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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페이지 성희
Nov 29. 2024
세상에 눈뜰 때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
막
시작됐
다
어느 날 외출해서
들어오신 엄마가
간단한 여행준비물을 챙겨주시며
급하게 나를 교회로 데려가셨다.
지나가다가 교회 앞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보고
당일치기 여름성경학교에 보내려고
신청하셨다고 서두르라고
하였다.
엄마를 따라서 교회 마당에 들어서니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아도
평소에 알던 지내던 동네 친구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나 혼자 어찌
가나
얼떨떨하기도 했고,
처음 가는 거라
긴장도
되었다.
아이들 따라서
줄을 서있다가
따라가
보니
일일교사인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함박웃음을
지은 채
친절하게
하나하나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이름표를 가슴에 붙여주었다.
잠시 후 버스에 올라탔다.
앉아 있는 얼굴을 둘러봐도
역시 모두 낯선 아이들뿐이었다.
시외를 한참 벗어나
산 입구에서 내려서
한참 올라갔다.
한여름 땡볕을 맞으며
산기슭을 오르느라
지쳐갔
다.
등줄기를 따라 흐르던 땀과 열기로 옷이 젖어
왔
다.
올라올 때 길 옆을 흐르던 냇물에
뛰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
졸졸졸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시원해졌
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산속에 아담한
기도원이었다
.
숲이 울창하고 향긋한
풀내음이
좋았다.
어디선가 우짖는 새소리가
맑고
청아
했다.
예배를 보고 더위를 식히러
냇물로 향했다.
첨벙 발을 담갔다.
햇살에 반짝여 보이던
냇물에
발을 담그니
보기와 다르게 차가운
얼음 물
이었다.
"앗, 차가워!"
더위가
한순간에
쏙 들어갔다.
아무도 수영복을 챙겨 오지 않았다.
사실 수영복이 있는 아이도 없었으리라.
남자애들은 속옷만 입고,
여자애들은
옷이 젖지 않게
바지나 치마를 걷어 올리고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
물장구도 치고 신나게
놀았다.
놀다가 보니 배가 고팠다.
선생님이 나무 도시락에 담긴
주먹밥을 나눠주었다.
물도 마시고 과자도 먹고
놀다 보니
모르던 아이들과
어느새 친해져 있었다.
우리는 따끈하게 데워진 바위 위에 옹기종기 앉아
젖은 옷과 몸을
말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보다 목 하나는 더 크고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귀여운 언니는 알고 보니 언니가 아니라 나와 같은 학년이었다.
버스에서부터 옆자리에 앉아서 이것저것을 챙겨주기에
마음이
갔다.
언니가 없는 나는
은연중에
내심
언니라고
여겼던 거다.
말씨도
사근사근하게
다정했다.
잠깐 사이에 엄청 친해졌다.
그 애는 아버지가 월급을 타오면
월급봉투에서 1원도 안 남기고
몽땅 다 지난 달치 외상을 갚는다고 했다.
봉투의
월급이 한 푼도 안 남게 되어 걱정이라고 했다.
살림에 쪼들려 사는 엄마가 불쌍하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그럼 쌀이랑 반찬거린 어찌 사?
다시 외상을 시작하는 거지.
11살의 어린애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아까와 다르게
얼굴빛도
어두워졌다.
그리 순진무구하고 해맑게 놀던 아이가
갑자기 어른의 얼굴을
하
고 집안
살림살이
걱정을 하다니!
나도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 애의 생활을 잘 모르지만
어렴풋이 그 애 가족이 겪고 있을
어렵고 고단한 일상이
그려
졌다.
어른이
아닌
아이가
어른의 얼굴을 하며
어른을
걱정하다니
나와 다른
아니
나보다 훨씬
성숙한
아이구나 싶었다.
그
당시 70년대에는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 대다수였다.
명절에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지금은 흔하고
저렴한
설탕이나 미원을
선물로
보냈
다.
나무 상자에 담긴 사과나 배는
조금 나은 선물이었다.
우리 집도 박봉인 공무원 가정이라
형편이
넉넉하
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끼니 걱정을 하거나,
외상을 지며 살지는 않았다.
넉넉하지 않으니
모든 걸 아껴야 한다고 알았고,
무언가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선뜻
사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역시 결핍의 의미를 어렴풋이
체감하는
나
이였다.
조금이나마
그 애의
형편을
이해했
다.
아마 그때 세상에 대해
눈을
뜬 거 같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형편과 상황으로
각자 몫의
걱정거리를 안고 사는구나
느끼기 시작했
다.
천진한 아이에서 성장해 가며
조금씩 세상이 이런 거구나
내가 어찌
처신
해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게
4학년이란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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