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글을 쓸지 말지 고민을 했다.
살만 하면 재발한다는 게 도박이라는데, 아무래도 살만 했나보다.
나의 재발에 대한 침묵은 세상을 향한 거짓말이기에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여진이 발생한 원인을 요 며칠 동안 고민했다.
첫째, 망각
바닥으로 빨리는 나의 처절한 감정은 휘발되기에 이를 세세하게 묘사하여 이때의 감정을 되새기게끔 하기.
그리하여 재발을 막고 기강이 해이해질때 다시금 찾아 읽기. 내가 단도일기를 온라인 상에 남겨야겠다고 처음 마음을 먹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그리고 여진이 찾아오고 다시 읽어본 첫 글.
"2024년 8월 6일,
심장의 쿵쾅거림을 선명히 기억한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MTS에 영혼이 빨리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요동은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떠오를 요동, 아니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할 떨림이다."
-단도일기 EP0. 도박 인생의 마침표를 찍다 첫 문단-
이 요동과 떨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힘이 약했나 보다. 그 당시에 느껴진 뇌에 금이 가는 듯한 삶의 균열은 생각보다 금세 회복되었나 보다. 그저 주어진 하루의 과제를 묵묵히 해나가고 계획한 금액을 갚아나가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픈 기억은 아픈 기억이었을까. 곰곰 생각해보면 처음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찾아 읽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었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으로 난무했던 8월 6일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불편함과 울렁거림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피부가 찢어진 상처에서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식염수나 물로 상처 부위를 씻는 것이다. 아프다고 이 과정을 생략하면 상처는 덧난다. 나의 무의식은 식염수와 물을 무시했다. 그리고 난 그 당시엔 생생했던 MTS에 영혼이 빨리던 느낌을 망각했다.
둘째, 유혹
'자기 자신으로 자연스럽게 살지 못하고 언제나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상태'를 '슈드비 콤플렉스'라고 한다. 난 시간적 여유가 생기곤 하면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다.(현재는 많이 내려놓은 상태이지만 무의미한 시간을 잘 견뎌내지 못한다.) 책을 읽든, 의미 있는 유튜브를 시청하든, 글을 쓰든, 집청소를 하든. 그리고 나에게 주식은 기여코 생산적인 일 목록에 비집고 들어왔다.
8월 6일도 내 1년 중 가장 시간적 여유가 많은 시기였다. 경제적 유인(수익을 냈다는 가정 하에)은 내게 어떤 일보다 생산적인 일로써 다가왔다. 짧은 시간에 나의 육체적 노동보다 훨씬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주식은 달콤함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수익을 냈을때, 생산적인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물론 달콤함과 성취감은 껍데기뿐이었지만.
이번 여진이 발생한 시기도 나의 시간적 여유가 많은 시기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당장 해야할 일이 없고 손만 뻗어 핸드폰만 잡으면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헛된 신념. 그렇게 난 또 한번의 베팅을 했다.
물론 그 금액대도 예전에 비하면 매우 귀엽고, 또 베팅한 돈도 은행의 소유가 아닌 나의 소유로 그 성질도 예전의 것과는 다르다. 또 다행인 것은 여진의 기간은 이틀로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은 합리화이다. 그저 내가 일으킨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다시 한번 주식(도박)을 했음을 시인한다. 마침표를 찍겠다는 다짐을 망각했고 생산적인 일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여진(餘震, Aftershock)은 지진학에서 큰 지진이 발생한 이후에 발생하는 작은 지진을 의미한다. 큰 지진의 영향으로 이동한 지구의 지각이 다시 재조정되며 이동하면서 남은 탄성에너지를 마저 해소하기 위해 발생한다. (출처: 위키백과)
'남은 탄성에너지를 해소하기 위해 발생한다.'
나에게 남아있는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해
언젠가는 발생할 일이었다면 난 이번 여진을 '건강한 좌절'이라 명명하고 싶다.
인간은 나약하다.
나는 나약하다.
그러니 쓰러지고 다시 일어선다.
그러니 실패하고 다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