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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열두 번째, 시를 쓴다면

by Taylor

주의하세요
이별에 취약한 사람입니다
사시사철 불어드는 바람에도
끄떡없는 고귀한 소나무처럼
혐오를 담은 손가락질 세례에서
고귀하게 걸어 나오는 성녀처럼
나는 강인합니다
그런데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경고를 잊은 이카루스처럼
너무나 뜨겁게 그대를 사랑해서
날개를 감싼 밀랍은 녹아버렸고
그대를 감싸 안은 나의 팔은
마치 의지를 잃은 나뭇가지처럼
조금만 덜 사랑할 걸 그랬나요
떨어질 때 덜 아프게요
그런데 우리는 잊어선 안됩니다
이카루스는 용맹하게 날아들었고
그의 용기는 분명 고귀합니다
외로운 소나무보다도
비난 속 성녀보다도
기억하세요
이별에 취약하다는 건
적어도 사랑해 보았다는 것
날아들어 장렬히 태양빛 속에서
추락해 보았다는 것



내가 너에 대해 잊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필시 네가 나에 대해 잊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렇게 떠올린 것만으로도
서로는 서로를 잊을 수 없고
하염없이 너에 대해 생각하다
혹여나 네가 잊었을까 봐
사치스러운 굵은 눈물 한 방울
부탁이니 제발 잊지 말아요
적어도 우리가 나누었던
우스꽝스러운 표정들에 대해서
하릴없이 기다렸던
시간들에 대해서
함께 달려 나가며 부른
노래들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 혹은 나에 대해서
우리에 대해서
뜨거운 열기와 사랑에 대해서
식은 공기와 상처들에 대해서
그렇게 잊지 못하는
우리의 이별에 대해서
혹은 우리가 남긴 이 별에 대해서
우리의 죽음이라는
강력함과 슬픔을 간직한 에너지 속에서
태어난 아주 작고 환한 이 별에 대해서
우리 잊지 말아요


우리가 붉은 노을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는
우리의 멍든 마음 같아서
그런데 우리의 마음관 다르게
너무나 아름다워서
하염없이 붉은 노을을 바라볼 때면
영원히 잠들고 싶다고 생각해요
영면은 꼭 죽음이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우리는 그래선 안 돼요
그야 곧 꿈을 꿀 거니까요
너와 나에 대한 아주 긴 꿈을 꿀 테고
그 꿈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라서
나는 붉은 노을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날씨가 선선해져
입김이 불어 나올 때
나는 내가 달리기 같다고
생각했다
꼭 농구처럼 공을
요란스럽게 튀기지 않고
축구처럼 공을
뻥뻥 차지 않고
야구처럼 공은
힘껏 던지지 않아도
그저 달리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사람
넘어진다고 실점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면 되는 사람
격렬한 승리 대신
은은한 안도가 서려있는
나는 달리기 같이 살고 싶다



저는 가끔 세상에는 상황에 따른 감정이
정해져 있다고 느낍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날에는 슬픔이
오랜 기간 보지 못한 그를 만나 기쁨이
가족들과 마주 보며 웃을 때는 사랑이
꼭 느껴져야 한다고요.
그러나 만일 그렇게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날에는 안도를
오랜 기간 보지 못한 그를 만나 분노를
그가 남자를 보며 사랑을 느낀다면요
옥죄여 오는 시선 속 저는 상황보다
의무를 더 먼저 느꼈습니다
더 이상 그런 시선을 주의 깊게 보다
감정을 쉽게 놓치지 않겠습니다
솔직하고 자유롭게 살아가 보겠습니다





실은 이 글들은 모두 내가 아주 어렸을 때나 조금은 자라났을 때, 혹은 아주 늙어버렸을 때 썼던 시들이다. 실은 매우 서투른 것들이지만 나는 오늘부로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노라 선언하였기에 담담히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끝으로 내가 썼던 유서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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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이라고 말하지만 이 두 글자에는 숨기기 어려운 제 진심이 슬쩍 삐져나왔기를 바라며 작별을 고합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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