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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그 낭만에 대하여

그 여자, 그 남자, 그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by 은하수 Dec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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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결국 사창가 입구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역전 로터리 근처였다. 하지만 짐을 풀자마자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우리의 동선(動線)을 손바닥 보듯 읽고 있었다. 서너 가운데 더 옮겨 다녔지만 헛수고였다. 급기야 인적이 드문 사창가 골목 어귀에 수레를 세웠다. 일자형으로 뻗어있는 집창촌 골목은 넓지 않았다. 흐릿한 연탄 냄새가 골목 밖으로 풀풀 새어 나왔다.

 거리는 어두웠다. 힘겨운 듯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로등 아래로 술 취한 사내 몇 명이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밤바람이 간간이 휑한 골목을 쓸고 지나갔다. 바람에 떠밀려 온 듯한 사내들이 골목 안쪽으로 가물가물 사라졌다. 사내들은 술집 서너 가운데를 전전하다가 결국엔 이 골목 어귀로 모여든 것 같았다. 

 나는 ‘간드레’(CANDLE)에 불을 붙였다. 길고 파란 불빛이 파 소리를 내면서 어둠을 밀쳐냈다. 연탄 화덕을 바닥에 내려놓고 번개탄을 피웠다. 효승이가 아이스박스를 내렸다. 쩔렁쩔렁 술병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먹장어와 오징어, 닭똥집, 닭발이 담긴 양동이를 주방 아래쪽에 내려놨다. 양념장과 깐마늘, 고추, 오이는 도마 옆 반찬통에 챙겨 두었다.

 더 이상 옮겨갈 만한 곳은 없었다. 수없이 쫓겨 다니다가 겨우 자리잡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오래 붙어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미 취한 사람들이었다. 인적도 드물었다. 첫 손님은 허름한 군용 외투를 걸쳐 입은 사십 안팎의 사내였다. 사각턱에 수염을 깎지 않아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몸집은 다부져 보였다. 그는 소주 한 병을 안주도 없이 들이켰다. 술 한잔에 담배 한 모금이 전부였다. 우리는 딱히 말 붙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릇이나 조리기구를 챙기면서 간간이 곁눈질해 볼 뿐이었다. 그가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일어설 때까지는 채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사내는 목로(木壚)의 한쪽 귀퉁이를 손으로 짚고 일어섰다. 거친 손등에서 굵고 퍼런 핏줄이 꿈틀거렸다. 

 사내가 떠나고 난 후, 한동안 손님이 없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말없이 간드레 불빛만 바라보고 있었다. 가늘고 파란 불줄기가 살모사의 갈라진 혀처럼 날름거렸다. 밤이 깊어지면서 바람은 더욱 크게 일었다. 포장마차 바람막이에 간판용으로 써놓은 글씨가 심하게 펄럭였다.

 ‘외인촌(外人村)’! 

우리에겐 가장 우울하고 쓸쓸한 단어였다. 그것은 1935년 김광균이 쓴 주지시(主知詩)의 제목이었다. 우리는 그 시에서 ‘외인 묘지의 어두운 수풀 뒤엔 / 밤새도록 가느단 별빛이 내리고 /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의 시계가 /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이란 구절을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 

 내 삶은 늘 우울한 상태였다. 이부자리 맡에는 쌀자루와 책 무더기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일 때마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쌀이 중한가, 책이 중한가.’ 비닐 장판 아래로는 빈대들이 들락거렸고 방안 구석구석엔 가난에 찌든 냄새가 배어 있었다. 

 효승이와 포장마차를 꾸리기로 한 건 그때쯤이었다. 역전 부근에 새 자취방을 구해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생활비를 덜어서 중고 리어카를 샀고 제재소 주인에게 사정해서 각목과 널빤지를 얻었다. 자취방으로 통하는 골목길 한편에서 우리는 포장마차를 꾸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시장에 나가 술과 안줏거리를 샀다. 하지만 포장마차를 끌고 거리에 나서기는 쉽지 않았다. 뭇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경멸하는 것 같았다. 나나 효승이나 수레를 앞에서 끌고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수레 뒤쪽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고개를 파묻고 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우리는 장사하러 나갈 때마다 가위바위보로 자리를 정했다. 그리고는 챙 넓은 밀짚모자를 눌러쓴 채 차도 한쪽으로 포장마차를 들이밀었다. 느린 걸음으로 로터리를 돌기도 했고 큰길 가운데를 조심스럽게 가로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금세 넉살이 좋아져서 고개를 쳐들고 좋은 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포장마차 바로 옆, 계단 아래로는 집들이 촘촘했다. 안줏거리를 만들다가 고개를 돌리면 첫 번째 집 담벼락이 마주 보였다. 그 벽 가운데에 방범창이 붙어있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창문엔 늘 분홍색 불빛이 어른거렸다. 채광이 잘되지 않아 항상 불을 켜놓고 있어서 그럴 거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어디선가 병 깨지는 소리와 날카로운 여자의 악다구니 소리가 들려 왔다. 사내들 두엇이 담벼락을 짚고 서서 오줌을 누고 있었고 머리가 긴 여자 하나가 가로등 아래에서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손님은 오지 않았다. 효승이가 먼저 소주병을 땄고 나는 마른오징어를 연탄불에 올렸다. 우리는 손님 대신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셨다. 효승이가 나지막한 소리로 노랠 불렀다.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아직 전 어리거든요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아직 전 눈이 여려요

한 잎 지면 

한 방울 눈물이 나요

......... 

(산울림 노래. 1982. ‘내게 사랑은 너무 써’)     


 노랫소리는 바람에 날려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오징어를 씹어가며 아직 완성하지 못한 졸업논문을 떠올렸다. 하지만 눈에 띄는 건 팔리지 않은 숱한 소주병들이었다. 나는 약을 삼키듯 남은 술을 마저 들이켰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일의 내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슴에서 뜨거운 술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계단 아래를 바라보면서 혼자 흥얼거렸다.     


저 황혼에 어리는

저 들녘에 어리는

얼룩진 너의 얼굴

어둠 속에 물들 때

숙여진 꽃잎처럼

너의 영상 사라지고

쓸쓸한 언덕길에 

찬바람만 남아있네 

(사랑의 듀엣 노래. 1980. ‘영상’)     


 늘어선 집들의 창문 밖으로 어둠에 눌린 불빛들이 가물거렸다. 시간이 어둠을 헤치면서 지루하게 흘러갔다. 그때, 맨 앞집 담벼락의 작은 창문이 빼꼼히 열렸다. 촉수 낮은 백열등 불빛 속에서 여자의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놀랍게도 여자는 우리에게 소주 두 병과 데친 오징어 한 마리, 닭똥집 한 접시를 주문했다. 

 “앞문 열렸으니까 이따 그리로 갖고 와요.” 

얇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였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술과 안줏거리를 쟁반에 받쳐 들고 모퉁이를 돌아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반쯤 열린 미닫이문 사이로 여자의 옷소매가 보였다. 여자는 손가락으로 쪽마루 앞쪽을 가리켰다. 쟁반을 놓고 술값을 받는 사이, 방안 풍경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안주 없이 소주를 마시던 사각턱 사내가 거기 앉아 있었다. 

 바람은 잦아들지 않았고 ‘외인촌’은 하염없이 펄럭였다. 어느새 앞집 창문엔 불이 꺼져 있었다. 한 무리의 손님들을 치르고 나서 우리는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웠다. ‘청자’는 쓰고 독했다. 담배 한 개비가 다 타들어 갈 무렵, 앞집 창문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가냘픈 분홍색 불빛이 왠지 애처로워 보였다. 우리는 그곳, 계단 앞에서 3개월을 버텼다. 그리고는 훨씬 더 수척해진 몰골을 하고 각자 묵을 곳을 찾아 떠났다. 

 그로부터 41년이 지난 12월의 어느 날 오후, 나는 지금 아파트 창밖을 내다보면서 혼자 흥얼거리고 있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진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 년도 힘든 것을 천 년을 살 것처럼... 

(나훈아 노래. 2018.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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