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말고는 고흐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
제주도 아르떼뮤지엄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만났다. 명화를 담은 빛의 정원에서는 르네상스부터 상징주의까지 서양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만날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 모네, 피카소, 클림트 등의 작품들이 벽면 가득 펼쳐질 때마다 내 몸의 세포 인자들은 감동으로 소용돌이쳤다.
고흐의 작품이 펼쳐질 때에는 영화 <러빙 빈센트 (2017년)>의 장면들이 덩달아 연상되었다. 개봉 전부터, 세계 최초로 화가들이 직접 손으로 그린 유화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125명의 화가들이 동원되어 10년간에 걸쳐 고흐의 화풍을 그대로 재현했다.
도로타 코비엘라 감독과 휴 웰치맨 감독은 “그림 말고는 우리를 표현할 방법은 없습니다.” 라는 고흐의 마지막 편지 속 내용을 활용해, “그림 말고는 고흐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별이 빛나는 밤’이 장식했다. 시작 장면에는 고흐가 생레미 요양원에서 그렸던 작품을 넣었고, 끝 장면에는 아를에서 그린 그림을 화면 가득 채웠다.
고흐는 밤이 낮보다 색채가 풍부하고 강렬한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으로 물든다고 말하며 밤하늘과 밤풍경을 좋아했다. 아르떼뮤지엄에서도 ‘별이 빛나는 밤’의 그림이 나왔다. 나는 그 순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사이프러스나무 옆에 기대어 사진을 찍었다. 그림의 감동이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았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들여다보며 추억을 음미했다. 고흐의 그림들을 다시 살펴보는데, 문득 전시관에서 만나지 못했던 화가의 다른 작품이 떠올랐다. 「감자 먹는 사람들」이 연상되면서, 자연스레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썼던 편지도 생각났다. 고흐는 동생의 생일에 맞추어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내고 싶었지만, 마무리를 못했다는 말을 서두로 자신의 예술관을 적었다.
나 또한 물질적 어려움에 주춤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에 무너져 파묻혀 있을 수는 없을 거야.
나는 이 문장에서 목울대가 울컥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고흐는 살면서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직면했을 텐데도 가난에 흔들리지 않고, 그가 그림을 그렸던 8년 동안 800점의 작품을 남기며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평생 흔들리며 사는 것임에랴. 깃발도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면 깃발이라 할 수 없고, 나무도 바람에 흔들려야 땅을 움켜잡고 안정적으로 뿌리내린다고 했다. 우리네 삶도 환경에 무수히 흔들리면서 중심을 잡고 살아간다.
그러나 인생을 ‘나답게’ 살기 위해서 흔들리지 않는 것을 한두 개쯤 가지고 있어도 좋을 성싶다. 고흐의 예술적 신념이나 학생들의 공부 습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들로 개인의 내면은 단단하게 여물고 성장하리라.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은 초등학생들의 방학이 시작되면 특강 준비로 분주해진다. 우리 아이들이 방학을 보람되게 보낼 수 있도록 강의를 기획하는 것이다. 특강은 차시별로 관련 책을 읽고 주제와 연계한 다양한 글쓰기 독후 활동 및 북아트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프로그램은 학부모들로부터 어린이들의 창의력을 키워 주고 다양한 영역으로 사고력을 확장시켜 준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다.
그런 의미로 도서관 운영 원칙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몇 년 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시행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방역 조치로 대면 수업으로 진행되던 강좌들이 열리지 못할 뻔했다. 다행스럽게도 도서관 관계자들은 집에서도 안전하고 즐거운 독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비대면 강의를 제공했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도서관에서 강의를 해 오던 내 삶의 조각들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온라인 쌍방향 수업을 할 때였다. 학생들은 어색함도 없이 눈빛을 반짝이며 수업에 집중했다. 나는 심훈의 『상록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일제의 압박으로 학생 인원을 줄여야 했던 영신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는 장면이었다. 배우고 싶어도 쫓겨나야 했던 학생들의 서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진 문장이었다.
누구든지 학교에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나무에 오르고 담에 매달려서도 배우고자 했던 아이들의 얼굴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외출이 힘들지만 비대면 도서관 수업에 열의를 다하는 학생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고마웠다. 지금도 그때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주인공 영신처럼 콧마루가 시큰해진다.
올해도 도서관의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인문학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매개체가 되고 싶다는 내 꿈도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었다.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책을 통해 다양한 간접 경험을 쌓으며 세상과 소통했으면 좋겠다. 그 따뜻한 여정 속에서 학생들이 흔들리지 않고 꿈과 희망을 노래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