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침

by Taylor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눈을 감고 눈앞에 있는 것들 너머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하리라 상상하는 것들에 취하다 보면 새해가 찾아온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팔자주름이 하루아침에 한층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제와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의 행복과 불행을 모두 놓고 올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째그랑, 소리가 나도록 아주 요란스럽게 내려놓고 싶다. 그것들이 산산조각 나 아주 고운 입자가 되어 내가 가는 방향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부는 선선한 미풍을 따라서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 곳에 쌓이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새해를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듣는 노래, 마지막으로 읽는 책, 마지막으로 쓰는 글 따위가 왜 그리 중요한지 누군가는 이해 못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들을 섬세하게 계획해 두었다. 그중 마지막 글은 바로 이것이다. 올해 처음으로 글을 쓰자고 마음을 먹고 어설프게나마 써내려 갔던 것의 매듭을 2025년 안에 지을 수 있어 괜스레 뿌듯하다. 비록 아무도 읽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들이 내게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2025년의 내가 살아 숨 쉬고 극적인 감정 변화 끝에 살아남았음을 증명해 주는 증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 작은 핸드폰 화면에 갇혀 여전히 숨 쉬겠지만, 나는 그것들을 오늘 전부 산산조각낼 것이다. 외로움이여 안녕, 우울이여 안녕, 불안이여 안녕, 걱정이여 안녕, 죽고 싶다는 그 우스운 말속에 담긴 행복을 향한 나의 몸부림이여 이젠 안녕! 그러나 2026년도에는 그것들의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아올 것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미로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우리가 헤매는 끝에 길이 있고 그것이 행복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들 서로의 행복을 빌며 앞으로 나아가지만 나는 지금의 2시간, 마지막 2025년도 나의 마지막 모습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나는 미운 2025년에게 또 정을 주고 있다. 나아가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 마지막의 순간을 간단한 안도로 장식하고 싶다.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수고했어. 거친 외로움, 힘겨운 순간들을 너는 이겨내지 못할 것처럼 말해놓곤 여기 있잖아,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가장 터프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넌 지금 가장 멋있는 열다섯 살이야.

새해 목표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나는 가장 정직한 열여섯 살이 되고자 한다. 이기심과 혐오로 잃었던 수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자.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우리는 정직함과 이기심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결국 잃는 것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부끄럽지 않은 쪽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 본다. 그리고 목표가 될 수 있다면, 행복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싶다. 간단한 것들에서 오는 정교한 행복을 잊고 살았던 올해를 뒤로한 채, 나는 가장 행복한 열여섯 살이 될 것이다.

또 불교에 관심이 생겼다. 다른 종교들과 다르게 정말 올바르게 살기 위한 나의 지침서가 되어줄 것만 같은 희망에 젖어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새해 첫 책으로는 싯다르타를 읽어볼 참이다.

항상 우리의 발목을 잡는 공부는 어떠한가. 방학부터 나는 열중해 볼 참이다. 구체적인 청사진은 없지만, 나는 본디 그리 철저한 사람은 아니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글 쓰는 일이다. 새해에는 소설을 쓸 것이다. 이미 적어둔 소설이 있지만 완성까지 얼마나 걸릴진 모르겠다. 내가 그것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조차도 없지만, 나는 언젠간 그것의 마지막 문장을 적어내리라고 믿고 싶다.

새해라는 것은 독특한 것이 꼭 우리에게 하루 차이로 엄청난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 계획들을 바리바리 싸서 새해의 첫날에 발을 들인다. 그리고 그것들을 그대로 다시 싸서 그다음 연도로 넘어가는 것이다.

올해는 사랑을 잃은 해였다. 혐오에 취해 수많은 일을 저지르곤 도망쳤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있고, 이렇게 내년을 마주한 채 전혀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행복할 거예요. 그러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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