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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Sep 30. 2024

학도의용군을 가슴에 품다

한국전쟁 때 학도의용군들은 꽃다운 14세였지만,

  이슬 젖은 흙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호젓한 탑산을 걷는다. 무성한 풀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너울댄다.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 옆 계단을 내려가면 포항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이 있다. 6·25전쟁 당시 포항지구 전투에 참가했던 학도의용군을 기리는 곳이다. 조국이 위기에 했을 때, 펜 대신 총을 잡고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자진 참전했다. 세상에 남겨진 숱한 흔적들 중에 학도의용군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교복 입은 어린 저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처지는 어찌 되었을까? 


  전쟁 당시, 제 3사단 후방지휘소가 위치한 포항여자중학교에는 학도의용군 71명이 있었다. 8월 11일 증강된 연대규모의 북한군은 소티재를 넘어 포항 시내로 진입하였다. 학도병들은 스스로 2개 소대를 편성하여 8월 11일 새벽 4시부터 11시간 동안 북한군의 침공을 저지하였다. 이 전투에서 71명의 학도병 중 47명이 전사하고 4명이 실종되었으며, 13명이 포로가 되었다.


  몇 년 전, 기념관 사무실에 가면 학도의용군 생존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1979년 8월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학도의용군 전적물 보존, 추념행사 및 현지 안보교육을 실시해 왔다. 한국전쟁 때 학도의용군들은 꽃다운 14세였지만, 머리가 희끗한 80대 노인이었다. 상흔을 지니고 살았던 그들처럼 우리도 전쟁의 아픔을 잊지 말고 후세에 전해야 한다. 못 다 피고 죽은 학도의용군을 기억하는 것이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은 길이기에. 상흔을 지니고 살았던 그들처럼 우리도 전쟁의 아픔을 잊지 말고 후세에 전해야 한다. 못 다 피고 죽은 학도의용군을 기억하는 것이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은 길이기에.

출처 :네이버 영화


  학도의용군의 숭고한 정신을 마음속에 새기며 전시실을 둘러본다. 내 머릿속에는 71명 학도병들의 실화를 담은 영화 ‘포화 속으로 (2010년)’가 떠오른다. 그들이 교복을 입고 전장에 나갔던 앳된 사진과 사용했던 무기와 노획한 무기들, 전투 상황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지도,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포항여중 전투뿐만 아니라 장사 상륙작전, 독석리 해상철수작전, 천마산 96고지 전투, 형산강 전투, 기계 안강 전투, 다부동 전투 등에도 그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6·25 전쟁 당시 국내 학생 5만여 명과 재일 유학생 641명이 전투에 참가했다. 약 20여만 명이 후방 선무 및 공작, 위문활동, 잔당 소탕작전 등에서 활약했다고 한다. 그들 중 7천여 명이 산화했고, 전국에서 제일 많은 학도의용군이 희생된 격전지가 포항이었다. 8월 9일부터 44일 간에 걸쳐 일어났던 낙동강 전투, 그 최후의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



  기념관을 나와 포항지구 전적비를 향한다. 솔숲을 떠도는 눈부신 햇살이 내 등에 업혀 같이 동행한다. 나라를 위해 군복도 군번도 없이 전쟁터에 참전했던 학도의용군들이 주는 교훈을 새삼 되새겨본다. 의연하게 호국(護國)에 가치를 두고 혼신을 다한 그들 모두의 가슴에 빛나는 훈장을 달아주고 싶다.

 

  전적비 옆에 있는 이우근 군의 편지를 새긴 돌비 앞에 선다.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는 학도의용군에 자원했다가 전투가 잠시 멈춘 틈에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이 편지를 읽으니, 더욱 마음이 짠하다. 편지 속에 많은 의미가 함축된 것 같아 내 마음이 먹먹하다. 편지 글 중에 가장 눈물 나는 대목이 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 주시던 백옥 같은 청결한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내복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자신의 옷이 수의 같다던 그 말에 내 눈자위가 뜨뜻하다.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꼭 돌아가겠다던 그 소년은 지금, 바람이 되어 이곳을 떠돌고 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어린 영혼을 가슴에 묻은 의용군들 어머니의 가슴은 한이 맺혀 어찌 살아갔을까? 그 어머니들을 생각해서라도 전쟁의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다시 생기지 말기를. 


  64개의 계단을 오르면 전몰학도 충혼탑이 서 있다. 한참을 묵념하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묵묵히 한 자리에서 세월을 이겨내면서도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죽은 영혼들을 보듬고 있다. 수많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그들을 기억하는 가족들이 찾아왔을 때 한숨과 눈물을 받아준 탓인지, 슬픔의 농도가 짙게 배어있는 것 같다. 


  충혼탑이 무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해 귀를 기울인다. 몇 번의 방문으로 학도의용군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엄숙하게 해본다. 새끼손가락 걸듯 충혼탑을 쓰다듬으며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의 말도 덧붙인다. 


  학도의용군들을 가슴에 품는다. 그들의 숭고한 정신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는 지금 이 순간, 내 심장이 뜨겁게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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