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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Aug 30. 2024

잠자리는 왜 날지 못했는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

 어린 시절, 내 별명은 곤충박사였다. 수많은 곤충들을 키우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곤충이 왜 그렇게 좋냐고 물었다.

 "신기하잖아요. 어떻게 이런 작은 생명들이.."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그토록 좋아했던 곤충을 키우지 않게 된 건.


 어느 뜨거운 여름날, 우연히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보았다.

 "그때 그 잠자리는 왜 날지 못했을까"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말을 내뱉고 찰나의 시간이 지났을 때 머릿속에서 어릴 적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기억 속의 나는 그때 그 장소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었다. 그 꼬마아이는 왜 울고 있었을까? 잠자리 때문이라고 하면 과연 몇 명이나 믿을까?


 꼬마아이는 시골 할아버지댁에 놀러 가는 걸 좋아했다. 시골엔 그 꼬마아이가 좋아하는 곤충이 잔뜩 있었으니까. 꼬마아이는 할아버지댁 앞 저수지에서 작은 인연을 만났다. 바로 잠자리 수채였다. 잠자리는 우리가 아는 모습의 성충이 되기 전 애벌레의 상태를 물속에서 보낸다. 그것을 잠자리 수채라고 칭한다.

 꼬마아이는 자기가 아는 가장 강한 사람을 불렀다.

 "아빠! 이거 좀 잡아주세요!"

 직접 잡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렇게 만난 작은 인연을 소중히 채집통에 넣어 집까지 함께 왔다. 작은 생물들을 키우는 걸 좋아하던 날 위해 집의 마당엔 작은 생태계가 존재했다. 꼬마아이는 작은 생태계에 잠자리 수채를 위한 터를 마련해 주고 몇 날 며칠을 바라보았다.


 "어!"

 마당에서 짧은 감탄사가 들렸다.

드디어 잠자리 수채가 물 밖으로 나와 미리 준비해 둔 나뭇가지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충으로 변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꼬마아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생각도 못했던 재앙이 오고 있었다. 개미였다. 잠자리가 성충으로 변한 직후에는 몸이 마르지 않고 날개도 젖어있어 한동안은 날지 못한다. 그 틈을 타 개미들이 잠자리를 노린 것이다.


 자리를 비웠던 꼬마가 다시 잠자리를 보러 간다.

 "지금쯤이면 성충이 되었을 거야! 무슨 잠자리일까? 왕잠자리면 좋겠다!"

 꼬마아이의 기대는 마당에 도착하자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렇다. 그 꼬마아이가 운 이유는, 내가 울었던 이유는 잠자리 때문이었다. 잠자리는 평생을 날아오르기 위해 물속에서부터 준비했을 것이다. 수많은 천적들을 피해 가며 그리고 먹잇감을 찾아가며 날아오를 순간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은 개미라는 아주 작은 존재들에 의해 사라졌다. 잠자리는 날지 못했다.


 내가 울었던 이유가 사실 잠자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자연 속에서 잘 살아가도록 두었다면 이 잠자리는 날 수 있었을까? 죄책감이었다. 성충으로 변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며 개미들을 막아줬다면 날 수 있었을까? 후회였다. 잠자리는 왜 끝내 날지 못하고 개미들에게 죽어버린 걸까? 화가 났다. 그래서 울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연에서 곤충을 데려오지 않는다. 마당의 작은 생태계도 없어졌다. 왜 그랬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소유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잠자리를 통해 조금 엿볼 수 있었다. 후회는 언제 해도 늦었다는 사실과 함께 노력을 방해하는 것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말이다.


 그랬다. 그때 그 잠자리가 날지 못한 이유는 내가 날지 못 이유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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