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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Oct 07. 2024

지나간 삶은 우산처럼 수선해서 쓸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마음속을 수시로 점검하고

  아파트 앞 공터에 트럭이 왔다. ‘우산 수선’이라는 현수막을 붙인 차를 보니 처음에는 뜬금없었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제법 쌀쌀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비가 내리기는 했다. 그러나 우산을 고쳐 쓰기에 어울리는 시기는 왠지 장마철을 앞둔 시점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나만의 편견이었다. 비는 지금껏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렸고, 눈이 올 때도 우산을 쓰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마침 내게도 우산 살대가 부러지고 손잡이가 끈적거려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기에 서둘러 챙겨 들고 나왔다.



  노인이 우산을 고치고 있었다. 노인은 손때 묻은 도구들을 바꿔 가며 부러진 살, 휘어진 대, 찢어진 천을 깁고 펴고 이어 놓았다. 정성스레 깁는 모습에 믿음이 갔다.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볼일을 보고 오라는 말에, 구경해도 되느냐고 말하며, 간이의자에 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우산 고치는 분을 만나기가 어려워요.”

  노인은 우산 고치던 손길을 잠시 멈추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요즘은 우산을 고쳐 쓰는 사람보다는 버리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가 아닌가? 처연한 웃음을 지으며 오히려 나에게 반문했다. 

  “그럼, 어르신은 왜 우산 고치는 일을 하세요?”

  내가 어줍지 않은 말투로 묻자,

  “나야, 할 줄 아는 재주가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러고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

 

  내가 맡긴 우산의 차례가 되었다. 나는 노인이 부러진 살대를 교환하고 제법 꼼꼼하게 실로 이어 놓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오랜 세월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장인의 손길을 느꼈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배여 있는 것 같았다. 우산은 이제 손질이 끝나면 우리 집에 있는 다른 우산들처럼 비 오는 날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학창 시절, 교실 입구까지 색 고운 우산을 들고 오는 친구의 엄마를 보면 부러웠다. 우리 엄마는 가게 일로 항상 바쁘셨기에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면 나는 흠뻑 젖은 채 집에 오기 일쑤였다. 내가 걷고 뛰기를 반복해 집에 오면 엄마는 미안하다며 수건으로 머리칼을 닦아 주셨다.

 

  나는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에 자식에게는 우산을 꼭 챙겨주고 싶었다. 그런데 딸아이는 우산을 잘 챙겨가지 않는다. 내가 등교 전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으면 접는 우산을 책가방에 넣어두지만, 딸아이는 슬그머니 책상 위에 빼놓고 갈 때가 많다. 감기 걸리면 어떡해? 걱정스런 눈길로 물어보면 괜찮다, 라는 대답만 무심하게 돌아올 뿐이었다.

 

  노인이 우산을 다 고쳤다며 나를 불렀다. 우산에 대한 과거 속에 빠져 있던 나는 기억의 편린들을 바람결 따라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우산을 받아들고는 손잡이를 살펴보고 살대도 잘 고쳐졌는지 접었다 폈다, 반복해 보았다. 손잡이가 끈적임 없이 매끈하고 우산 살대도 마무리가 튼튼하게 되어 있었다. 만족스러워하는 내 얼굴을 보자, 노인의 얼굴에도 수선을 마친 사람의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출처:네이버 영화

  우산을 집에 들고 와서 다시 한 번 펼쳐 보았다. 수선을 한 덕분에 편리해진 우산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리니 노래 한 소절이 입속에서 맴돌았다. 자끄 드미 감독의 영화 「쉘브르의 우산」에서 흘러나왔던 OST 「I Will Wait For You」의 한 부분이다. 나나 무스쿠리의 음색이 더해진 영화를 떠올리면 언제나 내 가슴에 깊은 전율이 흐른다. 



  영화 속 장면을 음미하다가, 결국에는 우산 수선으로 귀결했다. 문득 내 언행과 습관이 잘못되었을 때에도 우산을 고치듯 제때에 수정하고 보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말과 행동의 실수로 후회하는 일이 많았다. 잘못된 습관은 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간해서는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순간순간 체득했다. 


  지나간 삶은 우산처럼 수선해서 쓸 수 없다. 우산을 더 이상 고쳐 쓸 수 없을 때 새로 장만해서 사용하는 것처럼, 다시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다. 그러므로 내 마음속을 수시로 점검하고 수선하면 좋을 것 같다. 마음의 무엇이 부서져 있는지, 내 생각의 어디가 고장이 나 있는지, 자주 들여다볼 일이다. 그러면 앞으로 내 생활 속에 폭풍우가 쏟아져 감당하기 힘들거나 마음에 희뿌연 안개비가 내려 울고 싶을 때, 잘 견뎌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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