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역사교육 Note: 부록 #1
그간 이 시리즈에서는 22편에 걸쳐
필자가 제3지대 교육의
바깥에서 중심으로 걸어온 여정,
그 여정에서 얻은 경험과 생각을 진지하게 논의하였다.
나무에 비유하자면, 줄기이다.
나무에는 줄기만 있지 않다.
줄기에서 작은 가지들이 뻗어나오고,
가지에서 잎이 피어오른다.
뿌리, 줄기, 가지, 잎이 모두 있어야
온전한 나무를 이룬다.
'부록'이란 부제가 붙는 두 개의 장에서는
가지와 잎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진지한 이야기는 앞에서 원없이 했으니,
부록에서는 재밌는 이야기를 하겠다.
두 장밖에 안 되는 부록에서
한 장을 차지하게 된 주인공은
필자의 연애와 관련한 이야기이다.
다음 장에서는 일전에도 예고했던 것처럼,
필자가 일을 하며 알게 된 식당들의
정보, 그와 관련된 기억을 방출할 예정이다.
만약 필자가 지금도 연애를 못했다면,
문답을 1장 더 쓰고
부록은 식당 소개로만 끝냈을 것이다.
그런데 연애라는 필자 인생의 큰 변혁이 생기며
자랑할 겸(?) 부록의 비중이 늘어나게 되었다.
지금부터 연애에 이르게 된 과정을 풀어보겠다.
필자는 연애에 회의적이었다.
일단 남중남고 출신이다.
초등학교 이후 여학생을 만나거나,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
여학생을 보면 긴장될 정도였다.
대학에 오면서는
여자들과의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여자 앞에서 벌벌 떠는 건 없어졌다.
그렇다고 여자와 바로 연애할 능력이
생긴 건 아니었다.
필자 학과의 여자 동기들은
필자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거나
혹은 이상해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상함'은
역사를 열렬히 좋아하는 괴짜 성향이다.
그냥 어쩌다 사학과에 온 학생의 관점에서는,
맨날 진지하고 역사 관련 얘기만 하는 사람이
당연히 괴짜처럼 보일 것이다.
필자가 외적으로도 뛰어나지 않다.
스스로 잘생겼다 생각하지도 않고,
키는 큰데 말랐고(마른 게 여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주요 원인 같다.)
가진 것도 많이 없다.
첫인상이 상당히 중요한데,
대부분 사람이 필자에게 갖는 첫인상은
'조용하고 평범한 여느 NPC(Non
Player Character)'이다.
필자는 익숙한 사람들에게만 본모습을
보여주는 특성이 있어 그렇기도 하다.
여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려면,
대화할 기회가 있을 때 한두마디만 하면 된다.
'형식적인' 안부를 묻는 대화라면,
그냥 '아는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고
그마저도 안 한다면, 싫어할 확률이 높다.
대화가 좀 더 이어진다면, '조금 친한 친구'인 거고
여자가 먼저 대화를 시도한다면, 호감이 있다는 뜻이다.
어느 여자도 필자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먼저 해봤자 '내가 당장 급한 일이 있는데
이 친구를 이용해야지.'라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필자는 그런 연락에는 일체 응하지 않는다.
만만히 보지 말라는 일종의 대응이다.
사실 필자도 연애할 준비가 안 되어있었다.
'연애는 돈이다.'라는 걸, 연애하면서 제대로 알았다.
누구나 연애 초기엔 매일같이 보고 싶어한다.
밥 먹고, 카페 가고, 커플만이 갈 수 있는 장소를 가면
돈이 훅훅 줄어들게 된다.
돈을 따지지 않아도, 돈이 없어도 사랑이 우선되는 게
참된 사랑이라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연애는 성립하는 것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연애할 만한 인격도 형성이 덜 되었었다.
20살은 코로나로 새내기 대학생활이 날라갔으니,
몸만 어른인 고등학생에 불과했고
21살도 여전히 부족한 측면이 많았다.
22~23살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마음도 어른이 된 것 같다.
연애의 기술은 사실 별 거 없다.
이성도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렵지 않다.
'스스로 평소 가족, 친구를 대하는 태도를
이성을 대하는 태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Yes'면 연애 충분히 잘할 수 있다.
'No'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점검해봐야 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는 법이다.
연애는 '직감'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성의 영역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이 남자다 or 이 여자다'라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그 느낌이 오지 않는다면, 섣불리 연애를 하지 말자.
분명히 후회한다.
스스로 외적으론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이 들면, 내적으로 가꾸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떤 일이나 취미에 열중하면,
그것으로도 좋아하는 이성이 생긴다.
필자 여친도 필자의 그런 점을 좋아해한다.
언어 능력을 단련해도 된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 능력은 외국어 능력이 아니라,
'품격 있는 언어로 말하는 능력'이다.
욕설을 남발하거나, 품격 있게 말할 수 있는 거를
천박하게 말한다면 좋아할 이성은 없을 것이다.
아니, 이성을 떠나 모든 사람이 싫어할 것이다.
어떻게 단련하는지 감도 못 잡을 사람을 위해
한 가지 방법을 풀어주겠다.
글쓰기를 해보자.
글쓰기가 어렵다면,
나의 어휘력과 표현력이 부족할 확률이 높다.
글을 술술 쓸 줄 아는데, 말이 부족한 건 괜찮다.
그 경우는 혼자 말하기 연습 같은 걸 하다보면 는다.
필자도 발표 공포증을 그 방법으로 없앴다.
필자는 스스로를 내적으로 계속 가꿨다.
얼굴은 성형수술을 하지 않는 이상 안 바뀐다.
외적인 면모를 기술로 바꾸는 공허한 허영을 좇기보다는,
정신을 아름답게 채우는 실속이 훨씬 낫다.
필자는 전공 공부와 학원 일에 열중했고,
집에서는 독서를 하며 마음의 양식을 주었고,
'내 길은 내가 정한다.'라는 주체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냥 부지런하게 살아왔다.
필자는 '필자의 진가를 알아주는' 몇몇 사람이 있어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왔다.
학창 시절의 참된 선생님, 학창 시절부터 이어온 친구 등
그런 소수의 사람들이 필자 인생에 근거를 만들어줬다.
필자 여친도 그런 사람이다.
다수가 필자를 그저 그런 사람이라 생각할지라도.
이제 필자와 필자 여친의 '첫만남'을 얘기하겠다.
필자 여친은 놀랍게도
2024년 당시의 신입 집필진이었다.
그런데 존재만 알았던 신입 집필진이었다.
6월 말까지는 한 번도 얼굴을 못 봤다.
당시 신입 집필진이 4명이었는데,
남자가 2명, 여자가 2명이었다.
필자는 그때 주1회, 금요일에만 출근했는데,
신입 남자 집필진의 정체만 볼 수 있었다.
신입 여자 집필진은 그때 출근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한 얘기는 아래 링크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44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48
두 신입 여자 집필진과는 6월 말이 되어서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처음 얼굴을 보게 된 계기가 특별했다.
평소처럼 일하기 위해 사무실로 출근해서
얼굴을 봤다면, 별다른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일은 말그대로 '공적인 행위'이다.
회사생활을 하며 '사적인 면모'를 잘 볼 수 있는 순간이
회식을 하거나, 혹은 회사 사람끼리 놀러가는 것인데
바로 그런 순간에 두 분을 처음으로 얼굴을 보게 되었다.
6월 말에 팀 차원의 정기 회식이나 정기 워크숍(?)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당시 신입 여자 집필진 한 분이 반수를 위해
잠깐 휴직을 냈는데, 반수 성공을 기원하고자
계획된 일종의 송별회였다.
팀이 수능 대비 교재 제작을 전문으로 하다보니,
집필진 분도 반수, 재수를 기본으로 하는 편이다.
(현재 그 분은 반수에 성공해 복직하셨다.)
송별회를 계획할 때부터 하루 안에 끝나지
않을 거라는 언급이 있었다.
천성이 집돌이이자, 사무실에서 업무를 마치면
누구보다 귀소 본능이 치솟는 필자에겐
그야말로 물음표가 떠나지 않았다.
결국 송별회는 1박 2일, MT같은 워크숍으로 결정되었다.
뭐 괜찮았다.
마침 6월이면 대학 기말고사를 치르니
심적으로 지치기도 하고,
막 종강한 기쁨을 여행으로 만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오히려 좋았다.
2024년 6월 22일~23일이 송별회 날짜로 확정되었다.
본래 6월 21일 금요일이 필자 출근일인데,
송별회를 가는 대신 그날 출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날은 간만에 (늦은 기말고사를 마치고)
금요일의 여유를 맘껏 누렸다.
송별회 얘기를 하면서 (팀장직을 대행하는) 부팀장님이 말씀하기를,
'두 신입이 필자를 보고 싶어한다.'라고 그랬다.
후일 여친에게 얘기를 들으니, 정말 필자의 존재가 궁금했다고 한다.
그렇게 2024년 6월 22일,
필자에겐 정말 드문 '토요일 출근'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신입의 정체를 확인했다.
첫인상은 곱게 자란 공주님(송별회의 주인공)과
걸크러쉬(Girl Crush, 필자 여친)였다.
송별회 전에 할 일은 하고 갔다.
오후 5시 무렵까지 여느 때처럼
각자 제작한 시험지, 해설지를 검토하는 일을 했다.
보통 토요일 업무는 금요일보다 널널한 편이다.
이때도 업무량 자체는 안 많았는데,
예약한 민박으로 서둘러 이동해야 돼서 모두 마음이 급했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까지는
필자 여친이 될 사람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정보는 알고 있었다.
필자 여친은 유명한 미대에 다닌다는 사실을.
필자도 한때 미대를 생각해본 적이 있어서
관심이 가는 지점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여친이 미대 입시를 얘기했는데
필자가 귀띔을 하니 '미대 다니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살짝 놀랐다.
그 얘기가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필자도 여친에게 한 가지 말을 듣고 놀라게 되었다.
여친이 필자가 다니는 대학 근처 동네에서 산다고 말했다.
용들의 모임 속에 끼인 뱀의 입장에서
그 말은 굉장히 반갑게 느껴졌다.
물론 필자는 대학만 여친이 사는 곳으로 다니지,
실제로 사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다.
이걸로 관계의 진전이 바로 이루어진 건
당연히 아니었고, 공감대가 살짝 생긴 정도였다.
업무를 마치고 곧바로 민박으로 이동했다.
민박이 있는 곳은 오이도였다.
사무실에서는 1시간 반~40분 정도 거리이니,
서둘러 이동했다.
저녁은 조개구이를 먹었다.
오이도가 바닷가이기도 하고, 조개구이는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니 열심히 먹었다.
필자 앞으로 여친이 앉았는데,
조개를 열심히 굽고 있었다.
먹지도 않고 구우니, 필자가 바통을 넘기라고 했다.
여친이 집념이 상당한 사람인데,
'조개를 열심히 굽는 게 집념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글을 쓰면서 든다.
저녁을 다 먹은 뒤, 민박으로 이동하던 중
밤하늘에 폭죽이 터지는 모습을 보고,
폭죽을 한 번 사서 터뜨리기로 하였다.
바닷가에서는 폭죽 터뜨리는 게 또 묘미이지 않은가?
그래서 폭죽 터뜨리기를 즐기는 중이었는데,
아뿔싸! 비가 오기 시작했다.
서둘러 간식과 술을 사고 민박에 들어갔다.
민박은 살짝 낡긴 했지만, 넓었다.
술자리판을 깔고 2차를 진행했다.
술게임을 위해 팀을 짰는데, 마침 필자와 같이 할 팀원이
여친과 신입 남성 집필진이었다.
그런데 그때 여친이 좀 달리 보였다.
묶음머리를 했는데, 풀었을 때와는 다른 매력이 생겼고
유달리 피부도 하얘보였다. (실제로도 하얗다.)
그래서 이뻐보였는데, 이게 반한 거였나보다.
약간의 연심(?)을 품고 술게임을 했다.
중간에 물과 간식이 떨어졌다.
필자를 필두로 한 술게임 팀이 사왔다.
그 과정에서 다행이게도(?) 술게임이 흐지부지됐다.
어차피 필자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취해있어서, 더 이상 술게임을 하기에도 무리였다.
술을 깰 겸 다같이 라면을 먹고,
잠들기 전까지는 서로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필자는 소파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앞의 여친 모습에 자꾸 눈이 갔다.
맥주 한 병을 조용히 비우는 모습에서
'술을 굉장히 잘 먹는구나.'라고,
다들 놀고 있을 때 홀연히 부엌으로 가
설거리를 하는 모습에서
'정리정돈을 잘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여친이 미소를 지을 때
묶음머리와 안경, 옷과 어우러져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을 풍겼다.
'에이 설마...'라고 의심했던 연심이 사실이 되었다.
'이 여자 괜찮을 것 같아.'라는 직감이 왔다.
여친이 말하길, 필자에 대한 첫인상이 괜찮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여친이 '예의상' 필자에게 하는 행동을
혼자서 예사롭지 않게 생각했다.
필자가 치약을 챙겨오지 않았는데
칫솔에 치약을 짜주고, 이부자리 까는 것도 도와주며
돌아오는 버스에선 필자 옆자리에 앉고 인스타그램 계정도 알려줬다.
필자는 그때까지 여자에게 그 정도의 호의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연심이 더 치솟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오이도에서의 운명적인 첫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필자는 집에 돌아온 직후 그리고 그 뒤로도
계속 여친에 대한 생각이 맴돌았다.
정말 괜찮은 여자, 놓치면 후회할 여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사내연애는 들키면 굉장히 곤란하다.
평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회사에선 일이 중요한데, 연애하느라
일을 소홀히 하면 좋게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사자 입장에서도 부끄러움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필자가 사내연애를 감행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필자는 곧 떠날 사람이었다.
오이도에서 송별회를 가졌을 시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필자가 일할 기간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복직을 한다 해도, 긴 병역을 마치고 나서야 가능하기에
필자에게 사내연애는 걸어볼 만한 도박이었다.
둘째, 여친의 미팅 약속이 파기되었다.
여친은 송별회 일정을 마치면, 미팅을 나갈 생각이었다.
필자는 그 얘기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일요일(6월 23일) 아침에
미팅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나에게도 기회가 오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미팅이 잘 되면 연애로도 이어지는 법인데,
그 여지가 없어졌다는 점에서 필자에겐 기뻤다.
(사실 미팅은 필자랑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여친을 다시 사무실에서 만나려면,
3주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6월 막주 출근 스케줄은 종전대로 진행됐고,
7월 첫주 업무는 전부 재택으로 전환해
모든 집필진이 출근을 하지 않았고,
7월 둘째주는 필자가 휴가를 냈다.
결국 7월 셋째주가 되어서야
여친과 두 번째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건데,
기다리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첫만남에서의 연심이 식을 것 같아 초조했다.
그래서 필자 나름대로 전략을 짰다.
첫째, 돌아오는 버스에서 알아낸 여친 인X타그램 계정에
올라오는 스토리마다 모두 좋아요를 눌렀다.
이렇게 하면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둘째, 출근했을 때에는 여친 주위에 필자가 맴돌았다.
여친은 이때 필자가 자기를 좋아함을 눈치챘다고 했다.
7월 말쯤 되니
여친도 필자에게 살짝 친밀감을 느꼈다.
썸이 시작된 것이다.
필자가 들이댄 영향도 있고,
여친도 필자를 괜찮게 생각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정도 넘어왔으니, 더 과감히 밀고나갔다.
퇴근할 때 인근 지하철역까지 같이 걸어가고,
인X타그램 DM(개인 채팅)도 먼저 시도했다.
다른 여자였으면
사적으로 연락할 일이 없거나,
해봤자 한두마디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여친은 달랐다.
여친은 필자와 꽤 살갑게 대화했다.
점점 빈도수도 잦아지고, 대화 시간은 늘어났다.
필자는 7월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이라는
기획 전시를 보러 갔었다.
그런데 여친과 DM을 하는 과정에서
마침 여친도 친구와 함께 그 전시회를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
해당 전시회 링크
그래서 필자는 감상평도 얘기했고,
상설전시관에 세계문화관도 있으니
세계사에 관심이 많으면 꼭 가보라는 등
어떻게든 대화를 더 하려고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첫 DM은 성공적이었다.
뭐든지 도전은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턴 쉽다.
필자는 염치없는 사람처럼 DM을 계속 먼저 했다.
여친도 족족 답장을 해줬다.
여기서 결정적인 순간이 하나 탄생했다.
여친이 친구와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는데,
세계문화관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필자는 '시간 나면 같이 보러 갈래요?'라고
물어봤다. 사실상 고백인 셈이다.
그랬더니 여친이 흔쾌히 승낙했고, '8월 10일
오후 2시'에 보자고 약속까지 정해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았다.
여친은 그때를
'조용하고 차분한 남자가
전시회를 같이 보자는 말을 할 때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이 담긴 게 보였다.'라고 회상했다.
필자가 그렇게 들이대니 여친도 당황스러워서
친구들에게 종종 의견을 구했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전시회를 같이 가자는 말은
게임 끝'이라고 했다. 맞다.
그 이후부터 여친도 필자에게 먼저 DM를 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모든 일을 다 제쳐두고
여친에게 재빨리 답장을 했다.
그리고 여친은 추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꾸 나에게 왜 들이대는지, 정말 좋아하는 건지,
오이도에서의 첫만남이 계기였다면 왜 그러한지를
알고 싶어했다.
필자는 즉답을 피했지만,
여러 간접적 표현으로 '여친이 좋다.'라는 뉘앙스를 전달했다.
이에 여친도 '다음 학기부턴 연애하느라
시간표를 널널하게 짜야겠다.',
'연애는 기정사실 아닌가?'라는 말을 했다.
분위기가 묘해졌고, 해 뜨기 직전까지 DM를 했다.
그때가 8월 7일에서 8일로 넘어가는 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8월 8일, 운명의 날이 가까워졌다.
여친이 밤에 먼저 전화를 할 테니, 받으라고 연락했다.
떨렸다. 썸을 타는 이성과의 전화라니.
오후 10시 반 넘어서, 예정대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고, 서로 한동안 대화를 못했다.
DM에서는 새벽이 다 가도록 얘기했는데,
전화에서 육성으로 말하려니 부끄러워서 그랬다.
그래도 어색함을 참고 어떻게 대화를 이어갔는데,
여친이 다시 집요하게 나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필자는 계속 능청을 부렸다.
하지만 필자와 여친은 이미 썸 이상의 관계가 되었으니,
답은 정해진 상황이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8월 9일이 되었다.
사실 필자는 2~3달 정도 상황을 지켜보고
고백을 할 생각이었는데,
돌연 여친이 먼저 '나랑 사귈래요?'라고 했다.
그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렇게 8월 9일, 필자 인생의 새로운 기념일이 생겼다.
2024년 8월 9일은 금요일, 출근일이었다.
출근 몇 시간 전에 연애 관계가 성립되었고,
출근해서 '여친이 된' 신입 집필진을 봐야 했다.
여친이 생긴 건 좋은데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사내연애를 저질러 버렸으니 말이다.
필자의 남은 출근은 8월 9일을 포함해, 단 3번뿐이었다.
3번만 모른체하면 만사가 형통해질 터였다.
마지막 출근일인 8월 23일에는 회식을 하니,
그때만 특별히 조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출근할 때 기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8월 출근은
'여친을 보는' 목적도 있어서 기분좋게 사무실을 갔다.
사무실이 스트레스받는 곳이 아니라,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 되는 신기한 현상이 생겼다.
동시에 정말로 집필진 생활의 끝이 다가와서
시원섭섭한 기분도 들었다.
'사내연애는 복사기도 안다.'라는 말이 있듯이,
서로 커플이 된 상태에서의 출근 기간은
2주밖에 안 됐는데, 다들 알아버렸다.
8월 23일의 회식 때 다른 집필진 분들이
여친을 계속 추궁했는데,
이게 사실상 필자랑 사귀는 걸 안다는 증거였다.
여친은 솔직한 성격이어서 어쩔 줄 몰라했고,
필자는 철판 깔고 계속 모른체했다.
여친이 집 가려고 할 때,
필자도 바로 따라나갔다.
이게 사실상 사귄다는 걸 보여준 행위였다.
필자는 한 이쁜 여인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집필진 생활은 끝났지만, 연애는 이제야 시작되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선 어느덧 1주년을 넘겼다.
인생은 정말 모르는 법이다.
필자가 연애를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적당한 나이대에 연애를 하게 되었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좋아하는 이성이 있다면
그 이성이 나에게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그 이성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만약 필자가 연심만 품고 들이대지 않았다면,
지금도 연애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는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고 여친에게 다가갔다.
연애 관계 성립에 있어서 '간절함'과 '자신감'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제3지대 교육에서 얻어갈 것은 정말로 많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애인도 얻었으니,
제3지대 교육에서의 진정한 승리자가 아닐까 싶다.
학원에 여러모로 고맙다.
(이 글은 여친의 허락을 받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