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부자
교사를 그만둔 올해, 마흔 하고도 둘이 되었다. 처음 마흔이 되었을 때에는 아무런 감흥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직도 마흔이라고?’ 싶은 희한한 느낌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더 나이를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이제야 마흔이라니. 후배 교사들에게 ‘어서 짬이 좀 찬 나에게 조아려라!’할 마음은 없고, ‘사십이나 먹어놓고도 일을 저렇게 해?’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해 나를 갈아 넣었다. 드륵드륵 갈려진 나는 교실에서 잃어버린 지우개처럼 자그마해졌고,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학교를 내 손으로 버리고 밖으로 나와보니 나는 그냥 마흔두 살의 아줌마였다. 마인드가 젊고 늙고를 떠나... 그냥 서서히 빛을 잃고 바래가는 중년 여성이었다. 커리어우먼에서 아줌마로의 전환은 이렇듯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구나!
이제 부자가 되었다. 월 천 버는 경제적 자유를 이룬 부자가 아닌, 하루 종일 뒹굴어도 시간이 남는 ‘시간 부자’! 무엇을 해도 좋았다. 늘어지게 잘 수도 있고, 아주 느리게 밥을 먹어도 되며 종국에는 세수하지 않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세수란 하루만 하지 않아도 금세 3일을 훌쩍 넘겨버리는 마법 같은 일이다) 단, 돈이 드는 일에는 조금 인색해졌다. 역시 돈 안 드는 최고의 일은 ‘생각’이다. 생각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하필 인간은 시간이 많으면 걱정과 고민 따위의, 해봤자 결론이 안나는 무한 순환의 생각이 늘어나는 모양이다. 온통 좋지 않은 생각들을 하면서 감정의 늪지대에 두 발이 찹! 하고 빠졌던 기간이 퇴직 후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곳은 굉장히 질척거려서 한 번 엉겨 붙은 발은 자력으로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다. 결국 구해줄 사람도, 취미도, 긴급한 업무도 없는 나는 늪지대에 안겨 가만히 웅크리고 있기를 택했다.
감정의 늪지대에도 나름의 규칙이 존재했다.
1. 생각을 넓고 깊게 만드는 독서는 하지 않을 것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지 모르니 얇은 만화책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눈앞 책장에 여러 권의 책들이 반듯하게 꽂혀있지만 절대 꺼내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붙잡고 유튜브를 보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도 또 다른 규칙이 있었다.
2. 눈 감았다 뜨면 남는 게 하나도 없는, 들풀처럼 가벼운 재미있는 영상만 볼 것
그 규칙에 따라 나는 많은 시간 동안 유튜브의 심연으로 들어갔다. 유튜브엔 세바시, EBS다큐, 자기 계발 관련 영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던 온갖 웃긴 영상들이 쉴 새 없이 나를 다그치듯 업로드되었고, 이를 놓칠세라 충혈된 눈으로 조그만 화면을 보다 잠드는 때가 많았다. 이걸 이제야 알다니!
시간 졸부인 나는 이렇게 활자를 보지 않는 시간들을 보내었고, 그러다 보면 때에 맞게 허기가 찾아왔다. 늪지대의 규칙은 여기에도 몇 가지가 더 추가되어 있었다.
3. 몸과 마음을 일깨우는 건강한 식재료는 거부할 것
4. 식사하는 동안 반드시 스마트폰 영상을 깊이 들여다볼 것
5. 한 입은 서너 번 씹고 대충 삼킬 것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6. 다 먹고 나면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누울 것
게다가 나는 규칙에 쓰여 있지 않았지만 늪지대에서 무척이나 환영받을 일을 하곤 했다.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켰던 것이다. 그간 만나온 학생들에겐 골고루 먹으라며 잔소리하던 나는 배달 음식의 편안함에 푹 빠져 허우적대었다. 다른 쪽으로 균형 잡힌 식습관이었다.
마지막으로 감정의 늪지대가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규칙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엔 결코 지킬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젠 수월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7. 씻지 않을 것
늪지대에선 기본적인 세수에서부터 샤워까지, 어쩔 수 없는 설거지를 제외하곤 몸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아야 했다. 화장하지 않고 밖에 나가려면 커리어우먼으로서 약간의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가볍게 기초화장만 하고 간 날에는 오늘 좀 아파 보인다는 말을 들어 기운 빠진 척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젠 세수를 금하라니.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 스킨과 로션의 뚜껑은 열리지 않기 시작했고 동시에 폼 클렌저는 수납장에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초반의 기름진 얼굴이 종국에는 바삭하게 마른 쥐포가 되었다. 그 얼굴은 점점 익숙해져 갔다.
어딜 가나 모범생처럼 성실하게 굴었던 나는 이곳에서도 정해진 규칙을 잘 따랐다. 그렇게 몇 주를 지내다 보니 발바닥에 끈적이고 뭉근하던 감촉을 너머 단단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바닥이었다. 깊고 깊은 밑바닥. 마음은 절반으로 나누어졌다. 이곳을 박차고 나갈까, 아니면 좀 더 머물까. 생각해 보면 여기만큼 편안하고 따뜻한 곳도 없는 것 같다. 내 몸을 둘러싼 몽글몽글한 기포들. 물론 씻지 않고 사는 삶은 더없이 편리했다. 눈을 뜨면 아침이었고 졸부들이 돈을 뿌려대듯 시간을 공중에 흩뿌리다 보면 밤이 되었다. 결국 이불속에서 평온하게 말라죽어가던 나는 이곳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언제든 또다시 들어올 수 있는 곳이기에 나가는 것도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 자유를 눈치채려면 반드시 밑바닥을 딛어야만 했다.
의원면직만 하면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마음이 홀가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도 그 이후의 삶을 상상 않고 덜컥 식부터 올려버린 나였다. 의원면직마저도 그 뒤로 펼쳐질 일들을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채 결정했다. 직장에 나가질 않으니 사람이 이렇게까지 게을러지고 무너질 줄이야. 내가 나를 다잡지 않으면 ‘쓸모없음, 무가치함’의 구렁텅이로 쉽게 굴러 떨어질 수 있었다. 때때로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너는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야’라는 목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퇴직한 지 이제 막 두 달이 지났을 뿐인데. 자기만의 시간을 온전히 써본 적 없는 내게 한꺼번에 많은 시간이 주어지자 결과는 우울이었다. 다행히도 의원면직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이런 내게 당장 필요한 건 월 천만 원도, 새로운 직장도 아니었다. 감정의 늪지대에서 빠져나와 평범한 하루를 보냄에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일주일 전, 간신히 우울감을 씻어내어 건강하고 심심하며 무미건조한 생활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삶이란 도파민 범벅에 편리함만으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아이들을 가르칠 일 없지만 읽고 싶은 책은 많았으니 차근차근 읽어나간다. 자연사가 꿈이니만큼 배달 음식은 끊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출근하지 않아도 세수는 더없이 꼼꼼하게 해 본다. 마치 세수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마음의 안정을 위해 구직 사이트를 살펴보고 내 글을 쓰며 앞으로의 돈벌이를 가끔씩 생각한다.
다시 주어진 오늘도 어제처럼 평범하고 나른하게 하루를 보내보기로 한다. 시간 부자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