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온다..들어온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편이다. 딱 맞게 출근해서 허둥대는 것은 내가 자라온 성향과 맞지 않다. 미리 준비하고 여유를 두어 나왔지만 차를 한 잔 마시곤 결국 엉뚱한 곳에서 여유를 다 잡아먹어 쩔쩔매는 것, 그것이 나답다. 매일 오전 7시 30분이면 커피 한 잔을 들고 교실로 도착하는 일정. 그때부터 나의 학교생활은 시작된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교실, 이곳에서 하루동안 아이들의 소음이 북적대겠지. 나는 또 어떤 실랑이를 소소하게 벌일 것인가, 오늘은 힐링예능을 찍게 될지 막장드라마를 찍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백지상태의 교실을 바라보며 커피 한 모금을 으뜨거 하며 후루룩 마신다.
아무도 없는 교실은 기분이 좋다.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 같다. 물론 이 공간에서 나는 울고 짜고 뒹굴고 돈을 번다. 노동의 현장이지만 동시에 숭고한 밥벌이의 공간이다. 리모델링되기 전의 교실들은 대부분 나무바닥이었다. 나무바닥 특유의 냄새가 있다. 아침에 자물쇠를 딸깍, 따고 문을 열면 오래된 도서관에서나 맡아볼 수 있는 눅눅하고 따스한 나무의 냄새가 난다. 물론 쓰레기통 관리를 잘해야 나무 냄새만 맡을 수 있다. 추운 겨울날, 포근한 나무 냄새에 더해진 커피믹스의 향긋함은 천국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무바닥은 데코타일 등으로 교체되었고 요즘의 교사들은 대부분 커피믹스 대신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럼 어떠랴. 아무도 없는 교실은 역시 기분이 좋다.
하지만 사실 마음 한 바닥은 조금 두렵다. 곧 15분 안으로 민준이가 등교할 것이다. 우리 반 얼리버드 학생. 부모님의 출근 사정 때문에 일찍 등교하게 된 습관이 아마 저학년 때부터 형성되어 지금까지 온 모양이다. 내가 일찍 출근하는 담임이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어쩌려고. 교실에 혼자 있을 뻔했잖아. 물론 그럴 수 있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내가 없을 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또 다 나의 책임이 된다.
민준이는 제법 어른스럽고 얌전한 학생이다. 별다른 말썽을 부리지 않지만 이 친구는 나의 고요한 아침 산통을 와장창 깨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나는 아주 반갑게 맞이하고, 인사한다. 정말 반가워서가 절반, 적막함이 깨어짐에 깜짝 놀라서가 절반이다.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지만 이 친구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섬과 동시에 나는 본격적으로 교사라는 옷을 제대로 갖춰 입는다. 뭐랄까. 집에서 혼자 팬티바람으로 편안하게 누워있다가 갑자기 손님이 오셔서 바지며 윗도리를 주섬주섬 입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났으며 교사와 제자로 만났다. 또한 고객과 점원의 관계일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한껏 입꼬리를 올리며 민준이를 반겨준다. "민준이 왔어? 오늘도 빨리 왔네. 피곤하진 않아?" 오늘 나는 너에게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며 너는... 음... 여기서 뭐라도 배워가길 바란다.
곧 평온한 나의 아침이 깨어질 예정이다. 7분 뒤에 민준이가 올 것이다. 아... 이 기분은 마치... 부모님이 집에 오시기 전에 혼자서 놀고 있는 사춘기 아이의 그것이다. 7분 안에 나는 좀 더 즐기고 싶다. 혼자만의 기분을 더 누리고 싶다. 아이들을 아끼고 존중하며 사랑하지만 나에게는 지금 한 줌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아아 민준이가 걸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