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금붕어
지금은 새벽 12시이다. 월요일과 금요일 연재인데 게을리 글을 쓴 탓에 하루 건너뛰게 되었다. 혹여나 나의 글을 기다린 독자가 있다면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여름은 조금 누그러지고 덕분에 더 아름다워졌다. 땀에 흠뻑 젖어 불쾌한 상태를 유지할 필요도 없고 과즙이 달달한 복숭아나 실컷 깨물어 먹을 수 있다. 여름은 사랑의 계절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린 말일까? 분명 아니다, 여름은 사랑으로 가득 차기에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는 사랑을 모르고 그렇기에 항상 실수를 되풀이해야 하는 기구한 인생을 산다. 나 역시 사랑을 모르기에 여름이라는 말을 대신하여 쓰고 싶다. 너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 대신, 너와 함께 여름을 보내고 싶다고.
실은 끔찍하게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랑한다고 해도 좋은 사람과 이별했고 그것은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또 나의 이별이 끔찍한 이유는 우리는 이별했음에도 끊임없이 만나야하기 때문이리라. 누군가는 이별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분명 이별이었다.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것, 더 이상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이별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꺼지는 것이다. 불꽃이 사그라들듯이 말이다.
물론 연인은 아니었지만 분명 그것만큼 끈끈했으리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나 답은 없었다. 수학 문제를 풀다 보면 대게 그런 말을 듣곤 한다. 답은 없는 것이 아니라 네가 찾지 못하는 것이야. 그러니 이 문제에도 답이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학생인 12년 동안 수학만을 붙들고 늘어지니 어지간한 문제의 답을 찾을 수는 있을지언정, 이별은 살면서 10번도 하지 않기에 우리는 답을 영영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깊은 수학 난제처럼 우리는 결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인생을 수학으로 비유하고 싶지 않다. 비록 우리 인생을 수학 빼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인생의 대부분을 수학이라고 이야기하고픈 마음은 없다. 나에게 있어 수학은 정교하고 정밀하며 딱딱한 느낌을 주는 학문이다. 그러나 인생은 왜인지 내게 있어 부드럽고 융통성 있으며 때론 연민하는 것이다. 때론 법칙 따위 다 무시하고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비록 내 편이 아니었던 적이 더 많았다지만, 우리는 서운해 인생을 등질 수 없다. 참으로 가혹하다. 그러나 인생은 왜인지 아름다워서 한 번 우리 편을 들어주면 우리는 눈을 감아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제는 참으로 끔찍했었더랬다.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이별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도 나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후회하고 저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대화, 혹은 언쟁을 나눈 그 차디찬 계단에 앉아있을 것이다. 나는 이 이별이 평생 동안 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난 후 지금 당장 평생이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끔찍한 상상을 하면서 걸었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걸었다.
여름은 사랑의 계절이지만, 너무나 뜨거운 사랑은 금방 식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여름은 이별의 계절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동시에 이별하는 여름을 보내며, 나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단지 걸을 뿐이다.
이별을 잊을 순 없지만, 나는 나아가야만 한다. 또다시 바보처럼 사랑하고 이별해야 한다. 인생의 굴레에서 나는 몸을 맡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많은 생각을 했고 많지는 않은 책들을 읽고 글을 썼다. 나는 늘 강조하고 싶다. 살아가는 일은 사랑하는 것이라고. 오늘만큼은 사랑을 남발하고 싶다. 그렇게라도 정말 사랑에 흠뻑 취해 다 잊은 것처럼 행동하고 싶다.
그렇게 어제 급격하게 찾아온 우울의 끝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떠나자고, 멀리멀리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한국을 떠나자고 생각했다. 이곳은 나를 너무나 잘 아는 동시에 나에게 무관심하다고. 뭐든 이방인에게는 관심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나는 아름다운 유럽의 동양인 이방인이 되고 싶었다. 스위스에 가야 할까.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밤낮으로 질리도록 보면 조금 덜 우울해지려나. 그러나 나는 스위스를 잘 몰랐다. 치즈를 팔팔 끓여 퐁듀라는 음식을 해 먹는 것쯤은 보았지만, 그것이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나는 유명한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이탈리아를 생각했다. 피자라던지 아름다운 그림들과 조각상은 아무래도 팔팔 끓는 퐁듀보다는 조금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스위스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아무래도 고상하고 세련된 것들을 좋아한다.
프랑스는 루브르에 갔다가 바게트 하나 사서 에펠탑에 가 먹어도 보고, 영국에선 런던 거리를 헤매다가 소호에 가서 술 대신 시원한 음료를 들으킨다면 분명 행복할 테고, 스페인은 사그라다파밀리아 같은 아름다운 건물들 보다가 낮잠도 자보고 실컷 오렌지를 먹어대는 거야. 또 독일에서 짭짜름한 소시지를 우적우적 먹어대다가 맥주를 마시지 못해 조금 시무룩해할지라도, 끝끝내 그리스에 도착해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핥으며 태양이 지는 걸 바라본다면 분명 행복할 거야.
그렇게 상상하고 나는 항상 떠나지 못함에 아쉬워한다. 어젯밤에는 끝끝내 학원으로 향했고 오늘은 이 글을 마치고 끝끝내 잠에 들고야 말 테다. 나는 아름다운 여름을 상상하며 글을 적지만 현실은 불쾌하고 찝찝함이 깃든 좁디좁은 교실에 앉아 있을 뿐이다.
노래로 아쉬움을 달래 본다. 어디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노래를 들으며, 내가 시원한 바람이라도 맞고 있는 것처럼 웃어본다.
끝없이 이별과 사랑에 대해서 쓰고 결국 상상도 이루지 못한 이 현실적인 글의 마지막을 나는 노래로 장식하고 싶다. 한로로의 금붕어이다. 가사보다는 노래의 멜로디가 매력적이라 더 추천하고 싶다. 경쾌하고 시원하고 아무래도 멀리 떠난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이 노래를 들으며 글을 썼기에, 나는 과감히 소제목을 이 노래의 제목으로 정했다. 오늘의 진짜 주제는 일기이다.
조금은 장황하고 두서없는 글이 되었다. 글을 쓰는 능력이 날이 갈수록 퇴화되는 것은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늘 적어나간다. 조금은 자랑스럽다. 끝으로 이 서투른 글을 편지 형식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나의 이별과 사랑에게 말이다.
내가 너에게 했던 것이 후회되어 남들에게 극도로 친절하게 행동한다고 말한다면, 너를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잊지 못하였다고 고백한다면, 다시 그 영원한 이별을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그렇다고 말한다면 너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곧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 테고, 얼마 있다 눈이 내릴 텐데 나는 아직도 후덥지근한 열기에 갇혀 있었고, 나를 좀 꺼내달라고 애원하고팠지만 나는 차마 그럴 수 없어 그저 묵묵히 그 열기를 견뎌냈다. 비굴해지고 멍청해지고 쪼잔해졌다지만 나는 그것들을 후회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날만을 후회했다고.
네게 있어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저, 그 영원한 이별을 되돌릴 수 있다고만 말해주기를, 나는 그렇게 빌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평생을 잊지도 못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주름진 손을 얼러만 지며 그 미소를 떠올리는 것이다.
이별이 아닌 것처럼 나는 안녕,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여름을 나와 보내주어 고마워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