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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다섯 번째, 글쓰기에 관하여

by Taylor

지금은 새벽 12시이다. 가장 좋아하는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던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써본다. 실은 글을 쓸 때 음악을 듣지 않는 편이지만, 오늘은 왜인지 꼭 듣고 싶었다. 마구 샘솟는 생각들을 막으려 그런 것일까? 여기저기서 떠오르는 떫은 생각들을 곱씹으며 시작해 보자.

오늘은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글을 쓰는 것 말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 어쩌면 미래에 하고 있을 것 말이다. 글을 쓰는 일은 내게 무엇일까?

아직 학생인 내게 미래를 물어본다면 나는 쉽사리 답하지 못할 테다. 그러나 나는 아주 흐릿한 청사진을 그려가고 있다. 글을 쓰면서 사는 것 말이다. 소설이 되었든, 에세이가 되었든, 나는 글을 쓰며 살고 싶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유명한 대작가라고 말하겠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물론 어렸을 땐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기 마련이라고. 유명해지는 일, 돈 버는 일이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법이라고 내게 말했던 것이다. 그럼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되나요? 나는 되물었다. 나는 그 답을 듣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선 그런 일들이 중요치 않은 것일까,라고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라고 하면, 나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아니다. 돈은 어른에게 더 중요하다. 보호자라는 편안한 품에서 벗어나 돈을 좇는 삶. 돈은 물론 어른에게 더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 어른은 내게 그렇게 말했던 것일까?

감히 추측해 본다면, 어른들은 분명 어린 이들이 바라는 부와 명성이 아닌 직업이 가지는 본질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나는 물론 성숙하지도, 현명하지도 못하기에 그저 부와 명성을 좇는 어리석은 아이처럼 비치는 것에 대해 크게 반박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내게 나의 글쓰기에 대한 꿈과 열망에 대해 묻는다고 하면, 나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글 쓰기를 처음 접했을 때, 나에게 있어 글을 쓰는 일은 흥미로운 취미 정도였다. 그 어린아이는 글을 쓰는 일을 참 좋아했다. 어렸을 땐 지금만큼은 아니어도 책 읽는 일을 좋아했다. 부모님에게 떼를 쓰는 일에는 소질이 없었기에 책을 늘 사지는 못했지만, 살 수 있는 날에는 꼭 마음에 드는 책을 집어 엄마에게 달려가던 그때의 기억이 꽤나 생생하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글 쓰기를 즐겼다. 간단하고 조금은 우스운 이야기들. 글을 쓰고 읽어나가는 일에 흥미를 비추던 내가 글을 쓰는 법을 배운 것은 어떤 자그마한 미술학원이었다. 물론 이렇게만 설명한다면 쉽게 미술학원과 글 쓰기 사이에서 연관성을 찾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 미술학원은 아주 작았고, 다니는 아이도 매우 적었다. 그 미술선생님은 또 얼마나 이상했던지, 지금 생각해 보면 독특한 경험이 아닐 리 없다. 그 미술 선생님은 물론 그림을 매우 잘 그렸다. 단순히 똑같이 그리는 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조악한 그림들을 매끄럽고 단정하게 만들어 주시는 일까지 완벽히 해냈다.

독특한 성격을 지닌 그 선생님은 자유롭고 시끄러운 분이었다. 머리는 밝은 갈색에 보라색 안경을 끼시고는 사투리를 섞어 말하였다. 그녀는 자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운전을 하다 예민하게 굴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옷 스타일도 꽤 독특했기에, 전반적으로 나에게 있어 예술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면모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녀의 독특한 면모를 하나 꼽으라면, 그녀는 글을 사랑하는 만큼 글을 사랑했었더랬다. 책을 읽고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짤막하게 설명하며 즐거워하던 그녀의 모습을 나는 잠시 상상해 본다. 그녀는 글을 쓰는 것을 사랑했기에 우리에게도 글을 쓰라고 시키곤 했다. 나는 그 일을 사랑했다. 비록 나의 반의 나머지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슨 상관인가. 나는 아무렴 상관없었다. 나 또한 글을 쓰는 일을 사랑했기에. 그때 당시 나는 글을 쓰며 행복했고 내게 글을 쓰는 일이 곧 행복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독한 사춘기가 왔었다. 얼마나 멋에 취해 살았던지, 모든 일이 유치해져 버린 것이다. 쉽사리 아는 체할 수는 없지만, 사춘기를 겪는 이들 대부분은 본인들이 얼마나 고귀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분명 고귀한 인물인데 이렇게 자유분방한 곳에서 나더러 무엇을 하라는 거야! 나는 신경질적으로 변해갔고 글 쓰는 일이 얼마나 시시한 일이 되었던지, 나는 곧 모든 것에 싫증을 내며 그곳을 떠났다. 떠나가고 한동안은 글을 쓸 일이 없었다.

물론 펜을 잡아보려 시도했던 적은 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쓸 것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하얀 종이 위에서 솔직하지도, 완전한 거짓말쟁이가 되지도 못했다. 그저 끄적여나가며 글이 써지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림도 물론 그리지 않았다. 글 쓰는 일이 부담스럽고 지치는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고 1년이 지났다. 모든 열정에 녹이 슬어 가만히 정체되어 이었던 어느 날, 나의 가슴 한편에서 알지 못할 긍정의 씨앗이 피어났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내가 책을 지독하게 읽어나가도록 만든 그 씨앗은 소설 모순의 주인공이 갑작스레 느낀 것처럼 분명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운명이었던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한다. 책을 읽어 나감과 동시에 내가 쓰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로 필연적인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숨을 헐떡이면서도 적어나간 시간들이 이어져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내게 있어 글을 쓰는 일은 미래를 써 내려가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기쁜 마음으로 나는 미래를 써 내려간다.

실은 고백할 것이 있다. 이번 글을 써 내려가면서 나는 어느 때보다 더 힘들게 글을 써 내려간 것 같다. 문장과 단어를 써 내려가는 일이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지쳐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의 주제 글 쓰기가 내게 이 글을 마칠 힘을 준 것 같다.

글을 쓰는 일은 정말이지 말 그대로 지치고 피곤한 일이다. 동시에 매우 유쾌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일을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의구심이 드는 순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게는 열정과 꿈이 있다. 작가라고 인정받는 것, 내가 내 글을 진정 만족하고 세상에 공개하는 것, 그것이 읽히는 것을 나는 꼽아 기다리고 있다. 내 열정을 이 화면 속에 담을 순 없겠지만, 내가 끊임없이 적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나는 글을 적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1시간 30분 동안 지은 글이 얼마나 대단하겠냐만은, 누군가 이 글을 읽어 나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글에는 충분한 가치가 생긴다는 것도 말이다.

그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생각하며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 잠에 드는 것이다. 분명 쉽지 않다. 오늘 밤은 쉽사리 잠에 들 수 없는 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도저히 쓸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문장들을 적어 내려갔고,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과 비관에서 벗어나 지금 이렇게 글을 끝마치려 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모든 어려운 일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분명 끝 마칠 수 있는 일들인 것이다. 그렇게 믿으며 눈을 감아본다. 잠에 들어본다. 꺼지지 않는 의식의 불씨를 꺼트려본다.

믿음으로 불가능을 넘어뜨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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