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역사교육 Note: 문답 #4
이 장에서는
대학생이 어떻게 제3지대 교육의 중추가 되어
교육적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대학생은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어른이다.
학업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하고,
그야말로 부족함 천지이다.
대학생은 부족함 속에서 채움을 갈구한다.
대학생은 열정도 넘친다.
힘듦을 이기는 원동력이자, 낭만이다.
필자의 대학생활은 낭만적이지는 않았으나,
열정적이었다고는 얘기할 수 있다.
필자의 열정은 역사에 대한 열정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대학생의 끊임없는 번뇌이다.
대학 졸업이 가까워지게 되면,
'뭐해먹고 살지?'라는 걱정이 엄습한다.
그 걱정이 현실화됐을 때, 더 절박해진다.
필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제3지대 교육은
관심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교육의 작은 지분',
'힘들어서 못할 일'이라고 취급할지 모르겠지만,
대학생의 입장에서는 사뭇 다르다.
적성에만 맞는다면
부족함을 채우고, 열정을 불태우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이는 보금자리이다.
제3지대 교육도 교육이다.
비록 전통적인 교육의 형태와는 다를지라도,
교재 개발이라는 방법으로
학생의 학업, 미래 설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대학생이 제3지대 교육에 몸담는 현상은
어쩌면 '교육에서의 세대 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교육의 형태, 방법론을 달리하여
신선함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학문에서의 세대 교체는 당연시되는 일이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여기에서는
제3지대 교육에 있었던 필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사연 일부를 풀어
(단, 특정성 성립은 철저히 방지하겠다.)
사회에 대한 대학생의 단상을 남기고자 한다.
사교육의 성황에는
'어떤 교과목을 담당하느냐?'도 영향을 준다.
국어, 수학, 영어 분야에서의
사교육은 앞으로도 망할 일이 절대 없다.
역사 분야의 사교육이 생긴 게 특이한 일이다.
사실 사회탐구 과목은 사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
역사 과목은 더욱 그렇다.
연계교재를 충실히 학습하고,
이전에 출제된 평가원 모의평가/수능 문제를
꼼꼼히 분석한다면 7~80%의 준비는 된 셈이다.
그런데 나머지 20%를 채우는 방안이
특별히 없어서 역사 분야의 사교육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최근 평가원 모의평가/수능 역사에서는
단순한 암기로 풀리는 문제를 안 내는 추세이다.
역사 과목에서도 사고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니 역사 개념 공부를 했어도
'시험은 왜 이렇게 어렵지?'라고 느끼는 학생이 많다.
'역사에서의 사고력은 무엇인가?'
'사고력을 요하는 역사 시험은 어떤 것일까?'가
학생들의 새로운 요구 사항이 되었다.
제3지대 교육은 이를 공략해서 나머지 20%를 채웠다.
필자가 속했던 팀은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필자가 팀의 검토진으로 시작해서,
중견 집필진으로 끝맺을 때까지
팀의 약진이 놀랍도록 두드러졌다.
'역사는 소수 과목이라,
투자해봤자 돈이 안 된다.'라는 인식도 깨졌다.
매출이 매해 고점을 갱신했다.
그것도 억대이다.
아직도 대학 그리고 사회에서는
'역사 전공자는 굶어죽는다.'라는 우스갯소리를
중얼거리는데, 사교육 안에서의 역사는 아닌 것이다.
그간 역사는 고결한 대상으로 여겨졌다.
역사를 제대로, 그러니까 학문적으로 공부하려면
'그 어떤 물질적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된다.'가
암묵적인 원칙이었다.
돈에 초연하니 고결한 대상이 되었다.
지금도 역사를 '상업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위에 대해
못마땅한 눈치를 보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역사 분야의 사교육이
바로 상업 수단으로서의 역사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냥 돈에 초연할 수 있겠는가?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론
'돈에 초연해도 행복하다.'라고 설파하는 사람들은 위선자이다.
그런 사람들 까놓고 보면, 쌓아놓은 돈이 많다.
가난은 모든 불행의 근원이다.
자본주의라는 원칙이 깨지지 않는 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행복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역사를 고결한 대상으로 여기는 건
지금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태도이다.
학문으로서의 역사도 현학적인 요소가 많아서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다.
역사를 보는 관점을 달리 하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했다.
역사를 모두가 향유하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학문에 국한되지 않고
교육, 각종 문화콘텐츠, 자기계발 등
일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분야에 역사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역사학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라고
자조하는 건 죽림칠현과 다를 바 없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중국의 위진 남북조 시대에
세속과 거리를 두고 현학적이고 고상한 철학 논의인
청담(淸淡)을 나눈 일곱 선비를 의미.
역사를 고결한 대상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사학과에서도 그대로 이어졌고
그 결과, 전공과는 무관한 길을 택하는
사학과 졸업생이 늘어났다.
사회에서도 역사학 전공자들이 활약할 길을
터놓아주지 않는다.
역사학 전공자의 입장에서는
좌절과 방황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대학에 졸업한 뒤 평생을
스스로 먹고 살 줄 알아야 하는데,
정작 사학 전공이 쓰임새가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 역사학이 뿌리내릴 토양은 매우 척박하다.
토양을 비옥하게 하려면,
비료를 뿌리고 물을 줘야 한다.
이후로도 끊임없는 환경 관리를 해야 한다.
지금의 '역사학 농사'를 비유하자면,
역사학이라는 씨앗을 양질의 씨앗으로
만드는 방법에는 골몰하지만,
그 씨앗을 뿌리내리는 방법에는 소홀한 느낌이다.
씨앗만 좋아서 뭐하겠는가?
씨앗이 뿌리내릴 토양이 척박해
수확물이 생겨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상업 수단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건 불가피하다.
역사학이라는 씨앗에 비료와 물을 공급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수요와 공급의 관계로 생각했을 때,
사교육에서는 '국어, 수학, 영어'를 공략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많은 수요'가 고정되어 있으니까,
공급재를 생산했을 때도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학생들의 수요가 많지도 않은 역사 과목이
사교육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매출을 거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역사의 고결성을 포기하고, 상업성을 취했지만
역사가 교육 그리고 경제의 측면에서 주목받았다.
역사가 교육에 녹아들어,
학생들이 역사 공부의 재미와 중요성을 알고
역사가 경제에 녹아들어,
역사학 전공자가 전공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사회에서 활약하는 가능성이 생겼다.
이런 긍정적인 변화를
단지 역사의 고결성이 침해됐다는 이유로
못마땅해할 것인가?
오히려 역사에 현실성을 불어넣어
고결성을 퍼뜨리는 역할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필자를 비롯한
제3지대 교육에 몸담은 역사교육, 사학 전공자들은
역사가 사회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는 점,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라는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고
현실과 사투를 벌이는 '여느 대학생'이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사학과를 다니는 사람에게
역사교육과라는 곳은 선망의 대상이다.
필자 개인의 생각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교육이라는 수단으로,
역사학이라는 전공을 살리면서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는, 역사교육과의 메리트는
사학 전공자에게 꽤 큰 부러움으로 다가올 만하다.
교직 과목 중에 '교육평가'라는 과목이 있다.
어떤 교과목과 관련된 문항을 출제하는 법을 배운다.
필자가 제3지대 교육에 있으면서
실무로 배운 영역이기도 하다.
쉽지는 않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영역이다.
검토진으로서 제3지대 교육을 같이 경험한
후배에게도 교육평가의 원리를 알려주니
이런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사학과에서 왜 안 가르칠까요?'
맞는 말이다.
사학 전공자도 배우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역인데,
제도적으로 못하게 막아놓았다.
필자 대학 사학과는 교직이수가 불가하다.
그런데 교직이수를 허용하는 다른 대학 사학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전체 인원 중에서 10~20% 내외로
교직이수 가능자를 선발하니
경쟁이 매우 치열할 것이다.
교육자의 자격을 얻기 위한 문턱이 있으니
사학 전공자가 교육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교육이 적성에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하고 싶어도 못하면 의지가 꺾이기 마련이다.
필자의 노력, 운이 잘 조화되서
역사교육을 경험할 기회를 얻은 게 신기할 뿐이다.
그런데 제3지대 교육에 몸담고 나서
역사교육과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의 역사교육과도 사정이 그렇게 좋지 않다고 한다.
교육업의 전망이 좋지 않은 것에 더해
역사 교사 모집 인원은 줄고 경쟁률은 대폭 상승한 게
그 원인이다.
선망의 시선에서 현실의 시선으로
역사교육과를 바라보게 해준 사람은
팀장님이었다.
역사 분야의 사교육에서는
이름을 남기고 새로운 길을 여셨지만
정작 제도권의 역사교육에 대해서는
매우 염세적인 반응으로 일관하셨다.
가장 놀랐던 건
'사학과를 갔어야 한다. 사학과가 부럽다.'라는
발언을 하셨을 때다.
사학 전공자는 늘 '미래에 뭘 해먹고 살아야지?'라는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을 하고 산다.
그런 사람에게 '미래가 보장되는 줄만 알았던'
역사교육 전공자가 굳이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사학과에 갔어야 한다는, 자조적인 발언은 의미심장했다.
그 발언을 듣고 역사교육과의 현실이 보이게 되었다.
교육이라는 장신구를 입어도
역사학의 미래는 가시밭길이라는 사실이 보였다.
사담을 푸는 순간들이 있을 때,
팀장님이 역사교육과의 현실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흘리셨다.
첫째, 역사교육과는 '제약'이 많다고 하셨다.
이 말은 사학과와 역사교육과의 학풍 차이를 의미하는 것 같다.
사학과의 학풍은 비교적 자유롭다.
이 자유 덕분에 인문대생은 다른 단과대생에 비해
대학생활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필자 대학 사학과도 굉장히 널널한 곳이다.
전공이수 조건이 빡빡하지도 않고, 복수전공을 장려한다.
학술의 정수를 원했던 필자에겐 그 분위기가 썩 맞지는 않지만,
학계 이외의 다른 진로를 모색하고 싶은
학생들에겐 최적의 분위기겠다.
다른 대학 사학과도 명문대가 아닌 이상
대체로 분위기가 비슷비슷하다.
반면, 역사교육과는 널널할 수가 없다.
전공 과목에 더해 교직 과목까지 이수해야 하니
빡빡할 수밖에 없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은 졸업 전까지 따라다닌다.
사학과의 경우, 1~2학년 때 필수 과목을 들어두면
3~4학년 때는 듣고 싶은 과목들만 들을 수 있다.
보통은 복수전공에 집중한다.
사학과의 진로는 보장된 것은 없지만,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인문학에서 강조하는 읽기 능력, 쓰기 능력, 비판 능력이
사회 진출에도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읽기 능력을 '데이터 해석 능력'으로 연관지은
디지털인문학을 대학 교육에 실험하는 중이고,
이공계열 학문에 대한 소양을 갖춰 그쪽 진로로 빠지는 학생도 늘어났다.
막아둔 길이 없다. 사학과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역사교육과의 진로는 보장된 게 있지만,
그게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예컨대, 역사교육과에 진학했는데
교사가 되고 싶지 않은 학생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학생에게 역사교육과의 커리큘럼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다른 분야를 하려고 해도, 전공이수 조건이 빡빡해서
다른 분야에 집중할 여력도 부족해지게 된다.
더군다나 역사교육과의 보장된 진로인
교사의 전망도 어두워지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에 꼽는 대학 역사교육과에
다니는 검토진 한 분과 사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분이 말하길, 거기서도 교사를 하려는 학생은
점점 줄고 있고, 전문직 취득을 위해
로스쿨, CPA 등에 더 관심을 둔다고 얘기했었다.
1류대학의 사정도 그런데, 그 아래는 말할 필요가 없다.
즉, 역사교육과의 제약은
교육 이외의 다른 진로로 진출하는 가능성의 제약이다.
사학과에 가면 굶어죽는다는 소리를 들어
역사교육과에 진학했지만, 교사도 썩 좋은 진로가 아니라고
생각한 팀장님에겐 그 제약이 무척 싫으셨던 모양이다.
둘째, 공교육에 대한 회의이다.
그 회의의 연원을 모두 알 수 없지만,
단서가 되는 내용을 흘리셨다.
역사교육과는 역사 '공교육'만 배우는 공간이라 하셨다.
'다른 형태의 역사교육은 왜 안 배우는가?'라는
의도가 든 발언처럼 느껴졌다.
필자도 공감하는 지점인 게,
역사 공교육은 일방향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는 다양한 관점, 다양한 해석으로 바라봐야
참맛을 느낄 수 있는데, 공교육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교육학, 교육론이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팀장님이 말씀하시기를,
교육학 자체를 전공한 교수님이 계셨는데
참고 자료를 주로 서양권 자료로 쓰셨다고 하셨다.
필자는 그 발언을 '서양 교육학, 교육론이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가?'라고 해석했다.
안 맞다.
맞았다면, 학생부종합전형 및 고교학점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학 전공생으로서의 필자도
한국사가 아니라 서양사, 세계사에 관심이 있고,
평상시의 필자도 서구화된 생활 양식,
개인주의로 대표되는 서구적 사상에 익숙하다.
그런 필자도 '맹목적인 서양 문화 수용,
서양우월주의'를 경계하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우리 것, 동아시아의 것이 좋기도 하다.
필자에게 음식은 확실히 이쪽 취향이다.
양식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할로윈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에서
유행처럼 따르는 서양 문화'도 챙기지 않는다.
서양의 것을 수용할 때는
그것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 등을 면밀히 파악하고
우리나라의 것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서양의 것을 객관화하고,
맹목적인 수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
필자가 세계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그리고 동아시아의 교육문화는
'경쟁'이 뿌리깊은 풍조로 정착되어 왔다.
과거제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각종 입시에 이르기까지 경쟁의 연속이었다.
이런 교육문화가 공고해진 이유는
'인적 자원으로만 먹고 살아야 하는'
국가의 지리적, 경제적 특성 및
'출세가 곧 성공'이라는 사회 인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런 고유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서양의 교육문화가 무조건 좋은 것이라며 수용한 게
지금의 학생부종합전형과 고교학점제로 나타났다.
부작용이 많다.
팀장님은 특유의 카리스마,
탁월한 업무 능력, 사람을 모으는 인망 등에서도
필자에게 큰 감명을 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게
역사교육과의 현실을 서슴없이 보여줬던 것이었다.
정치에서도
온건한 좌익과 온건한 우익 간의 접점이 많고,
생각하는 바도 비슷하다.
'역사교육을 선망하는' 현실의 사학 전공자와
'사학을 선망하는' 현실의 역사교육 전공자의
관계도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마음이 맞는 인연,
인생을 바꾸는 인연을 보기 쉽지 않다.
필자에겐 귀인과도 같다.
교육자는 내적으로 젊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학생을 자주 상대하면서
학생들의 사고 방식, 문화, 언어를 체득하기 때문이겠다.
제3지대 교육에서는 학생을 상대하진 않지만,
조직의 내부자는 99% 대학생이기에 젊은 조직이다.
일반적인 회사에서 보이는
부장 - 차장 - 과장 - 대리 - 주임 같은 위계가 없다.
원래도 젊은 조직인데,
신입을 선발하면 더 젊어진다.
2024년에 선발한 신입 집필진도 필자보다 1~3살 젊었고,
올해 선발한 신입 집필진은 필자보다 4~5살이 젊다.
필자도 나름 젊은데, 한물간 취급을 받는 게
조금 슬프다.
젊은 사람을 자주 대하면, 사고가 유연해진다.
젊은 사람은 열정이 넘치고
미래를 위해 계속 변화하는 존재이다.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者赤 近墨者黑)이란
유명한 고사성어가 있듯이,
어떤 사람을 자주 만나고 대하느냐에 따라
내 자신도 달라지게 된다.
필자도 젊은 사람이긴 하지만,
더 젊은 사람을 보면서
'신선함', '개방성'의 힘을 느꼈다.
필자보다 더 젊은 신입 집필진들이
역사교육, 사학 전공을 하지 않음에도
수능 역사 교재를 집필하는 '개방적 태도'도
필자에게 많은 놀라움을 주었다.
이와 관련한 얘기는 아래 링크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47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48
업무에 소요되는 시간과 정성이 막대하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적지 않지만
팀이 굴러갔던 원동력은
'젊은이의 열정, 유대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학생은 경험과 돈 앞에 목마르다.
경험이 있어야 미래를 보는 안목이 생기고,
돈이 있어야 윤택한 삶을 사는 기반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뭐라도 하고 싶은 기질이 발현된다.
필자가 제3지대 교육에 입문한 과정을 담은 글에서도
그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났으니,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시리즈의 초창기, 전환기라는 부제가 붙는 장들 참고.)
필자는 사무실로 출근하러 갈 때,
(물론 또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되느냐는
걱정도 했지만) 매주 돈 주는 학회를 가는 기분이었다.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진 역사교육,
사학 전공자들과 대담을 나누고
만들어온 결과물을 발표하는 그런 순간들이 즐거웠다.
명문대를 다닌다고 해도
사람 대 사람으로서는 별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놀 때 누구보다 잘 논다.
그리고 내로라하는 대학에 다님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일개 학원 집필진으로 있는 건
우리나라의 고질적 사회 문제를 보여주는 신호같다.
취업이 그만큼 어렵다는 소리이다.
특히 사학과는 어느 대학을 나왔든
취업하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이다.
필자와 같이 일한 사학과 출신 집필진들은
동병상련의 존재인 셈이다.
그 현실적 어려움에서도 '가능성은 있다'라는
사투를 벌였고, 벌이는 중이다.
여전히 부족한 게 많고, 사회에서는
한참 어리다는 취급을 받는 대학생들이
제3지대 교육에서 힘을 합쳐
기존 교육의 판도를 흔드는 업을 이루었다.
그 배경에는 학원의 적극적인 지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변혁을 이루는 '젊은 열정'이 큰 것 같다.
2027년에 교육이 크게 바뀐다.
수능과 내신 모두 달라진다.
국어, 수학, 영어의 자리는 공고하겠지만
역사의 자리는 크게 위협받게 되었다.
현재의 수능은 '선택형 수능'으로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국어, 수학, 사회/과학 탐구)에서
세부 시험 분야를 선택할 수 있다.
이 법칙은 깨지지 않을 것 같았으나,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마련되면서 깨질 예정이다.
선택형 수능에서 통합형 수능으로 바뀌게 된다.
2027년 수능(2028학년도 수능)을 응시하는 학생은
세부 시험 분야가 없는 국어, 수학, 영어와
통합사회, 통합과학을 시험 교과목으로 치러야 한다.
'융합형 인재 양성'이라는 교육 기조에 발맞추어
자신이 문과 성향이든, 이과 성향이든
이에 상관없이 인문, 이공적 소양을
'시험을 통해' 모두 갖추게 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사회탐구 과목들이
통합사회로 일원화되는 과정에서
역사 과목의 지분이 대부분 상실됐다는 점이다.
새로운 형태의 역사교육이 빛을 보는 듯 하더니,
교육 정책의 변화로 다시 깜깜해지려 한다.
필자는 병역을 마치면
다시 제3지대 교육으로 돌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지금까지 해왔던 거와는 전혀 다른 업무를 해야 한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역사 전공자'로서 역사교육에 몸담다가
'비전공자'로서 일반사회 교육에 몸담을 상황이
도래할 걸 생각하니 심경이 복잡하다.
물론 이건 필자만의 고민이 아니다.
사교육계에 몸담는 모두의 고민이다.
지난 달, 잠시 사무실에 들렀을 때
내년 그리고 내후년 팀 운영에 대해
아직 팀에서도, 학원 본원에서도
전혀 정해진 게 없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사교육은 변화하는 상황에서 먼저 앞서간다.
지금의 걱정이 무색해지는 방안을 분명 만들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사교육계에서 나름 경력을 쌓은 데다가
그쯤이면 대학도 졸업했을 시점이니
또 무언가를 헤쳐나갈 의지가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공부를 하거나
경험을 쌓고, 열정을 불태우는 건 상한 연령이 없다.
필자는 적어도 20대에는 그런 삶의 자세를 놓지 않으려 한다.
이 글에서는
제3지대 교육에서의 대학생들의 면모를 들춰
대학생의 현실 인식, 사회를 보는 시선, 저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 기록이, 이 시대 젊은이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하는
한 사례로써 기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