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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숙 Sep 28. 2024

수다방 in 사우나

열기 속의 일상들

삶: 내 마음속 이야기 삶의 여정 속에서 마주한 수많은 순간들, 그때는 몰랐던 의미를 이제서야 되돌아보며 깨닫는 이야기. 지나온 과거를 회고하고, 그 속에서 배운 교훈을 되새기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진솔한 기록.





따뜻한 탕, 찬물 탕, 뜨거운 탕으로 오가며 몸을 녹였다 풀었다를 반복하고, 녹녹히 여유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 속에 뻘쭘히 서서 어디로 먼저 가야 할지 잠시 망설이고 있을 때, 어느 한 곳에서 들리는 수다방. 


한국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우나 문화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오랜 이민 생활로 긴 시간 접하지 않았었다. 새로 다시 사용하려니 어설픔이 먼저 다가왔지만 슬며시 찾아든다.


사우나 안에는 중년 여인네들로 이야기꽃이 한창 물오르고 있었다. 매일 아침에 가족들 서빙하고 애들 학교 보낸 후 막간의 시간을 이용하는 수다의 방이다.


삼십 대, 사십 대 엄마에서 오십 대, 육십 대, 칠십 대 언니들까지 세대를 아우르고 모여든 사우나 안에서는 매일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이야기로 세대를 가른다. 


애들 학교 이야기부터 각자 취미들, 무엇을 먹는가, 당신은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어느 병원 누구한테 누가 잘하고 못하고, 살이 쪄서 목표치 몇 킬로 뺄 거라고 생긴 대로 살자며 포기를 선언하는 등등 푸념을 한다.


어디에 무엇이 좋고 나쁘고, 있고 없고, 하고 안 하고, 어딜 가고 안 가고, 식당에 특별한 곳이 있는데 맛이 너무 좋고 없고 싸고 괜찮다는 다양한 정보들로 똘똘 뭉쳐있는 수다방이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고, 서너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아수라백작 마냥 끝없이 끝없이 쏟아지는 아줌마들 정보에 놀라울 따름이다. 


뜨거운 열속 사우나보다 더 뜨거운 생활의 지혜와 나눔이... "아~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구나" 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멋지고 화려함이 곁든, 가족 단위별로 모여 지낼 수 있다는 공간과 즐거움을 함께할 수 있는 장소부터, 지방 곳곳 모르던 명소, 명물들을 속속 나누는 정보 교환들. 하물며 각 가정, 누구네 가정사까지 소소한 사연들, 정말 무궁무진 끊이지 않은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토해내는 아줌마들이다.


몇 번만 보면 친한 친구인 듯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내 가족에게 전하듯 스스럼없이 주절주절 주제가 나오는 얘기에 모두가 공감하며 빠져들고 있다.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인데 금방 친한 사람처럼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을까 놀라웠다. 땀을 빼기 위해 들어갔다가 너무 시끄러워 짜증이 나고 심히 불쾌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겠구나 이해하면서 안쓰러웠다.


여자들의 삶의 일부를 들여다볼 수 있던 곳. 별것도 아닌데 엄청 이슈화되는 소소한 이야기부터, 꼭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터트려야 하는 부부 문제들, 시댁 흉보기. 자존감 떨어진 것을 오히려 엄청 잘난 척, 있는 척, 아는 척하며 말도 안 되는 자존심을 세우며 핏대 올리고, 이것저것 막 쏟아내는 이야기 속에서 인간은 누구에게나 추구하는 바가 많고 자유를 갈망하는 것이 많다고 느꼈다. 


단지 사우나를 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삶이 짜증 나고 피곤한데 들어줄 사람이, 공감해 줄 상대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끼리끼리 웃고 떠들며 풀어낸다. 강남 'SKY 캐슬' 못지않다.


주부들이라면 누구나 이해되는 것들이기에 바로 수긍되지만, 여기는 조용히 사용해야 할 공공 사용 장소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무례하고 도덕적 예의란 찾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소음으로 오염된 곳 같다. 


모두가 지식인이고 많이 배움을 앞세운다. 그런데 행동으로 보이는 건 철부지 아이들 못지않다. 당연한 듯 아무에게도 미안해하지 않고 당당하다. 실컷 토해내고 사라지는 주부님들의 수다 장소다. 


좀 더 유익하게, 품위 있는 장소로, 품격 있게 바뀌어가는 문화의 장소로 격상되어 주길 바란다. 


아름답게 변신되는 곳으로 삶의 질까지도 높이 개선되도록 우리 서로 각자를 돌아보며, 나보다 남을 우선 배려해서 생각하는 로댕이 되는 이 시대 문화인으로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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