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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으로 나아질 수 있을까

헬스장 등록

by 김지현

헬스장 회원권을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순식간이었다.

월요일 오전, 직장에서 나온 내가 기운 빠져 보였는지 친정엄마는 내게 한 마디를 해주셨다.

“그동안 남을 가르치는 일만 쭉 해왔으니 이젠 너도 무언가를 배워봐라”

월급도 사라진 마당에 돈도 함께 벌 수 있는 것 없을까, 해서 국비 지원 자격증도 알아보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여태 해온 게 아이들 가르치는 것뿐이라 그런지 종국엔 죄다 아동 교육과 관련된 자격증만 찾게 되었다. 그렇다고 취미 삼아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싶은 마음은 크게 동하진 않았다. 이것저것 찾다 보니 지금의 나는 자격증 공부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 저릿하게 느껴졌다.

백수의 일과에 따라 카페 순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집 근처에 헬스장이 있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쳤다. 헬스라면 어떨까. 시간도 때울 수 있고 건전하다. 적어도 몸 하나는 챙겼다는 성취감이 들겠지? 꾸준히만 한다면 나중의 병원비도 아낄 수 있겠다는 약은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한 가닥의 어둠이 있었다.


‘이거라면 20년 묵은 식이장애 증상을 고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1분 만에 멋대로 결정하고 저항 없이 헬스장으로 들어갔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나,

와...

내향인인 나에게 헬스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압도감은 대단했다. 쿵작거리는 시끄러운 댄스 음악과 운동복을 입고 쇠질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러닝 머신 위에서 힘차게 달리는 사람들... 왜인지 모르겠지만 출입구에 서서 그 광경을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칼로리가 소모되는 것 같았다. 동시에 기가 쭉 빠져나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 서 있던 그때,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다가와 처음이냐고 물으며 카운터로 나를 안내했다.

와...

나를 안내해 준 이 남자 직원은 내가 활자로 본 ‘헬창’이라는 단어에 완벽히 부합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울끈불끈 한 흉부가 다 드러나는 민소매에 왁스를 가득 바른 짧은 머리, 목에 걸린 사슬 같은 체인형 목걸이와 노오란 선글라스! 나도 여기서 오랫동안 운동을 하면 저런 멋진 근육을 가질 수 있을까.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그를 홀린 듯 따라가 가입신청서를 작성했다. 더불어 10회에 50만 원이라는 개인 PT도 신청했다.


헬스장이 아주 처음인 건 아니다. 예전에 다녀본 적은 있지만 그게... 무려 20년 전이다. 트레이너에게 대회 권유까지 받았던 헬스 꿈나무는 이제 살이 오동통 오른, 때깔 좋은 돼지가 되었다. 이런 엉망인 몸을 가지고 마음대로 기구를 만졌다간 다치기 십상이다. 게다가 내 나이는 벌써 마흔둘. 값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병원비가 더 크게 나올 판이다. PT는 10회 먼저 수강해 보고 괜찮으면 더 이어서 하자 마음먹었다.

예나 지금이나 헬스장‘만’ 이용하는 비용은 생각보다 저렴했다. 혹시 돈만 내고 안 나가는 회원들 덕분에 유지되는 시스템일까! 나는 낸 돈 아깝지 않도록 알차게 이곳을 사용해야지. 매일 출근 도장을 찍겠노라 다짐했다. 애 둘을 다 키운 중년 여성의 끈기는 상당한 것이었다.

개인 락커와 탈의실 등을 둘러보고 준비물을 숙지했다. 직원과 함께 첫 PT 수업 일정 약속도 잡았다. 백수는 시간 부자이기에 당장 내일 오전 10시에 1회 수업을 듣기로 했다.

출입구에서 신발을 신으며 다시 한번 헬스장 전체를 둘러보았다. 땀과 열기로 가득한 공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청바지 차림을 하고 있는 나는 과연 이곳에 스며들 수 있을까. 운동하는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살이 빠진 듯한 기만적인 느낌. 카페에서 돌아오는 길, 배가 고파 너구리 라면을 사려고 편의점으로 향하던 내가 고민 없이 헬스장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가다니. 결국 지갑 속 카드는 라면이 아닌, PT 10회를 결제하고 말았다. 눈앞의 무거운 쇳덩이들이 새까만 식이장애 덩어리들도 꾸욱 눌러주길 바라며 밖을 나섰다. 오늘 점심은 어쩐지 닭가슴살에 양배추를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 번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식재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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