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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사실 아무도 몰라

꿈꾸는 요셉에게 해주는 짧은 소설이야기

by 정유철

요셉을 만나기 전에 나부터 먼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내가 애매한 입장으로 말해버리면 요셉은 분명 내가 동의한 걸로 생각하겠지.


주소만 가지고 카페를 찾느라 애먹었다. 건물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간판도 없는 카페가 건물 2층 속에 숨어있다니.

그레이레이지 카페 안은 다크그레이 톤으로 칠해져 있었고, 큰 전등 없이 각 테이블 조명만이 공간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특이한 건 창가 쪽에는 1인 테이블이 꽤 많아 보였다. 혼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거나,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는 작업자들의 아이패드를 뒤쪽에서 들여다보다가 요셉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여기야!”

요셉은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지, 커피 두 잔이 담긴 쟁반 옆에 노트북이며 메모장이 펼쳐져 있다.

카페까지 오는 길에 전화를 건 요셉에게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실 거라고 했더니 미리 주문을 해놨다.

“무슨 카페가 이렇게 숨어있어?”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셨더니 절반 정도가 사라졌다.

요셉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숨어있는 것치곤 사람이 꽤 많지 않아? 여긴 혼자 작업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1인테이블도 꽤 있어.”

카페를 들어올 때 봤던, 무언가에 열중하던 사람들. 그러고 보니 가게 안이 어두워서 사람들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각자 작업하는 테이블만 눈에 들어올 뿐.


아이패드로 무언가를 그리던 사람은 아직도 작업 중인지 뒤를 돌아봤다. 화면 속 내용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자신이 만든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나는 안다. 자신이 만든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볼 때의 갸우뚱한 저 고개의 각도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를.

내 작품에 확신할 수 없을 때 창작자들은 보통 저런다. 예술의 분야가 달라도 자기 자신에게 의구심을 가지는 건 모두에 공평한 것 같다.


“그래서 너도 작업 같은 걸 하고 있었어? 아니면 정말 혹시나 인강이라도 보고 있었던 건 아니지?” 말을 해놓고도 너무 비아냥거린 건 아닌가 아차 싶었다.

다행히 요셉은 그리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나? 작업할 때도 있는데 오늘은 안 했어. 안타깝게도 인강 보면서 공부하고 있던 것도 아니야. 형한테 할 말을 좀 정리해 보느라..”

나를 향하던 요셉의 눈이 테이블로 향하며 다음 말을 이어가길 뜸을 들였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요셉이 자기 입으로 말하기를 기다렸다.

“전에 말했던 음악 공부 말이야. 형 말대로 진짜 깊게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 봤는데, 꼭 해보고 싶어.” 테이블에 초점을 두던 요셉의 눈은 어느새 내 시선까지 쫓아와서 의지를 드러냈다.

하필 고3인 지금 이런 결심을 하다니.

“일단 나는 반대하는 건 아니야. 그런데 그렇게 해야겠다고 단정 짓지는 말고 다시 이야기를 해보자. 너 지금 고3이지?”

“다음 달 2월에 3학년 선배들이 졸업하면 곧 내가 3학년이긴 하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푹 나와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진로를 그렇게 혼자서 마음대로 정해버리면 어떡해?”

부정적인 내 태도에 요셉은 조금 당황했는지 날이 선 말투로 말했다.

“내 진로를 그럼 어떻게 정해?”

“식구들이랑 이야기를 좀 해보고..”

내 말을 요셉이 끊었다.

“내가 먼저 고민해 보고 가족들하고 상의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지금 형한테 말하는 거야.”

그러네. 맞는 말이네.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러면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는데?”

요셉은 옆으로 치워뒀던 노트북 화면을 내 쪽을 향해서 돌렸다. 화면에는 입시 설명 페이지가 보였다.

“국립대 음악공연기획과 야. 얼마 전에 새로 생긴 곳이야.”

학원 한 번 다녀본 적 없는 요셉이 진짜 여길 갈 수 있을까 싶던 찰나, 요셉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을 덧붙였다.

“생긴 지 얼마 안돼서 그런가 여기는 실기를 안 보는 전형도 있어. 학교 성적만 보는 전형으로 지원하면 갈 수 있을 것 같아.”


날 보는 요셉의 눈에서 어떠한 감정이 보였다. 확신에 찬 눈. 무얼 확신하고 있는 걸까. 꿈에 도전하고야 말겠다는 자기 자신의 마음? 자기 자신의 마음보다는 진짜 이게 본인의 길이 맞는지 확인해봐야 하지 않나?

“새로 생긴 학과면 졸업한 선배들이 별로 없는 거 아니야? 졸업하고 뭘 할 수 있는 건데?”


요셉은 노트북 화면을 클릭하더니 준비해 온 자료를 보여주면 설명했다. 마치 본인이 아니라 내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사람인 것 마냥 요목조목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졸업하기 전에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도 따고, 성적이 좋으면 음악교원 자격증도 딸 수 있어. 그런데 난 엔터 쪽에서 일하다가..


열심히 준비해서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것들은 가정밖에 되지 않는다. 과연 요셉이 그곳에 가서 잘 해낼 수 있을까? 단지 해보겠다는 마음만으로 이런 결정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지금 당장 네 마음은 이해해. 하고 싶은 것들, 되고 싶은 것들, 그런 것들을 생각할 때의 마음도 잘 알아. 그런데 전공을 정할 때는 더 깊은 고민과 신중한 선택이 필요해.”

입시설명을 해주던 반짝이던 요셉의 눈이, 고개를 숙이자 조명 때문에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았다.

“전공을 음악 쪽으로 간다고 해서 그곳에서 성공하게 되는 건 아니야. 반대하는 건 아닌데.. 이걸 말해주는 게 내 역할인 것 같아.”


요셉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가장 불리한 주제로 화제가 전환됐다.

“형은 되는데, 난 왜 안돼? 형은 가고 싶은 전공 선택했고, 지금은 작가가 됐잖아. 왜 난 안될 거라고 생각해?”

왜 본인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없냐는 말에 잠시동안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요셉, 내가 어렸을 땐 우리 집이 많이 어려웠어. 넌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없겠지만. 그래서 난 누구한테 물어보지도 못했어. 그냥 결정할 때가 됐는데, 아무도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고, 내가 그냥 선택한 거야.”

“그런데 그때 만약에 다른 사람이 안 될 거라고 말려서 그 꿈을 포기했으면 안 됐잖아? 결국에는 원하는 작가가 될 수 있게 될 텐데?”

역시, 나는 왜 안돼 작전으로 나온 요셉을 막을 대화의 방향은 없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유명한 사람들은 다들 꿈을 이룬 사람들이지만, 유명하지 않은 내 주변인들 중에 꿈을 이룬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 보자. 일단 나부터 보자면 내 주변에는 없다. 오히려 소싯적에는 본인도 꿈이 있었다며 옛날이야기를 하는 사람만 많을 뿐.


“네가 안 될 거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야. 단지 그렇게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하려는 거야. 직접 가서 해보면, 네가 모르는 것들을 알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네가 할 수 없는 숙제들이 계속 던져질 거야.”

요셉은 경청하고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더 신중히 고민해 보라는 말이지?” 이번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형, 형 말대로 가서 겪어보지 않으면 힘들고 어려운 것들이 무엇이 기다릴지는 모르잖아. 그런데 그걸 내가 감수해 보겠다니까? 가능한지 아닌지도 가봐야 아는 거 아니야?”

맞는 말이라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요셉은 내 대답을 기다리느라 본인 말을 참는 것 같다.

“네 말이 맞아. 그런데 말처럼 쉽지가 않아. 지금은 형도 네가 보기엔 좋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아니야. 작가가 됐는데도 내 글이 어렵고 부담스러워.”


요셉이 기계적으로 끄덕이는 걸 멈추고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자, 더 경청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가 반대하실 거야. 현실적으로 취업에 유리한 곳으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좋아하는 건 안정적인 삶을 가진 후에 해도 되잖아.”

고개를 숙인 요셉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현실적인 말을 해주는 게 내 역할이 맞는 걸까? 한참을 듣고 있던 요셉이 말을 꺼냈다.

“형 생각이 그렇다면 더 고민해 볼게. 그런데 사실 아빠한테 은근슬쩍 말해본 적 있어. 농담처럼.”

“뭐라고 하셨어?”

“하고 싶은 일은 나중에 해도 된다. 좋아한다고 꼭 직업으로 삼아야 하는 건 아니다. 안정적인 삶에 행복이 있다. 사회에 나가보면 아빠 말이 맞다고 느낄 거래.”


아버지는 크게 이뤄온 사업이 실패해서, 고향으로 귀농하셨다. 내가 중학생 때 고향에서 농사를 시작하셨는데, 지금은 식구들이 먹고살만큼 다시 풍족해졌지만 당시 상황은 정말 어려웠다.


난 아직도 기억한다.

일을 마친 아버지는 나의 인사에도 대꾸 없이 방에 들어가 누우셨다. 한 시간쯤 지나 겨우 나오셔서 하신 말씀이, “응. 학교 잘 다녀왔니?”였다.

그 한마디를 꺼내는 데 한 시간이 걸릴 만큼, 모든 걸 쏟아붓고 계셨다.

아버지말처럼, 고달프고 배고픈데 꿈을 꿀 수 있을까? 그때 가서 후회하는 건 너무 늦지 않을까?


단호한 아버지의 태도에 요셉이 상처를 받았을까 걱정이 됐다.

“요셉, 아버지는 아버지 입장에서 최선의 말을 해주신 거야.”

다시 고개를 든 요셉의 얼굴에는 아까처럼 생기가 없어졌다. 어딘가 말라버린, 감정이 식은듯한 저 얼굴, 좌절의 표정.

“나도 알아. 틀린 말도 아니겠지. 아빠도, 형도, 최선의 조언을 해주려는 거잖아. 난 형을 믿어. 그럼 아빠 말씀대로 일단 취업이 되는 과에 가볼게. 그리고 그때까지도 음악이 하고 싶으면 그때 하면 되겠지.”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얼음이 녹아서 밍밍한 맛이 나다가, 끝에는 씁쓸한 맛이 따라왔다.


다시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에 내뱉었다. 요셉과 난 한동안 말없이 무언가를 생각했다.

요셉은 지금 마음을 정리하고 있을까. 꿈을 포기하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내가 원하고 간절히 바라왔던 모든 장면들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버리는 기분일까. 좋은 꿈을 꾸다 깨버리면 허탈하고 다시 잠들고 싶지만, 그것도 사실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되면 깊은 공허함이 마음속에 찾아온다.


“형, 이제 가자. 너무 늦겠어.”

요셉이 노트북과 노트들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난 아직 생각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요셉의 손끝만 시선으로 따라갔다.


거의 다 쓴 듯 낡은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노트를 새로 사줘야겠다.

“노트 다 쓴 거 아니야?”
요셉은 손에 들린 노트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화성학 정리한 거야. 다 쓰긴 했는데... 이젠 안 사도 될 것 같아. 다음에 좋은 걸로 사줘.”


짐을 다 싼 요셉은 이제 일어나자는 듯 나를 바라봤다. 말해야 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 요셉을 위한 가장 좋은 조언.

“요셉..”

가방을 챙긴 요셉은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바라봤다.


“사실, 아무도 몰라.”

얼굴에 물음표가 뜬 요셉에게 다시 말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네가 무슨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더욱더 치열해질지,

그 모든 것들 말이야.

사실은,

그건 아무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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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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