같다.
모두에게 좋은 교육을 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정당하게 보상하고,
교육자가 '성실한 교육 의지를
지속적으로 발현할 수 있는' 동기를
잃지 않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 교육 문화로 나아가는 요소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공교육과 사교육 모두
어딘가에서 결점이 존재한다.
공교육의 교육적 본령이 근본적으로 옳지만
그 본령을 지키는 토대가 튼튼하지 않고,
사교육은 경쟁으로 교육 기술, 교육 시스템의
수준을 극한으로 끌어낼 수 있지만,
교육적 본령이 썩 올바르다고 볼 수 없다.
자본주의는 교육에 딜레마를 낳는다.
돈과 경쟁이 너무 없으면 교육이 현실에서 무력하고,
돈과 경쟁을 너무 강조하면 교육이 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전자가 공교육, 후자가 사교육이다.
정말 참된 교육(교육자)의 정신이
불가항력에 종속되지 않는 건 시대의 난제인 듯하다.
이 글은 그 난제에 얽힌 매듭을 조금 풀어
명료한 해답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가는 미완의 과정이겠다.
독자 여러분도 이를 같이 고민했고, 고민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