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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려고 개는 자꾸만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의아함: 의심스럽고 이상하다.

by 위드꼼



꼼의 첫 하네스는 등 뒤로 버클을 채우는 것으로 버클의 양옆에는 하얀 날개가 달려있었다.

걸을 때마다 펄럭이는 날개는 제자리를 찾은 듯 보였다.


왜 이런 설화도 있지 않던가.


하늘을 날며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던 ‘날개’가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땅에 홀로 외로이 앉아 있는 인간을 보고 내려왔다가

그만 날개를 잃어버려 이제는 더 이상 날 수 없는 ‘개’가 되었다는 이야기.


잃어버린 날개를 두고는 지금까지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


탐욕스러운 인간이 개를 곁에 두고자 날개를 훔친 거다

아니다, 개가 인간의 곁에 남고자 스스로 떼어버린 거다

아니다, 날개를 두고 개와 인간이 옥신각신하다 망가져 버린 거다 등.


나는 개인적으로 요즘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의견인,

‘소중한 날개를 지키고자 어딘가에 잘 묻어두었지만 찾지 못하는 중’에 동의하는 바이다.


날개를 영영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묻어둔 곳을 잊어버린 것뿐이라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깊게 묻어두었던 날개가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오면

다시 날개를 얻게 된 ‘개’는 인간의 곁을 떠나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겠지.


어쨌든 그리하여 인간과 개가 잠시나마 함께 지내게 되었다는 설화는

어디선가 생겨나 나에게로 닿았는지 나에게서 생겨나 어딘가로 닿을는지는 모를 일이다.


//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개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 어떻게 이토록 무해한 존재가 나타났는지 의아하다. 그래서 나는 늘 두 가지 의문에 사로잡힌다.


1. 도대체 개는 어디서 자꾸만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2. 도대체 개를 학대하고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1번이 성립되려면 2번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고, 2번이 일어나는 세상이라면 1번 역시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어쩌려고 개는 자꾸만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으면 꼼은 어느샌가 발밑에 다가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까맣고 깊은 눈에 내가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것들을 가득 담고선.


따가운 시선을 외면하며 애써 일을 끌고 나가려 하지만

들릴 듯 말 듯 조그마한 소리로 끄응-을 내뱉는 꼼에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


몸이 뒤로 넘어갈 만큼 목을 길-게 내빼고서 꼼이 내게 바라는 건 오직 단 하나다.


내 무릎에 올라오는 것.


쉽사리 목적 달성에 성공한 꼼은 엉덩이를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자신만의 안락함을 찾아낸다.

다음 차례로는 어김없이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

그러니깐 내 무릎은 꼼에게 일종의 ‘졸음 쉼터’인 것이다.



사랑은 열린 문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과 일을 그만두고 싶게 하는 악마력을 두루 갖춘, 하늘에서 떨어진 나의 천사 꼼은

자는 동안에도 천사가 지녀야 할 미덕인 엄격함을 누구보다 잘 실천하기에 이른다.


꼼이 주시하는 대상은 언제나 나다. 그리고 내게 내려진 임무는 단 하나.

쉬지 않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꼼을 쓰다듬을 것.


손을 잠시라도 멈추거나 못마땅한 손놀림이 느껴지기라도 하면 꼼은 어김없이 몸을 뒤척이며 무언의 압박을 내비친다.


일의 흐름은 뭐, 꼼의 콧김 따라 저 멀리 흘러가 버린 지 오래고 저려오는 다리에 코에 침이라도 바르고 싶지만

손과 발이 모두 묶인 탓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순간을 견디는 일밖에는 없다.


그렇게 한 20여 분이 흘렀을까.


이제는 정말 한계다 싶어 몸을 들썩거리다 보면 꼼은 그다지 잘 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얼굴을 하고선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이제 되었으니 내려주거라.


나를 구원하는 천사의 목소리가 따로 없다.


/


침대와 소파, 방석을 두고선 그다지 편하지도 않은 내 무릎 위로 올라오는 일을 ‘사랑’이 아니라면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음.. 혹시 복수?

사랑을 주는 척하지만 실은 다리 저림과 팔 아픔을 선사하기 위해서?

모종의 이유로 복수심을 품은 꼼이 내가 가장 집중하고 있을 때를 기다렸다가 슬그머니 곁으로 다가와 흐름을 끊는다?


음..

잠시나마 그런 의심을 해본 적도 있으나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고 생각한다.)


우선, 꼼은 그 정도로 뒤끝이 길지 않다.

앞선 에피소드였던 [놀라움] 편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 꼼은 자신의 일상을 복수로 채우는 법이 없다.

아마 불만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해소하려 나서겠지.

이런 권모술수는 꼼 답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꼼은 사랑을 주는 척하는 법이 없다.


사랑을 주다 마는 경우도 없으며 사랑을 주었다가 빼앗는 경우는 더더욱 없고

스스로를 위장해 사랑으로 둔갑한다는 건 상상에서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사랑으로 둔갑한 게 복수라니.

차라리 왕-하고 한 번 물리는 게 낫지.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전 세계, 아니 우주 전체가 이 문제에 대해선 깔끔하게 합의를 봤으면 좋겠다.


잠을 한가득 등에 지고서도 굴복하지 않고 기어코 누군가의 곁으로 다가가 품에 안기길 바란다면 그건 분명 사랑이라고.


그리고 꼼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내 품은 너 한정 언제나 열려있다고 말이다.


뭐,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랑의 무게



어찌나 무거운 사랑을 두고 갔는지 꼼이 내게서 멀어져 느릿느릿 거실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내 다리는 사랑의 전율을 간직했다.


찌릿찌릿한 다리를 주무르면서 거실 한가운데에 엎드린 꼼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옆에 드러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아. 왜 나는 그 잠시를 못 참고 들썩 거렸을까. 한탄하면서.


다리를 내어준 건 내쪽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더 많은 걸 내어준 건 꼼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꼼에게 나는 잠깐 쉬었다 갈 수 있는 ‘졸음 쉼터’ 일뿐이지만, 꼼은 나에게 제 발로 찾아와 주는 ‘휴게소’라고.

그것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쉴 때를 알아보고 찾아와 주는 고마운 휴게소.


지치고 힘든 날에 나를 찾아온 꼼을 천천히 쓰다듬다 보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생각들은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 버리고

내 주위엔 오직 쌕쌕 소리를 내는 꼼의 숨만 남는다.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날에는 멍하니 앉아 꼼의 숨을 따라 해 보기도 한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러다 보면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 걸 느낄 수 있다.


꽉 막혀 옴짝달싹 못 할 것 같던 정신도 자그마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새롭게 난 공간에 꼼이 엉덩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상상을 하다 보면 놓지 못하던 나쁜 생각들을 깡그리 다 밀어버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 다시 가보지 뭐.


어쩐지 출처가 꼼인 게 확실한 자신감도 생기는 걸 보면 아무래도 꼼의 몸 어디선가 마법의 가루가 흘러나오는 게 분명하다.


온종일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는 게 실은 마법 가루를 모으는 중일지도.

그렇다면 한 나무마다 오 분 동안이나 냄새를 맡는 이유가 납득이 가기도 한다.

단 하나의 나무도 빠트리지 않고 다 거쳐야 하는 이유 역시도.


오..

그렇단 말이지..





얼렁뚱땅 1번에 대한 해답을 얻었으니 이젠 2번에 대해 알아보자.


생각조차 하기 싫지만 뭐 어쩌겠는가.

개와 같이 살기 위해서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을.


입에 담기도 싫은, 글로 적기도 싫은, 머릿속에 남기기도, 스치듯 쳐다보기도 싫은 뉴스를 접하는 날엔

꼼을 쓰다듬는 것조차 망설여지는 마음이 든다.


그건 꼼이 내뿜는 마법의 가루로도 해결이 되지 않아서 온종일 얹힌 채로 아무것도 소화해 내지 못하는 하루를 보낸다.


온종일 미안한 채로.

온종일 무력한 채로.


눈이 마주치면 눈물이 터져 나올까 봐 기를 쓰고 피해 다니면서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를 반복하다가 결국 마주쳐버린 작은 몸을 붙잡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미안하단 것밖에는 없어서, 고작 이런 나라서 더 미안하다.


평생을 살아도 아마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이유로라도 한 생명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이와는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싫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들 앞에 앉아 있을 까맣고 깊은 눈들이 머릿속과 마음속을 헤집어 놓아 도무지 발걸음을 돌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력하기만 한 미안하단 말을 내뱉는 거 말고 지금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느라 며칠을 보냈다.

그 어떤 결론에도 다다르지 못해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또 며칠을 괴로워하다가

이곳은 꼼의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므로 꼼의 지혜를 빌려보기로 했다.


좋아하지 않는 존재에게도 기꺼이 최소한의 사랑을 나눠주는 꼼의 지혜를.


/


이건 사실 잘 꺼내지 않는 이야기인데 꼼은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서 시작하기엔 너무나 긴 여정이 될, 여러 크고 작은 사람들을 겪으면서 점차 사람을 멀리하게 되었다.


나는 그게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을 겪지 않았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이미 일들은 벌어졌고

그럼에도 꼼이 사람을 좋아하고 스스럼없이 다가간다면 그것 또한 고민이었을 것 같다.


물론 좋은 사람을 만난 적이 더 많고 여전히 꼼에게 인사를 건네주는 사람을 마주치면 반가운 마음이 더 크지만, 자동적으로 사람을 경계하게 되어버린 것도 사실이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잔뜩 경계를 해도 일은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지므로 더 촘촘한 경계망을 세우는 수밖에는 없다.)


이처럼 내가 불안한 마음을 -드러내면 꼼이 더 불안할까 봐- 애써 숨기면서 인사를 하러 다가온 사람에게 -갑작스러운 만남을 무서워해 인사를 나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림을- 잘 설명하는 동안, 꼼 또한 불안한 마음을 -눈에 다 보인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숨기고 인사를 하러 다가온 사람에게 한 발짝 한 발짝씩 다가가 손의 냄새를 맡으며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의 반 반가움 반의 반- 마음을 내민다.


엉덩이를 최대한 뒤로 보내 언제든 도망갈 태세를 취하면서도 용케 용기를 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참으로 복잡 미묘한 생각들이 오고 간다.


이런 경계심을 갖게 만든 사람들이 차례로 떠올라 마구 밉다가도 또 환한 미소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얼굴을 하고서 꼼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을 마냥 미워할 수 없다는 게 제일 어렵다.

더군다나 꼼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사람 몇몇은 꼼과 인사를 하겠다고 다가왔던 터라 계속해서 선량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까지도 의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현실도 슬프다.


이 와중에 더 막막한 건 “손”을 외치고 있는 사람의 손 위로 꼼의 손이 어김없이 챡-하고 올라가 있단 거다.


내가 머리를 쥐어짜며 좋은 기억을 심어주기 위해 이런 인사를 계속하게 두어야 하나 아니면 모든 인사를 막아야 하는 건가 고민하고 있을 때 꼼은 또 다른 손 하나를 챡- 내밀고 있는 식이다.


이쯤이면 눈치채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꼼에게 손은 그냥 손이 아니란 것을.


꼼에게 손이란 최대한의 용기이자 최소한의 사랑이다.


꼼이 사랑을 표현하는 수만 가지 방법 중에 무섭고 낯선 사람에게 용기를 최대한 끌어모아 내밀 수 있는 최소한의 사랑.

(참고로 나에게는 손을 잘 주지 않는다. 대신 손을 제외한 모든 사랑을 내게 준다. 이것은 자랑이다.)


//


막막한 뉴스를 연달아 접하는 날에는 무엇을 해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말을 하더라도 개를 학대하고 버리는 이들에게는 가닿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꼼에게로 다가가 슬그머니 엉덩이를 붙여 앉곤 한다.

맞닿은 곳에서부터 시작한 온기가 내 온몸에 퍼지도록.

그렇게 꼼이 허락한 시간만큼만 앉아 있는다.


그래, 내 옆엔 개가 있지.


한결같이 세상에 손을 내밀고 있는 개가,

무서움을 다 기억하면서도 도망가지 않는 개가.


그러니까 이런 개를 두고서 도망갈 수는 없다.

그건 어쩌면 개의 날개를 빼앗아 영영 감추는 일일지도 모른다.


/


꼼의 곁에서 꼼의 졸음 쉼터로 지내면서 배운 것들 중 가장 의아했던 건

좋아하지 않는 존재에게도 손을 내미는 꼼의 태도였다.


아마 나였다면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갔을 상황에 오히려 한 발 다가가 손을 내미는 걸 보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다.


하지만 점차 극복해 내는 용감한 꼼의 모습에

피하거나 짖기보다는 곁에 다가가 최소한의 사랑을 건네는 용기의 위대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워하는 대신 사랑해 보겠다는 용기가 삶을 얼마나 가치 있게 만드는지 말이다.


그동안은 그런 개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더욱더 사람을 미워하고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나도 용기를 내보려 한다.


챡-




안녕하세요.
용기를 내어 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 옆에는 두려운 사람에게도 손을 내미는 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모든 개가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부디 개를 미워하는 대신 사랑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내밀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사랑이라도 좋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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