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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Oct 28. 2024

왈츠는 사랑을 싣고

나에게 사랑은 하나의 점이다. 임계점

  나에게 사랑은 하나의 점이다. 임계점. 한 물질이 다른 성질의 물질로 변하는 계기를 임계점이라 하는데, 나에게 사랑은 임계점과 같다. 무뚝뚝한 내가 어설픈 애교를 부리며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나를 만난다. 


  나는 첫 번째 점을 하나 둘 셋 쿵짝짝, 왈츠를 추며 찍었다. 초등학교 5학년 체육 시간에 세계 민속춤 중의 하나인 왈츠를 배웠다. 선생님은 스텝을 가르쳐 주시며 남학생의 왼손바닥에 여학생의 오른손을 얹고, 여학생의 왼손은 남학생의 오른팔 위에 얹으라고 하셨다.


  우리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싫다고 소리를 질렀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데 어떻게 손을 잡느냐고 너스레를 떠는 아이도 있었고, 남자끼리 여자끼리 하자고 타협하는 친구도 있었다. 시끄러운 소동에 선생님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셨다. 체육 실기를 왈츠로 한다며 잘 따라하라는 엄명을 내리신 것이었다.


  인사법부터 시작했다. 발의 움직임이 조화를 잘 이루어야 멋진 왈츠를 출 수 있겠지만, 그보다 인사를 제대로 해야 격식이 갖춰진 우아한 춤이 완성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들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동작을 익히기에 바빴다. 


  선생님이 카세트 버튼을 누르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움직였다. 멋쩍은 듯 웃으며 딴청을 피우던 아이들이 서서히 리듬을 탔다. 선생님은 우리들이 어느 정도 기본기를 익혔다고 생각하셨던가 보다. 「밀과 보리가 자라네」 노래의 어린이 왈츠 율동을 가르쳐 주시며 모둠별로 시험을 본다고 하셨다. 반 아이들은 마주보는 짝지와 손뼉을 치기도 하고,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짝을 바꾸는 동작을 반복해서 배웠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연습하던 중이었다. “친구를 기다려 한 사람만 나오세요. 나와 함께 춤추세”를 부르며 짝을 바꿔야 했다. 그런데 내 앞의 남학생이 빙글 돌면서 다시 제자리로 왔다. 자기는 짝을 바꾸기 싫다면서. 나는 반 아이들이 보는 앞이라 얼굴을 붉히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속으로는 친구의 엉뚱함이 싫지 않았다. 


  우리 둘은 소꿉놀이 친구였다. 스스럼없이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놀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애를 멀리했다. 어느 날 알게 된 친구 아빠의 대학 교수라는 직업이 부담스러웠다. 두 집안의 생활 형편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졌다. 열등감은 때로는 진실이 아닌 것도 사실인 것처럼 믿게 만들었다. 친구네를 들락거리며 마주쳤던 그 애 어머니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나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구나, 스스로 단정 짓고는 마음 아파했다.  

 

  그런 나 자신이 싫어 마음속에 울타리를 쳤다.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려던 친구의 마음이 넘어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사실은 그 애를 바라보는 것마저 설렜던 나 자신을 단속하기 위한 처방이었다. 


  친구의 진심이 나비처럼 춤추듯 날아든 것은 순전히 왈츠 때문이었다. 설레며 두근거리는 내 마음의 박자와 왈츠의 리듬은 기분 좋게 일치했다. 그렇게 첫사랑은 왈츠를 추며 내 마음에 점을 찍었다. 임계점. 열등감이 옅어지며 더 이상 친구 앞에 섰을 때 주눅들지 않았다. 예전처럼 친구의 집 서재 가득 꽂혀 있던 책을 빌려 읽기도 하고, 마당 한켠에 붉게 익은 석류를 따다 함께 나눠 먹기도 했다.


  우리 둘이 만들어 갈 이야기는 석류 알맹이처럼 빼곡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학년이 끝나갈 무렵, 친구네가 멀리 이사를 가면서 끝이 났다. 새콤달콤하면서도 아쉬운 기억만을 남긴 채로. 그렇게 시나브로 내 기억 속에서 그 아이는 잊혀졌다.

출처:네이버 영화 

 

  아니, 잊힌 줄 알았다. 살면서 어느 날,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2001년)」를 보았을 때 내 추억이 되살아났다. 주인공들은 러시아 출신 음악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중 왈츠 2번에 맞추어, 노을이 내린 바닷가 솔숲에서 왈츠를 추었다. 훗날 주인공 인우는 이 왈츠를 들으며 대학 시절의 첫사랑 태희를 떠올렸다.


  그 순간에 나도 「밀과 보리가 자라네」 노래를 흥얼거렸다. 고개가 저절로 까닥거려지고 발장단은 신명이 났다. 그러면서 유난히 머루처럼 까맣던 친구의 눈동자를 아스라이 떠올렸다. 


  첫사랑을 만날 것만 같은 기대 때문이었을까? 어렸을 때 내 눈빛이 반짝였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리움이라는 또 다른 점 하나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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