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내 마음속 이야기 삶의 여정 속에서 마주한 수많은 순간들, 그때는 몰랐던 의미를 이제서야 되돌아보며 깨닫는 이야기. 지나온 과거를 회고하고, 그 속에서 배운 교훈을 되새기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진솔한 기록.
옛날 어르신들께서 늘 하시던 말씀 중에 "이 튼튼할 때 잘 먹어 두라"는 말씀이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있었고, 세월이 지나 그 나이가 되어가면서 알게 됐다. 이제는 나이 들어 이가 부실해져서 씹기 힘들어 못 먹고, 맛을 잃어 못 먹겠다고 한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너무나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었던 세대였고, 돈이 없어 사 먹을 수가 없었기에 그저 밥 세끼 굶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으니 입맛을 가리며 먹을 수가 없었다.
누구네 집 저녁 끼니가 없어 못 먹고 있다 하면 같이 나눠서 한 끼를 해결해 주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넘쳐나서 골라 먹고 싫어해서 안 먹는다 한다.
어린 시절 옆집 친구 집에는 12형제에 두 부모 14 가족이 매일 마당 한가운데 상 두세 개를 펼쳐야만 앉아서 복작거리며 매 끼 식사하는 것을 담 너머로 봐왔다. 무엇을 먹든 입맛 없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단출한 반찬이라도 모두 푸짐하게 먹기를 원했던 시절, 없어서 못 먹을 때로 기억된다.
먹는 게 사는 전쟁으로 치열했던 모습으로 비춰졌다. 형제간 서로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고 숟가락 움직임이 바빴던 그 시절, 맛보다는 양으로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었던 것이다.
누구네 집에서 고기 굽는 냄새라도 나면 부러움이 컸고, 가서 보면 돼지 비계만 볶고 있었지만 냄새는 세상 제일 맛있는 일품이었다.
하루 세끼를 쌀밥 먹기 어려운 시절, 하루 한 끼는 특별식이라 하여 수제비나 칼국수, 부침개, 만두 등 여러 종류로 집집마다 개성 있는 식단을 만들어 한 끼 해결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기에 맛은 보장되었다.
어디 어느 집이든 부족한 재료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냈던 그 시절 입맛을 기억하며 찾아보지만, 점점 시대는 풍요롭고 넘쳐나도 그 시절 입맛은 사라졌다. 어디에도 찾기 힘들다, 아니 내 입맛이 변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족한 재료로 최고의 손맛을 더해준 나의 어머님들 정성 어린 음식이 사라지고 있다. 세상 수많은 음식 종류가 펼쳐있지만 나의 세대는 부족했던 음식 맛이 최고이고 그리움이다.
불소시기 아궁이에 눈물 콧물 쏙 빼가며 끓여내던 대가족 부엌 아궁이에서 듬성듬성 만들어 주시던 그때의 맛, 고기보다 싼 부속으로 선지국을 우거지 잔뜩 넣어 양지머리 등 섞어 넣어 끓여준 시원하고 칼칼했던 해장국 한 그릇이 몸 보신 되던 때.
연탄불 위에 구워냈던 꽁치, 고등어, 전갱이, 전어가 코끝을 자극하며 옛맛을 추억한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어머님이 끓여낸 된장국에 콩나물 넣고 서로 비벼 먹던 소박했던 맛도, 쇼팅에 김치 밥만 넣고 볶아줘도 최고였던 그 맛들.
기억을 더듬어 어머님 손맛을 만들어보지만 이제는 어디를 가도 내 어머님들 맛을 잃어가는 것이 안타깝다. 입맛이 없다고 하나 손맛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
재료 본연의 맛이 아니고 이것저것 이름도 잘 모르는 섞어 만든 양념 맛이 정성도 없이 쉽게 쉽게 '퓨전'이라는 변화된 상품 맛에 길들여지고 있다. 정성이란 게 더해지긴 했을까? 우리 고유의 맛을 이 시대 아이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림으로, 이론으로, 사진으로는 남겨져 있겠지만 진솔된 우리 조상님들 입맛을 어떻게 앞으로 기억될지 궁금해진다.
입맛을 잃을 때면 그 옛날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깨죽 한 그릇이, 호박죽 팥죽 한 그릇이 너무나 먹고 싶어 진다. 뚝딱뚝딱 있는 재료로만 가지고 맛있는 한 상이 차려지던 소소한 시골 밥상 앞에 옹기종기 모여 숟가락 하나만 들고도 입맛 다시며 먹었던 내 어머니 밥상이 오늘 더욱 그리움에 입맛을 잃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