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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무표정_꿈이어야만 하는 이야기

by 정유철

기차역으로 향하는 티볼리 안에서, 정하는 운전하는 내내 지난밤 영상 속에서 본 재윤 할아버지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 눈빛은 정하의 시선과 마주친 것 같아서, 정하가 이 영상을 보고 있다는 걸 재윤 할아버지가 눈치챈 것 같았다.


조수석에 앉은 주현은 운전 중인 정하의 옆모습을 뚫어져라 보며, 삐죽 나온 입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평소에도 정하가 호기심 많은 주현의 질문 세례를 다 받아주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말이 없다.

“언니, 나 꿈속에서 엄청 무서웠다니까!” 주현은 엄청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할 때 특히 강조했다.

정하는 그 마저도 정확히 못 들었다가 꿈이라는 단어만 흘려 들었다.

“응? 꿈이라고?”

심술이 난 주현도 더 이상 정하 쪽을 보지 않고 창가 쪽으로 어깨를 돌렸다. 운전 중인 정하의 눈에 토라진 주현의 어깨와 등이 들어왔다.

“주현아, 내가 요즘 밤늦게까지 타이핑 알바를 해서 정신이 없어. 너무 피곤해. 오늘만 봐주라.”

주현의 토라진 어깨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정면을 향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세 시간 정도밖에 잠을 못 잔 정하는 굉장히 피곤해서 토라진 주현이의 모습을 보니 짜증도 났다. 한숨이 크게 나올 뻔한 걸 삼키고 주현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무슨 꿈을 꿨는데? 궁금하니까 알려줘. 응?”


2012. 12. 22 전라남도 여수시 / 주현이의 이야기


꿈속에서 내가 컨테이너 안에 있었어. 공기도 답답한데 주변 의자들이 죄다 쿠션 없이 쇠로만 돼있어서 불편한 거야. 차갑고 딱딱하고.

너무 졸려서 잠을 자고 싶은데 침대가 없는 거야. 다 의자뿐이야. 그래서 불편하긴 한데 그래도 자보려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면서 편한 자세를 찾았어.

그러다가 편한 자세를 겨우 찾아서 다시 잠을 자면 되겠다 싶은데 창문 밖으로 뭐가 계속 움직여서 눈에 거슬렸어. 커튼을 치려고 하는데 묶여 있어서 그마저도 안되더라고.

그래서 밖을 봤는데 움직이고 있는 건 밖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고, 내가 있는 컨테이너 박스였어. 이게 왜 움직이지? 하고 놀라서 잠이 다 깼어. 눈을 떠보니까 컨테이너 안에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있는 거야. 아까는 계속 자려고 눈을 감고 있어서 못 봤나 봐.

웅성웅성하길래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창 밖 저 너머에 누가 서서 나를 부르는 거야. 저 멀리에 있는데도 나를 부르는 줄 알겠더라고.

누구지 하고 창문에 얼굴을 데고 자세히 봤는데, 나였어. 내가 저 머리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악을 지르고 날 부르더라고. 거울에서만 보던 내가 서있는 것도 신기한데 미친 사람처럼 악을 지르니까 소름 끼쳤어.

내가 저기 있으면 지금 난 누구지? 생각하니까 창문에 내 얼굴이 비친 게 보였는데, 우리 엄마였어.



정하는 주현과 함께 갔던 동굴 속 한기가 떠올랐다. "그 꿈을 어제 꿨어?"

주현이도 동굴 속 한기가 떠올랐을까 두 팔을 웅크려 팔짱을 꼈다. "응. 진짜 무섭다니까. 상상만 해도 소름이야. 엄마 모습을 한 나를 내가 부르고 있었다니, 아니다, 내가 아니지 그럼, 아 모르겠다."

여수엑스포역에 다 와가자 정하의 앞 쪽 차들이 죄다 멈춰 서서 앞으로 갈 생각을 안 했다.

"너무 소름 끼쳤는데 컨테이너 상자가 쾅! 하더니 꿈에서 깼어. 어디서 떨어진 것처럼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깼는데도 가슴이 쿵쾅거렸다니까?"


앞쪽 차들이 한참을 움직이지 않자 정하는 자꾸만 시계에 눈이 갔다. "이모가 역에서 다섯 시에 내린다고 했는데."

뒤쪽부터 사이렌 소리가 다가오더니 점차 커졌다.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주현이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언니, 구급차 지나간다. 차들이 다 비켜줘. 우리도 비켜줘야 하는 거 아냐?"

그제야 정하의 시야에도 백미러로 차들이 구급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들어왔다.

"언니, 사고 났나 봐. 구급차가 엄청 많아."

여러 사이렌 소리가 뒤엉켜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사이렌 소리에 놀란 정하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 뒤쪽 도로 상황을 봤다.

구급차뿐만 아니라 경찰차, 소방차 사이렌이 달린 차는 죄다 모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느낀 정하는 최다한 차분히 주현에게 말했다. "주현아, 이모한테 전화해 봐. 어디쯤 오셨냐고."


어느새 도로에는 순경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차마다 창문을 두드리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게 보였다. 정하와 주현이 타고 있는 티볼리에도 어느 순경이 와서 창문에 노크를 했다.

정하는 창문을 내렸다.

"지금 역 쪽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차 돌리셔야 합니다."

전화를 받질 않는지 주현이는 핸드폰을 만지더니 전화를 다시 걸었다.

정하가 순경에게 물었다. "지금 역에 누굴 데리러 가고 있어요. 근처까지만 가도 안 될까요?"

순경의 관자놀이에서 볼 아래로 땀이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지금 기차가 탈선해서 사고가 났어요. 교통 통제 중이니 근방은 다 통제 중입니다. 앞 차들 따라서 차 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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