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만큼 살갑지 않게, 하지만 냉전을 하는 것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온도로 겨울을 맞았고, 겨울을 지났다. 봄이 오려면 한 달 정도 남은 어느 날, 할머니가 운을 뗐다.
“내가 다니는 병원 앞에, 역에서 가는 길에 국밥이랑 고기를 같이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는데, 같이 가볼래?”
할머니는 지하철로 병원에 다닌다. 지나다니면서 점찍어둔 식당이 있다니, 들어가고 싶으셔도 차마 혼자 들어가기 힘드셨으리란 생각에 가슴 한쪽이 아려 왔다.
“밤은 어두우니까 말고, 낮에 갔으면 싶은데. 너 주말만 되지?”
다음 주 월요일에는 휴가를 내놓았고, 금요일 저녁에 본가로 가서 주말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본가에 하루 늦게 간들 어떠하랴.
“토요일 점심때 가요, 할머니. 이번 토요일이요.”
할머니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바로? 너 집에 간다 하지 않았냐?”
“먹고 저녁이나 다음날에 가면 되죠. 바로 가 봐요, 그 집 궁금해요.”
그렇게 해서 토요일이 되었다. 할머니가 택시는 한사코 거절하여 지하철을 탔다. 할머니는 평소 병원을 다니며 익숙한지 내가 방향을 안 잡아도 느린 걸음으로 야무지게 맞는 방향으로 가셨다.
“그 식당은 어떻게 아시고요? 지나가면서 보고 맛있어 보였어요?”
“내가 거기 가서 국밥을 자주 먹었어. 그런데 거기가 국밥집이 아니고 원래는 고깃집이야. 그래서 언제 한번 우리 애랑 가봐야지 했지.”
이 말에 나는 두 번 놀랐다. 할머니가 그 식당에 혼자 가서 식사를 자주 하셨다는 것에 놀랐고, ‘우리 애랑’이라는 말에 놀랐다. 맛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차마 혼자 고기까지 구워 먹긴 힘들어서 일행이 필요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간 할머니의 위생 문제로 멀어졌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러셨어요. 국밥은 무슨 국밥인데요?”
“몰라, 소고기 들어간 빨간 거.”
장터국밥이려니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을 나오니 낮은 건물과 좁은 도로들이 복잡하게 만나는 동네가 나왔다. 깔끔한 인상을 주지는 않는 동네였지만 그 나름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는 맛이 있었다. 날은 아주 흐려 우중충했다. 저 멀리 높게 솟은 대학병원이 보였다. 300미터 조금 더 되는 거리로 보였는데, 할머니가 치료 중인 불편한 다리로 저 병원을 다니시는 게 얼마나 고역이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저기까지 걸어 다니시는 거예요? 저 병원 맞죠?”
“맞아, 저기.”
“······. 여기서 저기까지 얼마나 걸려요? 힘들지는 않으세요?”
“뭐 한 이삼십 분 걸린다 생각하고 천천히 걷지. 안 힘들어. 평소에는 차가 많아서 복잡한데 오늘은 별로 없네.”
예전처럼 팔짱을 끼고 할머니를 부축했다. 식당은 얼마 걷지 않아 도착한 골목에 있었다. 병원보다 역에 훨씬 가까운 위치였다. 식당 내부는 굉장히 깔끔하고 밝고 넓었다. 130명은 수용하지 않을까 싶은 규모였다. 식사 시간이 아니라 손님이 저 멀리 한 테이블에만 있었지만 내부는 따뜻했다. 두껍고 튼튼하고 밝은 색상의 원목 식탁에 마주 앉아 주문을 했다.
뜨거운 국밥을 한참 먹고 있는 와중에 불판이 준비되었고, 불판 한가운데에 귀여운 사이즈의 뚝배기 된장찌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머, 세상에, 요즘엔 이런 게 다 있네.”
할머니가 얼굴을 된장찌개 가까이에 가져가며 말했다.
“저도 처음 봤어요.”
할머니가 혼자 세상에 뒤쳐진다는 기분일까 봐 곧장 말했다. 곧 고기가 나왔고, 돼지갈비가 불판 위에서 치익 치익 맛있게 익어갈 즈음, 할머니는 몸을 의자에 붙이고 말했다.
“나는 배가 불러서, 서너 점 맛만 보면 돼.”
“고기 많은데요? 할머니도 많이 드세요.”
“아냐. 나한테는 많아.”
할머니는 내게 고기를 거의 다 주었다.
“국밥도 맛있고 고기도 맛있어요. 할머니도 맛있으세요?”
할머니는 상냥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진심으로 웃고 계시다는 게 느껴져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대화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최근 집에서 잡담을 거의 안 나누다 보니 갑자기 시간의 흐름과 중요한 사건들을 건너뛰고 주변의 일을 얘기하기도 어색했다. 한두 번의 대화 단절은 이후까지 이어지기 쉽다는 걸 지독히도 느끼고 있었다. 감사한 것과 대화를 하며 친근하게 지낸다는 것이 이렇게 분절되어 공존할 수 있는 것이라니, 생각에 잠기는 중에는 젓가락질이 느려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