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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나의 개

프롤로그

by 위드꼼 Feb 14. 2025



Q.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자와 기억을 잃으면서 살아가는 자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만이 존재한다면

나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후자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다.


낙천적이라기보다는 지금 당장 벌어지는 일들을 처리하기에도 벅찬 사람이라

현재 일을 해결하는데 불필요한 기억들을 열심히 삭제하려다

그 주변에 붙어있는 다른 기억들까지 모조리 날려버린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흰 머리카락을 뽑으려다 그리 섬세하지 못한 성격 탓에 주변 검은 머리카락까지 다 뽑아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선 “뭐 어때, 흰 머리카락도 같이 뽑혔으면 됐지.”하는 걸 보면

다른 건 다 핑계고 그냥 낙천적이기 때문인 건가 싶기도 하다.


/


내가 잠시 샛길로 빠져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제각각 저마다의 첫 기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첫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아왔던 것인지

아니면 기억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따로 있는 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조용히 몸을 동그랗게 말아 내 차례가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이처럼 기억 앞에만 서면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드는 나지만

유일하게 당당히 고개를 높게 쳐들고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있다.


Q. 당신의 첫 소원은 무엇인가요?


A. 제 첫 소원이 무엇인지 물으셨나요? 이리 더 가까이 와보세요. 제 첫 소원을 알려드릴게요.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개를 갖는 것이 소원이었답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틀림없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 소원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거든요. 두 번째 소원도, 세 번째 소원도 언제나 같았답니다.


별똥별이 떨어지거나, 보름달이 뜰 때

온갖 소원을 빌 기회가 찾아오는 날이면 나는 곧장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선


제게 개를 주세요.


빌고 또 빌었다.


무작정 개를 원했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어쩌면 나의 삶은 영원히 개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지금 생각하면 다행히도)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엄마의 신념 아래 내 소원은 언제나 묵살당했다.


“네가 다 크면, 그래서 누군가를 돌볼 수 있을 때가 되면 생각해 볼게.”

”엄마, 나 지금도 잘 돌볼 수 있어. 산책도 매일 하고 응가도 내가 다 치울게.“

“…”

“…”

”돌보는 건 그게 다가 아니야. 넌 못해.“


/


네 살의 꼬마는, 열 살의 어린이는, 열다섯 살의 청소년은, 열아홉 살의 수험생은

스스로를 얼렁뚱땅 간수하기에도 벅찬 나이임을 엄마는 잘 알았다.


그리고 엄마는 개를 얼렁뚱땅 데려와선 안 된다는 것도 잘 알았다.


수천번의 바람과 수천번의 거절이 오가는 동안 나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있었고

어른이 되고 나서야 어쩌면 내 인생에 개는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오래-이루어질 리 없는-소원을 바랐던 터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개’인지 ‘개를 원하는 나’인지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거절될 거란 생각에 ‘개를 원하는 나‘의 포지션을 유지하면서도

정작 ’개‘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날의 부끄러움은 두 번 다시 소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잘 돌볼 수 있어.“란 말만 내뱉을 줄 아는 네 살의 나성인이 된 나의 모습이

별반 다를 것 없다는 현실에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맞아, 난 못해.”





개를 바랐던 시절의 기억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개에 대한 환상과 상상을 내려놓는 순간 모든 건 현실로 다가왔고,

개와 같이 산다는 건 결코 쉽지 않겠다 인정하자 거짓말처럼 내게 개가 찾아왔다.


그렇다.

내게 개가 생긴 것이다.


내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자신을 만지라며 손을 잡아끄는 녀석을 볼 때면

‘아니, 어쩌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니, 어쩌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개가 내 곁에…?’


어리둥절한 나보다 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나의 책임을 혹여 놓칠세라

두 팔로 꼭 껴안고선 함께한 지도 어느덧 7년이 흘렀다.


많은 것이 달라진 지금,

그중 가장 먼저 변한 건 오랜 세월 변함없던 나의 소원이었다.


첫눈이 내리거나 불꽃이 터질 때

온갖 소원을 빌 기회가 찾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곧장 두 손을 모으고선



제 개가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 주세요.



/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자와 기억을 잃으면서 살아가는 자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만이 존재한다면

나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전자를 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에 나는 여전히 지금 당장 벌어지는 일들을 처리하기에도 벅찬 사람이지만

내 개와 함께한 모든 순간은 차곡차곡 쌓아두고선 언제든 시간 순서대로 꺼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 개가 해낸 일이다.


잊힐 리 없는 개와의 모든 기억을

개가 내게 준 여러 감정을 나눠보려고 한다.  


이 글은 내가 개에게서 배운 삶에 관한 이야기다.


나의 삶은 영원히 개를 위한 것이므로

나의 개에게 이 글을 바친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개

이름 : 꼼
별명 : 꼬맹, 꼬질, 똥꼬맹, 꼬르댕, 꼬실, 꼼둥, 둥실 등등
나이 : 8세
성별 : 여 (중성화 O)
성격 : 자기 주관이 확실함
좋아하는 것 : 엄마, 장난감, 갓 마른 이불, 새로운 산책길, 제철 과일
싫어하는 것 : 천둥, 병원, 발톱 깎기, 넥카라, 횡단보도 안내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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