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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투스 너마저

열한 번째

by Taylor

오랜만에 글을 쓴다. 꼭 게을러서만은 아니다. 꼭 완성한 것이 아니어도 11월 한 달 동안 얼마나 무의미하게 끄적여왔는가. 책을 안 핀지 꽤 되었던 적도 있지만 최근에 안과 겉을 읽고 감탄해 많은 인덱스를 그 책에 할애했다. 그러나 내가 글을 게시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 글들이 너무나 개인적이라 구태여 다른 이들에게 그 글을 보여주어 어떠한 반응을 자아낼 팔요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어떠한 논평도 얻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글을 게시하지 않은지 한 달 조금 넘은 시점에서 글을 게시한다는 것은 누군가 꼭 읽어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카뮈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조금만 하자면, 나는 그를 이방인으로 처음 접하고 그에게 푹 빠져들어 안과 겉, 결혼, 여름을 무턱대고 구매하였다. 그 책들이 내게 어떠한 흥미를 이끌어 내지 못했기에 나는 오랫동안 그 책을 펼치지 않고 방치해 왔었다. 차라리 페스트 같이 소설로 이해가 쉽진 않아도 책을 펼치는 것은 조금 더 쉽게 할 걸, 하는 아쉬움이 밀려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학의 모호함 속에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피로감에 지친 나는 무언가 분명한 글이 필요했다. 카뮈, 그가 나의 해결책이었다. 투명한 수채화가 아닌 선명한 유화 같은 그의 글은 나의 피로감을 싹 가시게 해 주었다. 앞으로 완독까지는 열심히 읽어내야 하지만,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설레는 것 같다. 내가 이 말을 일기장이 아닌 이곳에 적은 데에는 이곳에 나오는 문장 하나를 인용하고 싶어서이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은 없다. 그랬던 것이다. 우리는 꼭 절망해야 하는 것이다. 삶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완벽한 삶에 대한 사랑의 보색으로서 보다 선명하고 확실하게 빛나리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 희망을 품고 나는 절망을 적어나가고 싶은 것, 그뿐이다.

블루투스 너마저. 실은 카이사르가 죽을 때에 이런 말을 외쳤다고 전해진 것은 다른 유명한 명언들이 그렇듯 거짓이며 실제로 그의 입 밖으로 나온 적 없다고 한다. 그러나 스물세 번 걸친 난도질 중 블루투스의 칼날이 섞여 있다면, 그 고통은 마흔여섯 번, 어쩌면 아흔두 번의 칼날이 그의 급소를 찌른 것보다 쓰라릴 것이리라. 그는 그렇게 피를 흘리며 로마 역사상 가장 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며 처참하게 쓰러져야 했다. 비록 그는 블루투스 너마저,라고 외치지 않았지만 실은 못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난도질로 생을 마감해야 했지만 그 칼날들은 그의 심장을 꿰뚫었을지언정 그의 마음을 꿰뚫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블루투스의 가담을 통해 그의 의지는 차가운 칼날들에 의해 들쑤셔져 처참하게 죽어야 했을 것이다. 2배, 4배로 더 고통스럽게 말이다. 배신이란 너무나 끔찍하게도 믿음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그래도 넌 아니길 바랐는데.

실은 이 말은 너무나 슬픈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이 누가 되었든 나를 배신하리란 것은 알고 있었다는 체념과 그래도 넌 아니길 바랐다는 헛된 믿음. 나는 그 헛된 믿음 때문에 울지 못해 애써 웃으며 살아간다. 씁쓸한 커피를 마시면서 그것이 달콤한 초콜릿 라테라도 되는 양 만족감에 휩싸인 척한다. 그래도 넌 아니길 바랐던 것이다. 난 나의 블루투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누구든 날 배신해도 좋아, 죽도록 욕하고 혐오해도 좋아, 설령 나를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달려들어 내 목덜미에 차가운 칼날을 꽂아도 난 기꺼이 받아들이겠어. 그런데 그게 네가 아니기만을 바랐던 거야. 그 멍청함으로 인간관계가 돌아가고 부서진다는 것을 나는 요새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어쩌면 내가 누군가의 목덜미에 똑같이 칼날을 꽂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내게 헛된 믿음을 주지 마. 그러나 나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그 믿음들을 헤프게 써댄다. 상처를 받기 위해 발악한다.

배신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네가 말과 다르게 나를 무시할 때, 나를 좋아하다가 싫어하다가 무관심해지기에 이를 때, 너를 믿어도 결국은 그래선 안 되었고 나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때, 끝없는 우울과 혐오에 휩싸여 흐르지 않는 눈물을 닦아내고 싶은 기분이 들 때, 너무나 긴 마라톤 같은 생활을 한 번의 휴식 없이 완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그리고 그 경주를 네가 자꾸 늘릴 때. 배신이다, 하고 나는 외친다. 아주 고요하고 처절하게, 아무도 듣지 못하고 너 역시 모른 채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아주 예의 있게 외친다. 나는 나의 슬픔을 나 혼자 가지고 있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하는 수 없이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결코 내 슬픔과 우울을 다른 이들에게 전염시키지 않는다. 대신 꺼지라고 소리친다.

그런 자잘한 배신들을 겪고 나는 사랑하는 법을 까먹은 이처럼 허덕였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지 못해 죽어간다는 말처럼 나는 아주 메마르게, 조용히 죽어가는 중이다.

넌 나를 사랑해줘야 해. 슬프게도 반짝이는 소멸 직전의 별처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너는 나를 껴안아줘야 해. 수광년을 헤엄쳐 온 애타는 연인들처럼. 너는 꼭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배신은 네가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블루투스 너마저. 이미 칼은 박혔고 달려드는 수많은 이들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안 순간의 체념, 그 순간 카이사르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인생에 대한 아쉬움, 성찰과 고뇌, 고통스러움? 그러나 블루투스가 달려들 때, 그 모든 감정은 순간 배신과 충격으로 돌변했을 터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이였지만 견해 차이로 순간 돌아서버리게 된, 그 순간까지도 카이사르는 그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짐작했을 터다. 블루투스의 마음은 이미 떠났다는 것을. 그래도 그가 그를 혐오하지 않기를, 카이사르는 바랐을지도 모른다. 혹은 설령 그가 그를 혐오하여도 애써 모른 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칼날이 날아든 그 순간 그는 모른 척하던 진실을 마주하였고 블루투스 너마저, 하는 짧은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죽어야 했다. 그는 꼭 나를 보는 것 같다. 다른 편에 서도 나는 여전히 과거를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일들은 결코 먼지나 수증기가 되어 흩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의 기억들이 현재의 행동에 분명 영향을 줄 것이라고 굳게 믿거나 혹은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등을 돌리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때면 끔찍해서 온 집안이 울릴 듯이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울분을 검붉은 토사물처럼 토해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위한 공간은 없다. 나를 위한 사람도 없다. 나를 위한 사랑 역시 없다.

알아, 안다고. 네가 나를 끔찍해하는 거. 그게 끔찍해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거는 네 말에 대답할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너는 내 헤픈 믿음을 아주 잘게 형태도 알아볼 수 없도록 찢어 버린 것이고, 나는 더 이상 네게 줄 믿음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서 있는 곳도, 하는 말과 행동도, 듣는 노래도 입는 옷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도, 지내는 사람과 그에 대한 평가도, 생김새와 성별도 다른 우리는 왜 서로가 마치 2인 3각 선수인 것처럼 헐떡이며 같이 가려고 하는가. 대놓고 넘어져서 우리를 묶는 줄을 대놓고 끊어내. 그러곤 뛰어가. 열심히 자유를 찾아 뛰어가거나 또 다른 짝을 찾아도 돼. 넌 그래도 돼. 마치 계란 노른자처럼. 나를, 단단한 껍질을, 하나의 각박한 세상을, 너를 옭아매던 올가미를 벗어던져. 우리가 생활하는 이곳의 특수성 탓에 네가 나를 떠나지 못한다라면, 그 하찮은 죄책감이 네 발목을 잡는다면, 기꺼이 떠나. 그야 난 네가 나를 싫어하는 걸 알고 있거든.

네가 떠나고 내게 남은 것은 말라버린 눈물 자국과 가지 말라고 잡아볼 걸 하는 후회와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는 아주 느리고 성질 급한 외로움뿐이야. 넌 여전히 나를 사랑해주어야 하지만, 이제 그만 가도 좋아. 난 그야 내 외로움과 아주 느린 왈츠를 추어야 하거든.

그런데 내가 한 가지 네게 말할 수 있다면, 내게 그럴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렇게 말할래. 늦은 저녁 내가 요새 가장 좋아하는 주황빛 노을을 보다 나의 블루투스, 너를 생각할 때 나는 너의 배신보다 네가 웃고 너 때문에 내가 웃었던 순간을 떠올릴 것이라고. 그래서 무서워. 만일 없는 믿음을 또다시 끌어다 네게 쏟아부을까 봐. 끝이 없이 망가질까 봐.

그렇게 너마저. 나는 이 짧은 한 마디도 외치지 못 한채 차갑게 죽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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