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32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놀라움

감동을 일으킬 만큼 훌륭하거나 굉장하다.

by 위드꼼 Feb 28. 2025



비몽사몽 중에 어디선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만 더 옆으로 가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이불속을 파고드는데 잔뜩 심기가 불편해진 목소리가 또다시 나를 깨웠다.

“아니, 옆으로 가라니깐.”


아, 꿈이 아니구나.


정체를 확인하려 뜨기 싫은 눈을 억지로 잡아 뜰 필요도 없이

머리를 가격하는 손길에 단번에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이건 꼼이구나.


아시나요?

개가 사람을 팬다는 사실을?


돌덩이 같은 머리를 움직여 꼼의 자리를 내어주니 우승을 쟁취한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꼼이 엉덩이를 내 어깨에 꾸깃 집어넣어 누웠다.


아무래도 잠결에 따스한 꼼의 털에 이끌려 고개를 파묻은 모양이었다.

(쳇. 누가 그렇게 꼬수우랬냐.)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들기까지 개와 나누는 모든 일상이 익숙해졌지만

지난밤처럼 문득 화들짝 놀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쩌다 나는 잠이 정신을 지배하는 동안에도 꼼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을까.


자다 말고 일어선 꼼의 요구가 자신의 자리인지, 이불인지, 쓰다듬인지 구분하는 일은

나에겐 눈감고도 알아차릴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언제든 원하는 모든 걸 갖다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설령 내 베개를 몽땅 빼앗아 간대도 말이다.



//



무언가를 요구하는 게 분명해 보이는 동그란 눈을 처음 마주했을 땐 도대체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몰라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다 점차 하나둘씩 알게 되었다.


지금 바라는 게 물인지, 간식인지, 산책인지, 쓰다듬인지, 잠인지, 공놀이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그 앞에 ‘어떤’이 붙어도 전부 알아들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꼼이 원하는 게 냉장고에서 갓 꺼낸 물인지 우유인지, 간식 바구니 앞에서 끙끙 거리는 이유가 껌 때문인지 과자 때문인지, 오늘 산책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어디를 어떤 강도로 쓰다듬기를 바라는지, 지금 잠이 쏟아지는데 못 자는 이유가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담요를 가져다 달라는 건지, 공을 잡아야 하는지 아니면 멀리 던져야 하는지 말이다. 아이고 손 아프다.


내가 걱정할 건 ‘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나’가 아니라 ‘나의 말을 알아들으면서도 못 알아듣는 척하는 꼼’임을

머리를 싸매고 있을 과거의 나에게 가서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얘야. 너는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구나. 너는 앞으로 꼼과 대화를 하다 못해 싸우기도 한단다.”


아직도 생생하기만 한,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은 그날의 기억은 이렇게 시작된다.



몹시 춥던 날이었다.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창밖을 내다보며 이런 날씨에도 산책을 나온 개들이 있나 살펴보게 되는 날.


“꼼아, 너뿐 아니라 다른 개들도 다 못 나가고 있어.“라 말하고 싶어 한산한 거리를 내다보면서

속으로는 간절히 ‘제발 아무도 지나가지 말아라.’고 빌게 되는 날 말이다.


그런 스스로를 되게 별로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합리화하는 동안

그놈의 알량한 양심이 뭐라고 기어이 꼼과 눈을 마주치고야 말았다.


꾀를 부릴 땐 되도록이면 개를 쳐다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꼭 명심하시길.


하지만 문제는 이 사실을 개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무섭도록 개는 다 안다.


/


개와 함께 살기로 한 반려인들에게 산책은 필수불가결하다.


뭔지도 모르고 외우는 수학공식처럼 ‘개=산책’이라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모로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저 날은 <일종의 일탈을 꿈꾸는 사람이 산책을 나가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만들어보고자 노력했지만

감시가 철저한 개에 의해 수포로 돌아갔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패배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산책을 꼭 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하는 편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힘을 보탤 수 있다.


그날 내가 정한 이유는 <감자 토스트>였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겠다. 날씨도 춥겠다. 꼼짝없이 길을 나서야겠다.


그래. 뜨끈한 감자토스트를 사러 가자.


야심 찬 마음을 안고 집 밖을 나섰는데 애초에 마음이 틀려먹어서 그런 건지 집 밖을 나서면 안 되는 날이었던 건지

첫 번째 신호등에서부터 일이 틀어지고야 말았다.


“이쪽은 어제 갔던 길이잖아.”


꼼이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굳게 다문 입과 단호한 눈동자가 그 의지를 드러냈다.


“아니, 토스트 가게가 이쪽이야.“


나도 질 수 없었다.


”안 가.“


작은 체구에서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네 다리를 땅에 딱 붙이고선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 어떤 산책 선수가 나타나 꼼과 겨룬대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몸짓과 표정이었다.


이처럼 서로 원하는 길이 엇갈릴 때면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두 가지다.


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둔다.

안아서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


선택의 기준은 <중요도>인데,

꼭 그 길로 가야만 하는 이유가 명확한 경우-예를 들어 병원에 가야 한다던지, 누구를 만나기로 했다던지 등-이 아니라면

되도록 꼼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게 놔두는 편이다.


저 날 역시 명확한 이유-뱃가죽이 등가죽에 붙겠다-가 있었지만

실랑이를 할 힘도, 꼼을 안고 토스트 가게까지 걸어갈 힘도 남아있지 않아 그냥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꼼이 가자는 대로 끌려가기로 했다.


그래. 될 대로 돼라.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잔뜩 신이 난 채로 엉덩이를 들썩이며 걷는 꼼을 바라보며 아이고 혼자 신났네 하고 한탄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떤 개가 꼼에게 호통을 친 것이다.


그건 정말로 과장이 아니라 호통이었다.

그것도 아주 호된.


오… 우와….


꼼과 나 사이에 한 오초정도 정적이 흘렀다.


평소 무던한 성격을 타고난 꼼은 다른 개들에 대한 관심이 일절 없어 상대편 개가 아무리 열렬히 짖어도 제갈길 가기 바쁜데, 그 호통은 꼼에게 꽤나 충격이었던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고 있는데 꼼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처음 보는 얼떨떨한 표정이 귀엽기도 할뿐더러 사실은 조금 쌤통이다 싶었다.


아직도 멍해있는 꼼을 (어디선가 생겨난 힘으로 번쩍) 안아 들고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 많이 놀려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 말 들었으면 좋았잖아.”




고구마 같은 사랑



돌아오는 내내 품에 안겨 숨을 고르던 꼼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웡웡웡웡웡!!“

(꼼은 웡! 하고 짖는다)

“뭐, 왜!“

”웡! 웡! 웡!“

”왜 나한테 그래. 네가 그쪽으로 가자했잖아!“

”워워워워웡!“

”왜 엄한 데다 화풀이야!“

”웡!“


얌전히 걷다가 당한 봉변에 꽤나 억울한 눈치였지만 억울한 걸로 따지면 나도 뒤지지 않았다.


(나가기 싫어 꾀를 부리긴 했지만) 코가 베일 것 같은 추위를 뚫고 길을 나섰고, (내가 끼니를 놓친 거지만)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도 감자토스트를 포기했으며, (속으로 쌤통이다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집까지 고이 안아 모셨지 않았던가.


이런 내 마음도 모르는 꼼은 토라진 등을 보이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여기서 이런 말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흥, 거기 원래 내 방이거든!


/


꼼과 이런저런 이유로 다툴 때마다 이러려고 내가 나이를 먹은 건 아닐 텐데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특히 덩달아 토라진 내 곁으로 이미 기분이 다 풀어진 꼼이 엉덩이를 붙여 앉을 땐 어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니까 내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놀랍도록 개는 뒤끝이 없다는 것이다.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내 입이 점점 더 앞으로 나오는 동안

꼼은 서러움과 속상함, 억울함을 전부 털어내고 금세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무엇도 자신의 일상을 망칠 수는 없다는 듯이.


꼼은 꼼을 잃는 법이 없다.


나도 꼼과 마찬가지로 꼼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는 않기에

그날 우리는 구운 고구마를 나눠 먹으며 극적 화해에 성공했다.


고구마는 사랑이니까

우리는 사랑을 나눠 먹은 거나 마찬가지다.



//



꼼을 처음 품에 안은 날 절대 놓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두려움이 일렁거렸다.


쉽게 싫증을 내고, 좋아하는 것 외에는 일절 관심조차 두지 않는 내가 오랜 시간 변함없는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개와 함께하는 일상들이 점점 심드렁해지면 어떡하지.


하지만 이 모든 고민들이 기우인 걸 깨닫는 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로 누워 잠든 꼼을 볼 때마다 놀라울 정도로 나의 사랑이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다.

계속해서 자라나는 오렌지 게임처럼 말이다.


순조롭고 힘차게 커져만 가는 사랑을 막을 방법은 없다.


꼼과 나는 고구마를 좋아하니까 서로에게 주는 사랑을 오렌지 대신 고구마라 부르기로 했다.


꼼과 나 사이를 오가는 고구마는 몸짓을 계속해서 키워나가 한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는데도

꼼은 별일 아니라는 듯 더 커다랗고 멋진 고구마를 만들어낸다.


둘이 번갈아가며 야금야금 먹어도 줄어드는 법이 없다.


설령 누군가가 고구마를 몽땅 훔쳐간대도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더 커다란 고구마를 만들어낼 것이다.


꼼은 또 별일 아니라는 듯 굴겠지.







금요일 연재
이전 02화 당황스러움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