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교육의 썰물: 곧 떠날 사람, 남겨진 생각

제3지대 역사교육 Note: 짧은 절정기 #2

by 샤를마뉴

2024년 5월,

팀의 운영 국면이 다시 변했다.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썰물', 빠져나간 사람이 생겼다.

그것도 팀장님과

4년 가까이 일해온 다른 경력자가

일시에 빠져나갔다.


두 분은 불화가 생겨서 빠져나간 건 아니고,

잠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어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필자가 그 팀에서 빠져나갈

다음 타자가 될 운명이었다.

시한부가 임박해왔다.


비록 시간이 짧긴 했지만,

2024년 8월까지의, 그 3개월은

필자가 팀에서 가장 빛났던 시간이었다.

끝이 정해졌으니, 더 열심히 달렸던 것 같다.


이 장과 다음 장에서는

그 3개월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어떤 공간,

'책임'을 평가하는 일이 주어지는 모든 공간에서

개개인이 일정한 시간을 보내면

자연히 지위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요즘은 평생 직장이란 말이 없다고 한다.

어떤 직장에 20~30년의 시간을

바친 사람을 보면 경탄스럽다.


필자도 2년동안

제3지대 교육이라는 판에서 산전수전을 겪어

지위를 조금씩 바꿔나갔는데,

그 시간의 열 곱절은 넘게 한 직장에 있었다는 뜻이니까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신입은 고달픈 자리이다.

어떤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신입으로서 겪는 고달픔을 감수하게 될 것이다.


아직 숙련되지 않아서,

조직 전체에 하달되는 업무의 흐름 중

가장 작은 부분을 담당해도 소화하기 벅차고

수많은 선임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게

신입으로서 겪는 고달픔이겠다.


그런 신입도 시간이 지나면

회사 사람, 업무에 익숙해지고

경험이 쌓이며 노련해진다.

모든 선임은 신입 시절이 있었고,

모든 신입은 선임으로 나아간다.


집필진 생활 2년차에 접어들며

필자도 어느덧 막내 자리를 벗어나고

선임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되었다.


사실 2년을 경력으로 쳐주는가에

대해서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

보통 회사에서 경력자를 채용할 때는

최소 경력을 3년으로 설정한다.

2년은 경력으로 치기에는

살짝 부족함이 있다.


그런데 제3지대 교육이라는 판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신입 생활이 상당히 고되기 때문에,

2년차 집필진으로 접어들기 전에

그만두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앞의 글들에서 말한

'잦은 인사상의 변동'이 이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생명이 참 질긴 사람같다.

경쟁이 치열한 제3지대 교육의 세계에서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이

버티고 버텨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살아온 인생이 순탄치 않아서,

고생을 버티는 능력이 생긴 모양이다.


보통 사람이 견딜 수 없는 고난을

극복한 사람은 위대해진다는 말이 있다.

집필진 생활을 1년(혹은 그보다 못되는 시간)만 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다는 걸 미루어볼 때

분명히 제3지대 교육 혹은 사교육에서

살아남는 건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운명인지는 몰라도,

필자는 늘 앞서서 고생했다.

사회(혹은 제도)에서는 잘 안 풀리는 팔자였다.


필자 세대는 변화의 파고에 놓인 세대였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됐을 때,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처음으로 적용되었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코로나가 발병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능을 12월에 봤고,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오니

'이제 융합의 시대, AI의 시대다.'라며 대학 교육과정이 바뀌었다.


필자 세대는 변화의 실험쥐로 사용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육의 측면에서 특히 그랬다.

그 변화가 좋았느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매번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필자가 보수적, 개인주의적으로 변한 이유이다.


대학에 와서는 안정을 영위하고 싶었는데,

또 이것저것 바꾸려 하니까 신물이 났다.

'내 운명은 내가 만든다.'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3지대 교육에서의 외로운 여정을 하게 됐다.

여기서도 고생할 팔자였는지,

2023년의 신입 집필진 생활은 고됐다.


그렇지만 제3지대 교육이

그 순탄치 않았던 필자의 인생을 펴주는 곳이었고,

필자를 인정해주는 곳임은 분명했다.

그래서 버텼던 것 같다.

필자에게 '2년차 집필진'이라는 타이틀은

단순한 '2년차'가 아니라,

'20여 년의 인생, 생각이 함축된' 2년차였다.


여러 고생을 겪고 선임이 되었다.

필자는 선임의 위치에 있으면

항상 '후임의 어려움을 줄여야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워낙 고생을 겪은 팔자여서,

그 고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제3지대 교육에 뛰어들어

수능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재를 펴내고,

더 좋은 조직문화를 고민한 것도 그 영향이라 볼 수 있다.


신입들이 필자를 부담스러운 선임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게 필자의 '선임이 된 신입의 자세'였다.


5월부터 신입들과 같이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모든 신입과 같이 일한 건 아니었다.

신입 4명의 출근일이 각기 달랐는데,

그 중 2명만 필자의 출근일과 맞았다.

나머지 2명은 6월 말이 되어서야 처음 얼굴을 봤다.


신입들의 면모에 대해서는

팀장님과 부팀장님이 신입들을 교육했을 때

'괜찮다'라는 평가를 했었는데,

그 평가대로였다.

성격도 모나지 않고, 열심히 일에 임하는 분들이었다.


지난 장에서 얘기했듯이,

신입들은 업무와는 무관한 전공을 하는 사람들이다.

필자는 업무와 관련있는 전공인, 사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신입들에게 '사학 전공자의 능력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를

늘 고민했다.


이 고민은 어쩌면 교육자의 고민과 결이 같을지도 모르겠다.

학생은 배우는 사람이므로, 아직 앎이 없는 상태이고,

교육자는 배운 사람이므로 앎이 있다.

교육자는 앎이 없는 학생들에게

앎을 흩뿌리는 고민을 해야 한다.

앎을 흩뿌리는 방법을 어렵게 고안했다 하더라도,

꼭 그 방법이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역사학을 전공하지는 않지만,

관련한 일에 관심이 있는 비전공자에게

전공자로서 역사학의 위용, 전문성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도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터득한 앎을

그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흩뿌리는 방법을

고안한다는 점에서 맥락이 같다.


그렇다면 역사학에서의 '전문성'은 무엇일까?

사료를 해석하는 능력이겠다.

옛날에 쓰인 기록을 보고

그 기록이 진실인지,

기록 너머에 담긴 역사의 모습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역사의 깊이를 알게 된다.

정말 끝없이 깊다.


역사 시험 문제 출제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어떤 유물을 시각 자료로 제시한 뒤에 설명을 덧붙인다든지,

사료의 일부를 발췌해 그대로 사용하거나 해설을 덧붙인다든지 등등

창조력과 역사학을 교육에 응용하는 능력이 관건이다.


평가원 모의평가/수능 역사 문항 출제 원리의 예시와 관련한 내용은 아래 링크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5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10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24


가장 어려운 역사 시험 문제 출제 방법은

사료를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사와 관련한 사료의 95%도 한글로 쓰이지 않고,

한문으로 쓰여 있다.

사료 접근에 있어 언어 장벽이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사료를 교육에 활용하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이다.


사료를 해석하는 능력을 갖췄더라도,

만사가 형통해지지 않는다.

교육평가에서 출제 오류와 같은 논란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교육과정을 명확히 준수해야 한다.

교육과정은 이전 글에서도 말한 바 있듯이, 표준화된 앎이다.

학생들이 어떤 교과서로 공부했든

문제풀이에서 유불리가 없는 '공통 개념(핵심어)'을 골자로

교육평가에 활용할 문항을 출제해야 한다.


따라서 사료를 역사 시험 문제에 활용하려면,

사료 자체만으로도 문제풀이에 지장이 없는

교육과정 속 공통 개념이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역사 속의 모든 사료가

시험 문제에 활용하라고 기록된 게 아니다.

그 말은 사료를 해석할 줄 알더라도

교육적으로 활용할 방법이 없으면 말짱 꽝이라는 얘기다.

사료를 교육에 활용하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이다.


사료를 해설해주거나,

약간의 윤색을 거치면 대부분 문제가 해결된다.

(평가원 모의평가, 수능 역사에 활용되는 사료도

약간의 윤색을 허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료 해설 혹은 윤색도

결국은 역사학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어야 잘할 수 있다.

사료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해설이나 윤색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비전공자임에도 수능 역사 교재를 집필하는 일에

참여한 신입들의 의지는 매우 높게 샀지만,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평이한 난도의, 표준적인 문항은 잘 만들었다.

그 정도면 신입 집필진치곤

상당히 괜찮은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필자도 그 시절에는 변별력이 있는 문항보다는

무난한 난도의 문항을 많이 만들었다.


다만, 표준적이다 보니 특색이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팀에서는 매해 수십 회의 시험지를 제작한다.

한 시험지당 20문제이므로, 1000문제는 족히 넘는다.

그러므로 시험지마다 각기 다른 느낌을 줘야 한다.

신입 분들끼리 만든 시험지들은 요리로 비유하자면,

재료는 다양한 것을 사용하려 노력했는데

전부 같은 양념으로 돌려막은 느낌이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로 불고기를 만든다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각 고기에 사용할 양념은 같은가?

그렇지 않다.

소불고기는 간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

돼지 불고기는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을

주로 사용한다.


시험지를 제작할 때의

재료는 각 문제마다 활용할 자료이다.

재료는 워낙 다양하므로 구하기에는 어렵지 않다.

그것을 변별력 있게, 완성도 있게

한 시험지 안에 풀어내는 기법이 바로 양념이다.


이 양념을 만드는 기술은

하루아침에 터득하기에는 어렵다.

일을 거듭하면서 스스로 노하우를 쌓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필자도 그저 많이 훈련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필자만의 양념을 만들었을 뿐이다.


필자는 신입들과 일하면서

스스로 쌓은 노하우를 조금씩 풀어줬다.

대화로 풀어주기도 했고,

필자가 만든 문항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이 역시도 앞서서 고생한 사람이

다음 사람에겐 덜 고생했으면 하는

마음가짐의 발현이었다.


역시 필자는

'선임으로서의 모습'이 가장 자연스러운 듯 하다.

후배들은 조금만 잘해주고,

하나라도 더 지식을 알려주면 마음의 문을 잘 연다.

얼마 되지 않는 나이 차이로

예절을 강조하고, 위계를 만드는 건

적절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입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역사의 공공성'에 대한 생각이 더욱 커졌다.


비전공자라도, 전공자처럼

역사 관련 자료를 다룰 수 있게 하고

접근 장벽을 낮추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사무실에 있었던 역사 서적들의 일부, 2023년 7월 14일에 촬영했다.

본래 사무실에는 수많은 역사 서적이 쌓여 있었다.

문항 제작을 위한 참고 자료로 마련한 건데,

문제는 서적들이 무거워서 들고다니기 어려웠다.

몇 문제 내자고 수십 권의 서적을 집으로

가져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학원 측에서 디지털의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

서적을 전부 OCR(전산화, 텍스트를 컴퓨터에서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는 것) 처리한 뒤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수많은 서적이 전부 컴퓨터 안으로 들어왔다.

서적을 굳이 들고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자료 접근성을 높여도,

자료를 잘 활용하는 건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자료 접근성을 우선적으로 높인 뒤,

자료를 해석 및 활용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가령 한문 사료를 디지털화한다고 가정하면,

단순히 한문 사료를 전산화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료를 이해하는 교육 도구를 제공할 때

비로소 접근성과 활용도가 모두 높아질 것이다.


사학과에서도 사료를 강독하는 방법은 가르쳤지만

사료를 실생활에 활용하는 방법은 가르치지 않았다.

필자는 제3지대 교육의 판에 들어오고,

시험 문제에 활용하기 위한 자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사료가 쓸모있게 활용될 수 있구나'를 알았다.


그런데 역시 비전공자에게

사료는 문턱이 높은 대상이다.

사료 데이터베이스를 많이 알려주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팀의 선임 집필진(전부 사학, 역사교육 전공자)들도

그 문제를 알고 있었다.


역사의 쓰임새를 넓히고,

특정한 소수가 아닌 다수가

역사에 막연한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닌

가치가 있는, 현실적인 결과물을 내려면

역사학의 전문성을 대중화하여

'상향 평준화'하려는 교육적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최근 공공역사가 대두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앞에서 밝힌 문제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17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18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19


역사의 공공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마냥 보수적이어서도 안 되고,

마냥 '컴퓨터, AI가 만능이다'라는 사고에 젖어서도 안 된다.

중간자를 잘 짚어내는 게 관건이다.

교육이 그 중간자일 것이다.


꼭 역사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역사학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조금 두서 없었을 생각을

간명하게 정리하는 핵심 같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3지대 역사교육의 전선에 선 사실은

지금도 필자에게 많은 생각을 남기게 하는 지점이다.

그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게

신입들과 어떤 업무를 했는지 얘기하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시한부에 임박한 필자가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책무가 있었다.

다음 장에서 짧은 절정기의 끝을 맺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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