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을 넘어, 교육 공유지로

제3지대 역사교육 Note: 에필로그

by 샤를마뉴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의

필자는 야인이다.

병역으로 젊은 엔진이 잠시 멈춘 상태이다.

그렇게 멈춘 지가 1년이 되어간다.


그 멈춘 시간에 계속 집필진 생활을 했다면

더 큰 도약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동시에 꽤 벅찼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의 시기는 쉬지도 않고 달려온

필자에게 주는 안식이기도 하다.


어떤 일에서 은퇴한 사람은

높은 확률로 회고록을 쓰기 마련이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한때는 이런 일을 했음을 어필하고

생각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한창 일을 할 때는 회고록을 쓰기 어렵다.

글을 쓸 시간이 나지 않는 게 가장 큰 이유이고,

본래 현재진행형의 사건은 평가하기 어렵다.

그 당시에는 특별한 생각이 없거나,

시간이 지나고 생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회고록은 일종의 역사서이기도 하다.

일단 회고록에서 다루는 시간이 과거이고,

과거에 녹아든 공간은 현재의 공간과

다른 경우가 많으며,

그때의 시공간에 얽힌 생각은 숙성되어

평가를 내리는 게 가능해진다.


필자가 집필한 이 시리즈도 회고록이다.

현재는 병역 수행으로 야인이 된 사람이

'제3지대 교육'으로 규정한

학원 교재 검토진, 집필진 생활의 과거를

회고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이 회고록을 쓴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필자가 했던 일의 생경함을

익숙함으로 바꾸는 번역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교육의 '피상'만 알지

'속내'를 알지 못한다.

속내를 아는 사람들조차도,

그것에 관한 언급을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사교육자, 사교육업을

가볍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교육자는 학생, 학부모의 돈을 뺏어

배불리는 장사꾼이다.'

'사교육업이 잘해봐야 학원이지,

중견기업, 대기업 수준이겠는가?'라는 게

사교육자, 사교육업에 대한

대중의 핀잔 섞인 인식일 것이다.


사교육자, 사교육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건 개인의 자유이다.

사교육업의 분위기가 비인간적이기도 하고,

억대 단위의 돈을 굴리지만

국가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는 건 아니다.

그런 면에서는 사교육을 부정적으로

인식을 해도 할 말이 없다.


어떤 기업의 회장이 구설수에 올라도

그 기업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에게는 잘못이 없듯이,

사교육 먹이사슬의 중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평범한 사람이 많다.

예컨대, 사교육 회사의 행정, 회계 업무를 보는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는 직장인의 모습이다.


사교육자도 저마다의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에게는 잠깐 거쳐가는 경험이라면,

어떤 사람에게는 절박한 생계이기도 하다.

필자에게는 사교육업이 '20대의 탁아소'였다.

20대는 사회 경험, 재력이 부족하고

'미래의 불안정성'이라는 짐을 풀지 못하며 살아간다.

사회에서의 어린이인 20대에겐 탁아소가 필요하다.


오갈 데 없는 20대를 거둬주는 곳이 사교육업 같다.

과외만 해도 학생을 가르쳐본 경험,

짭짤한 수입을 얻을 수 있다.

필자처럼 수험용 교재를 검토 및 개발하는 일을 하면

출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10대 시절, 그때의 교육을 다시 들여다보는 역할도 한다.

20대에게 사교육업은 '10대 때 공부한 것,

공부 방법'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이다.

동시에 교육을 '받았던' 입장에서

교육을 '지도하는' 입장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반년만 사교육업에 몸담아도

교육자의 입장과 학생의 입장을 번갈아 생각하는 안목이 생긴다.


그러므로 사교육업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공급자 입장에선, 특히 20대의 경우에는

사회를 미리 경험해보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좋은, 맞춤형의 교육을

선택하는 권리를 준다는 측면에선 괜찮다.

돈에 따른 격차가 문제로 작용할 뿐이다.


사교육업 = 학원강사인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수험용 교재 검토진, 집필진도

사교육업의 범주에 포함되는 사실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잘 모른다.

이것을 다룬 책(『수능 해킹』)이 최근에서야 출간됐고,

인터넷에서도 자세한 정보를 접하기 어렵다.


그러니 필자가 한 일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수험용 교재 검토진, 집필진의 정의와

그들이 행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그 세계를 경험한 필자가 쉽게 번역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 번역으로 사교육자의 현실을 잘 보았기를 바란다.


둘째, 필자가 사교육에 몸담은 게

신념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음을

밝히는 변호이다.


필자는 한때 공교육을 믿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 대입을 거치며

공교육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공교육은 모두를 보듬지 못하는 교육이다.

필자는 유독 고등학교 시절이

차갑고, 외롭고, 고통스러웠다.

공부도 그렇게 잘하지 않는 학생이

역사를 좋아하고, 그와 관련된 꿈을 가진다고 했을 때,

다른 학생과 선생으로부터 돌아온 반응은

노골적인 무시, 무관심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필자는 '역사를 유독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의지를 놓지 않았다.

그렇게 사학과에 진학하였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큰 목표를 이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도 힘들었어서 상처도 남았다.

필자 다음의 학생에게 그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필자가 학창 시절 겪었던 고통 가운데 하나는,

'열악한 역사교육 인프라'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위한

학습 교재, 비교과 활동, 교육 문화 등

교육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미비했다.

일반고면 사정이 전부 비슷비슷할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배운 사학 전공자라면,

젊음이라는 원동력이 있는 대학생이라면,

그 안타까운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하려니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혔다.

사학 전공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중등 역사교육 문제에 관심이 없는 학과 분위기가

그 문제였다.

'누구도 안 한다면, 내가 나서지.'라는 생각으로

다시 외로운 길을 걷게 되었다.


허나 '개인의 노력'만으론 효과가 없었다.

집단의 힘이 필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열악한 역사교육 인프라를 바꾸는

집단의 힘이 있는가에 회의적이었다.

그런 선례를 보지도 못했으니 더욱 그랬다.


집단의 힘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필자는 역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신념을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사교육에서

필자가 바라는 집단의 힘을 발견하였다.

그 힘을 빌려 필자의 신념을 기어이 지켜낸 게

수험용 역사 교재 검토진, 집필진으로서 있던 지난 2년이었다.


따라서 필자의 지난 여정은

이상(신념)의 실현을 위해 현실을 파악하고,

어느 정도 운도 따라줬기에 가능한 여정이었다.

역사교육 인프라의 한 축을 놓은 건 신념의 현실화지만

한편으로, 공교육과 대척점에 있는 사교육에 몸담은 건

신념의 변절 내지 전향이다.


하지만 사교육을 택한 신념의 전향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필자는 공교육에 설 자격이 없다.

사범대에 다니거나, 교직이수를 받지 않으니깐.

그런데도 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제3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제3의 방법이 사교육 분야 중 하나인

수험용 교재 개발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결국 필자가 제3지대 교육이라 부른

수험용 교재 개발은 어쨌든 사교육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제3지대'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필자가 교육의 영역에

교사, 강사가 되는 것 같은 흔히 알려진 방법이 아니라

제3의 방법을 선택해 뛰어든 배경이 있는 게 큰 이유이다.

또 수험용 교재 개발과 학원강사의 강의는

같은 사교육이어도 결이 다르기에,

'제3지대'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적절해보였다.


교육을 전공으로 하지 않고,

교육과 관련된 실무에 뛰어든 사람이니

처음부터 '교육자의 자세'를 가진 건 아니었다.

검토진 시절 때는 일하는 목적이 '돈 버는 것에' 컸었고,

집필진 때는 예상과 달리 일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

포기해버릴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생각의 층위가 다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다양함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온전히 담을 수 있다.


교육자의 책무, 고난을 버텨내니 교육의 힘이 보였다.

미래를 바꾸는 교육의 힘이.

필자가 학창 시절이었던 때보다

역사교육 인프라가 좋아지게 되었고,

그렇게 짜인 인프라에서 공부한 수험생이

필자의 학과 후배로 들어오니

자연히 교육자의 자세가 내면화되었던 것 같다.


필자는 사교육에 깊이 몸담은 사람이었지만,

언제나 생각은 '역사에 관심 있는 학생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역사교육'이라는 가치로 향해 있었다.

비인간성을 요구하는 사교육 업계의 분위기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 했다.

이상이 필자가 스스로를 변호한 내용이다.


이 시리즈를 쓸 때 영감을 얻었던 책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시에예스(Emmanuel

Joseph Sieyès, 1748~1836)의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이다.


이 책은 그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으로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해인 1789년에

발표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제1신분인 성직자, 제2신분인 귀족이

모든 특권을 독점하고,

제3신분인 평민은 권리 없이 의무만을

지우는 봉건적 사회 제도(앙시앙 레짐,

Ancien Régime)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런 사회의 모순이 극에 달하며

발생한 것이 프랑스 혁명이다.

초기에는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중기에는 민중을 중심으로

시민 혁명의 열기가 짙어졌다.


시에예스는 이 책에서

국민(Nation)의 개념을

'주권을 가진 제3신분'으로 명확히 하고,

제3신분만으로 구성된 국민 의회를

설립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더해, 근대적 헌법 이론과

정치 사상의 밑바탕까지 제시하였다.

(시에예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박인수 옮김, 책세상, 2021, p.9.)

아래에 서문을 옮겨본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서문의 원본
이 저서의 목차는 대단히 단순하다.
여기서는 세 가지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1.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 모든 것
2. 정치적으로 제3신분은 현재까지 무엇이었는가
- 무(無)
3. 제3신분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 무엇이 되는 것

문제에 대한 답이 옳은지 여부를 살펴볼 것이다.
현재까지 이 답은 옳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진실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고 과장되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뒤이어 우리는 제3신분이 실제로 중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이 시도되었으며
또 어떤 방법들이 취해져야 하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것을 논할 것이다.

4. 각료들이 시도했던 것과 특권 신분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제안하고 있는 것
5. 우리가 행했더라면 하는 것
6. 마지막으로, 제3신분이 합당한 지위를 취하기
위해 해야하는 것

- 위의 책, pp.15-16.


시에예스는 이 책에서 당시까지

정의되지 않은, 어쩌면 정의할 필요성이

없었던 제3신분을 정의하였다.

단순히 정의한 게 아니라,

제3신분이 권리를 향유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까지 제시하였다.


필자도 위 책의 저술 방식을 빌려

프롤로그 제목을 '제3지대 교육이란 무엇인가'로 짓고,

공교육 = 제1지대 교육,

사교육 = 제2지대 교육으로 규정한 뒤

제3지대 교육을 전면으로 드러냈고

이것이 교육에서 어떻게 역할하는지 밝혔다.

또한 '문답' 장에서는

기존의 공교육과 사교육이 갖는 문제도 비판하였다.


다른 하나는,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1886~1944)의 『서양의 장원제』이다.


이 책은 그가 대학 강의노트로

활용하고자 썼는데,

문체, 목차 구성, 담긴 내용은

그냥 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끝부분은 미완으로 남은 게 아쉬울 따름이다.


책의 내용은 프랑스 장원제와 영국 장원제를

비교 분석하여, '언제부터 확립됐는지

모르는' 장원제의 기원에 최대한 접근하고

양국이 같은 장원제를 채택했는데

사회적, 경제적으로 다른 양상이 나타난

이유를 밝히는 걸 골자로 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장원제를 '가장 고급의 방법',

'가장 수준 높은 방법'으로 접근해

장원제를 세밀히 이해하는 게 가능하다.

이 책을 기반으로 마르크 블로크가

직접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했다면,

대학생들은 장원제 준전문가가 됐을 것이다.


보통 강의노트는 딱 강의만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간략히 제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은 강의노트를 넘어 오늘날에도

중세 유럽 장원제를 알기 위해 읽히는

'고전'으로 남았다.


이 책은 필자가 이 시리즈를 쓰는

'자세의 지침'이 되어줬다.

이 시리즈는 단순한 '필자의 사교육 경험담'이 아니다.

작게는 역사학과 교육의 관계부터

크게는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고민하는

'교육 공유지'이다.

그 목적은 '짧은 절정기'와 '문답' 장에서

잘 드러났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책의 내용을 자세히 다루지 않고,

옮긴이의 서문과 글의 목차만 소개하겠다.

그것만 봐도 이 책이 강의노트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걸 알기에는 충분하다.


『서양의 장원제』원어(프랑스어)본
이 책은 원래 출판을 목적으로 쓴
정식 저서가 아니고,
블로크가 1936년 스트라스부르 대학을 떠나
소르본 대학에 경제사 담당 교수로 부임한 후
작성한 일종의 강의록이다.
이 강의원고는 구술강의용으로 잠깐 사용하기
위해서 작성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본문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블로크는 강의록을 큰 정성을 기울여 작성했다.
단순한 메모 형식으로 작성하지 않고 책을 쓰듯이
일일이 논리적으로나 문법적으로
연결된 문장을 쓴 것이다.

그렇지만 강의원고가 그와 같이 세심하게
준비되지 못하고 비망록의 형태로 되어 있거나
초안 형태로 되어 있는 경우도 이따금 있다.
각 장의 끝 부분에서 흔히 그렇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마르크 블로크, 『서양의 장원제』, 이기영 옮김,
한길사, 2020, pp.23-24.
KakaoTalk_20250812_004631058.jpg 『서양의 장원제』목차

필자는 이전 글에서 마르크 블로크를 언급한 적이 있다.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27


하나의 숙원사업이 이루어진 기분이다.

이제 필자는 20대에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묵직한 회고록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글을 쓸 시간이

인생에서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더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다.


필자는 야인생활이 끝나고

또 다른 회고록을 남길 만한 기회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 기회를 잡아 경험을 쌓고

다시 이 시리즈와 같은 글을 쓰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시간의 길이가 납득될 만큼의

글을 쓰는 순간이 오리라 믿으며 긴 시리즈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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