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책을 읽으며
지금은 새벽 12시이다. 방금까지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다. 완독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은 두께지만 또 생각만큼 그렇지만은 않다. 책이 워낙 빨리 읽히는 탓에 나는 빌린 지 이틀 만에 100쪽을 읽었다. 비록 어려운 이름을 가진 신들이 신들을 낳고 또 그 신들끼리 또 다른 신들을 낳는 어지러운 상황의 연속이었다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책을 진행하면서 반가운 이름들이 나오면 나는 더 빨리 책장을 넘겼던 것 같다.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아프로디테 등등, 그 많고 많은 신들이 나오는 신화에 나는 어렸을 때부터 푹 빠졌었더랬다. 나는 왜 신화를 사랑했을까?
전지전능한 신들은 서로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일화들을 만들어 낸다. 신, 나는 그 단어가 참 좋았다. 신비하고 막강하고 위엄이 도사리는 아주 짧은 단어. 그러나 다른 종교의 신보다 그리스 로마의 신, 아니 신들에게 관심을 더 가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비록 내가 어렸을 적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가 그렇게까지 유행을 하던 때는 아니었기에 그림 탓도 아니고, 역시 스토리적인 부분은 내가 마음에 드는 곳만 골라 읽었기에 결코 잘 짜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 역시 아니다.
신들이 매우 아름다웠던 것이다. 그림이 아니라 진정한 신화 속에 존재하는 신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워 보는 나로 하여금 깊게, 더 깊게 끌어들일 힘을 가졌던 것이다. 강력한 신들의 왕 제우스는 어떠한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미를 자랑하는 아프로디테는 어떠한가, 바다를 이끌고 위엄을 뽐내는 포세이돈은 또 어찌나 매력적이고, 하데스가 이끄는 지하 세계는 나를 또 얼마나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가. 그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구성하는 다채롭고 때로는 추잡한 이야기 역시 매력적이지만, 나는 그 이야기가 나를 매혹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바로 신이라는 단어에서 비추는 전지전능함, 즉 절대적 권력과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강력함이 내게는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어렸을 적부터 읽어왔고 읽을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책을 읽으면 꼭 나오는 인물이 있다.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오비디우스가 그들이다. 물론 그리 관심 있는 인물들은 아니다. 실은 나는 말하고 싶은 인물을 숨겼다. 바로 플라톤이다.
플라톤. 간단하고 짧은 이름이라지만 내게는 너무나 막연한 인물이었다. 단지 이름 탓은 아니다. 나는 항상 철학을 갈망해 왔다고 내가 전에 고백했던가. 또 내가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오랫동안 장바구니에 플라톤의 저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담아 놓고 있었다고 고백했던가. 그러나 늘 망설이다 실패했다.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결코 절대 읽지 못할 거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러다 도서관에 방문했다. 이참에 철학에 입문해 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철학을 알아가자, 철학을 배우자. 물론 너무나 막연한 다짐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함께 하룻밤에 읽는 서양 철학이라는 꽤나 믿음직스러운 도서를 빌려보았다.
이 책에는 서양 철학에 중요한 인물들을 나열한 후 아주 간단하고 짧게 설명한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플라톤이 이렇게 주장했군.'하고 생각할 순 없지만 적어도 '플라톤이라는 작자는 대강 이런 사람이군.' 하고 생각할 수는 있는 것이다. 재미가 있다던가 읽기에 쉽다던가 한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철학이라는 학문에서 이름을 알린 이들이 도대체 누 군인가라는 광범위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수많은 답 중 하나가 이 책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익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책을 가볍게 훑고 난 후 나는 그를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이 책이 그 시발점이 되어준 데에 있어 고마움을 느낄 따름이다.
그러나 최근에 비문학 작품만 읽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완독을 마친 오만과 편견에 대해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다.
이 책의 줄거리는 그래도 과감히 생략하겠다. 단지 내 감상만을 늘어놓고 싶다. 이 책을 완독하고 났을 때, 나는 무척이나 기뻤다. 단지 이 훌륭한 소설을 다 읽어냈다는 뿌듯함도 있었겠지만 이 두꺼운 소설을 빠르게 읽어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던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가벼운 책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읽어 볼 가치는 충분하다. 물론이다. 제인 오스틴의 묘사력은 가히 셰익스피어의 뒤를 잇는다고 평가받는다.(물론 셰익스피어를 평가할 자격은 없기에 그저 그만큼 제인 오스틴이 뛰어나다고 칭찬하고픈 맘에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한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단지 영리하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것을 넘어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편견을 가지기도 하고 남들에게 높은 자존감에 근거한 행동을 일삼기도 한다. 또 비록 엘리자베스의 편견이 씌워져 있었던 것이라지만, 다아시 씨 역시 오만한 구석이 있고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신분에 대한 문제를 여과 없이 지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가 소설을 쓰려고 할 때, 주인공은 지나치게 착하거나 정의롭게 그린다던가 오히려 아주 못되게 그린다. 그러나 인간이란 지나치게 양면적인 존재라 누군가에게는 매력적인 인물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평면 종이에 드로잉을 할 때 제인 오스틴은 조각을 한다. 그녀는 캐릭터를 종이에서 튀어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캐릭터를 종이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로맨스 작품의 작가들은 주인공들이 서로를 끔찍하게 싫어하다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을 즐기곤 한다. 그러나 제인 오스틴만큼 설득력 있고 탄탄하게 스토리를 쓴 작가는 극히 드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형태에 다양한 작품들을 접했고 그러고 난 다음 만나보는 오만과 편견은 그 작품들 중 하나처럼 보이기 십상이지만 분명 다르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때론 이 시대에 그녀의 작품을 읽는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그녀가 살던 시대의 오만과 편견은 분명 센세이션 했을 것이다. 나는 오늘날에 들어서면서 쏟아지는 콘텐츠들이 그녀의 작품의 고유한 가치를 희석시켰다고 때때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란 것을 나를 포함한 그녀의 독자 모두가 안다는 사실은 나를 무척이나 안심시킨다.
독서를 할 때 비문학보다는 문학을, 재미없어 보이는 책보다는 재밌어 보이는 책을 집어 들던 내가 고른 이 세 개의 작품들은 저마다 개성이 있지만 가장 큰 공통점 하나를 공유한다. 평소 내가 읽던 책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독서를 식사에 비유하는 말들을 나는 종종 들어왔지만, 그 숙제 같은 잔소리들을 듣기 싫어 틀어막던 귀를 최근 나는 조용히 열었다. 분명 재밌어진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조금씩 읽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소한 변화가 내게 있어 나는 더 풍족한 인간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해 본다. 또 이 글을 끝으로 나는 다시 독서를 시작하러 간다고 알리고 싶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