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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Sep 11. 2024

당신의 풍차는 무엇인가

소중한 내 삶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발레 ‘돈키호테’를 보러갔다. 이번 공연은 국립발레단만의 버전으로 각색 및 재해석되었다고 해서 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공연장은 많은 관객으로 붐벼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열기가 뜨거웠다. 

  발레리나들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나는 그들이 몸으로 표현하는 대사에 빠져 숨을 죽이며 집중했다. 매력적인 키트리와 멋진 바질의 사랑 이야기를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순수한 사랑의 기쁨과 행복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몸짓은 우아했고 움직임은 깃털처럼 부드러웠다. 그들의 춤은 단순한 듯 보이기도 했으나 ‘돈키호테’라는 서사를 품고 있기에, 손짓 하나 발짓 하나에도 상징이 깃든 것처럼 다가왔다.


  내게 있어 발레 공연의 묘미는 단연 피루엣(pirouette)이다.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팽이처럼 도는 동작을 피루엣이라고 한다. 나는 발레리노가 몇 번을 도는지 수를 헤아려 보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떠올렸다. 그는 ‘백야’라는 영화에서 11번을 돌고 또 돌았다. 보통 무용수들은 5~6번 정도가 평균이라고 하는데 ‘일레븐 피루엣’이라는 명장면을 연출했던 것이다. 

  학창 시절, 시험을 치고 나면 ‘문화교실’을 갔다. 문화교실이란 학년별로 또는 전교생이 단체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다. 수백 명이 소풍을 가듯 영화관으로 향했으니, 가끔은 영화 내용보다 친구들과 손잡고 걸었던 장면이 더 오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 본 영화가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주인공이었던 ‘백야(1986년)’와 ‘지젤(1988년)’이었다. 그는 구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두 편 모두 무용수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그가 실제로 발레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어 감동적이었다. 그 당시 나는 영화를 먼저 본 선배로부터 “미하일이 11번을 팽팽 도니까, 한 눈 팔지 말고 보거레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미하일이 발레 하던 중 ‘턴’을 하기 시작하자, 손가락을 꼽아 가며 수를 헤아렸다. 

출처:알라딘 서점

  돈키호테는 변함없이 산초 판자와 모험을 떠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사도 문학을 탐독하다가 잠이 든 돈키호테였다. 꿈속에서 아름답고 고결한 여인 둘시네아를 만나지만, 그녀는 괴물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잠에서 깨어난 돈키호테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바르셀로나 광장으로 향했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주인공을 보며, 우리네 인간사를 엿보았다.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며 살 수만은 없지 않은가. 우리는 대부분 살아가면서 자주 돈키호테처럼 자신만의 풍차를 마주한다. 사회는, 직장은, 가정은, 때때로 현실을 직시하고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발을 딛고 땅만을 바라보라고 요구하고 다그칠 때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만 머무르며 꿈과 이상을 따라가지 않고 정체된 생활을 한다면 더 이상 개인의 발전과 성장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돈키호테처럼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라도 의지를 갖고 풍차를 넘어설 수 있도록 시도해야 한다. 그의 무기는 녹슨 창과 낡은 방패였지만, 사실은 ‘용기’가 가장 큰 자산인 것 같다. 


  “당신의 풍차는 무엇인가?” 돈키호테가, 아니,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작품으로 썼던 대문호 세르반테스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돈키호테처럼 용기를 가슴에 품고, 내 눈앞에 놓인 장애물을 뛰어넘어도 보고, 손으로 힘껏 밀어도 봐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리라. 풍차 너머를 바라보며, 현실을 넘어, 삶의 목표를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 소중한 내 삶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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