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으면, 그만이지

― 시민의 자리에서 다시 쓰는 남성당 한약방 교육관 개관의 의미

줬으면, 그만이지

― 시민의 자리에서 다시 쓰는 남성당 한약방 교육관 개관의 의미

진주 남성당 한약방 교육관의 개관은 새 건물이 하나 더 생긴 날이 아니라, 진주라는 도시가 어떤 가치로 기억되고, 어떤 태도로 다음 세대와 이어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날이었어야 합니다.

3년 동안 문을 닫고 있던 한약방이 이제는 기억과 기록, 그리고 배움의 공간으로 다시 열렸습니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품은 채,

1층은 기억의 자리로,

2층은 형평운동과 소년운동의 기록으로,

3층은 앞으로의 배움과 만남을 위한 이음의 공간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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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조는 우연이 아닙니다.

과거를 딛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로 나아가라는 시민 교육의 서사입니다.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말의 무게

이날 가장 깊이 남은 말은

화려한 축사도, 거창한 선언도 아니었습니다.

“줬으면, 그만이지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김장하 선생님의 이 말은

겸손한 인사의 표현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한 어른의 원칙이었습니다.

드러내지 않고,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칭찬받으려 하지도 않는 태도.

그 태도는 이제 한 개인의 미덕을 넘어

이 공간을 찾는 모든 시민에게 던져진 질문이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받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기념식이 아니라 ‘시민의 약속’이었어야 합니다

남성당 한약방 교육관의 개관식은

박수로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시민과 함께 책임을 나누는 약속의 자리였어야 합니다.

이 공간은

누군가를 기리는 장소이기 이전에,

차별과 배제를 넘어 평등을 외쳤던 형평운동,

아이도 시민임을 선언했던 소년운동의 정신을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묻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관식은 이렇게 구성되었어야 합니다.

가. 업적을 나열하는 말보다 기억을 이어온 시민의 증언이 중심이 되고

나. 축사보다 앞으로의 운영 원칙과 시민 참여 방식이 분명히 제시되며

다. “잘 해냈다”는 말보다 “함께 지켜가자”는 약속이 남는 자리

그럴 때 이 공간은 비로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남성당 김장하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기준’이어야 합니다

김장하 선생님의 삶이 존경받는 이유는

특별해서가 아니라, 한결같았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했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었으며,

도움은 주되 이름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남성당 한약방 교육관은

그분을 기념하는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 삶의 태도를 도시의 기준으로 삼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선을 실천하는 것

나. 기록을 소유가 아니라 공공의 자산으로 나누는 것

다. 다음 세대에게 ‘가르침’보다 ‘모범’을 남기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공간이 시민에게 건네야 할 가장 큰 교육입니다.

그래서, 이 공간은 이렇게 쓰여야 합니다

남성당 한약방 교육관은 앞으로

많은 사람이 다녀가는 명소가 되기보다,

다녀간 사람들이 조금 달라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시를 보고 끝나는 곳이 아니라,

질문을 안고 돌아가는 곳.

역사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곳입니다.

“줬으면, 그만이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나 역시 그렇게 살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는 공간입니다.

그럴 때 이 개관은 비로소 완성됩니다.

남성당 한약방 교육관의 문은 열렸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단 하나입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살아 있게 할 것인가?

그 책임은

행정도, 특정 인물도 아닌

이곳을 찾고, 기억하고, 실천하는

우리 시민 모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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