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꼰대 #공무원 #갑질 #낄끼빠빠
아~ 눈부셔
하늘은 유난히 파랗다.
손차양하고 하늘을 본다. "덜컹!" 교도소 철문 열리며 막 출소하였건만 맞이해 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 “아, 어디로 가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본다.
나랏밥 먹는 공무원으로 ‘39년 살이’다. 비유가 적절하진 않지만 주어진 틀 안에서 살았다. 39년 만에 또 다른 세상 밖으로 나온다. 밖의 세상은 더 냉혹하고, 더 살벌할지도 모른다.
퇴직하는 날, 교문 나서며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뭘 하며 살지?” 막막하니 텅 빈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은 아닐런지.
야생에 던져질지 몰라, 생존 방법을 찾아야 해.
그럼, 공부를 해야 하나. 공부를…. 3박 4일 ‘공무원 퇴직예정자 연수’를 신청했다. 그런데 연수 신청자가 너무 많아 탈락이란다. 이거 참, 공부 좀 하겠다는데 그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네. 연수를 받지 못하면 퇴직할 자격도 없는건가? "안되지. 그건 절대 안 되지!" 난 이미 정년퇴직이란 골인점을 정해놓고 마지막 힘을 다해서 있는 힘껏 뛰고 있는 셈이다. 더 뛰라고 하면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중간 포기자가 있어 겨우 연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런 행운이….' 다행이다.
기쁨도 잠시, 엉뚱한 고민거리가 생겼다. 연수원 입소하면 3박 4일 동안 무작위로 선정된 2~3인이 한 방에서 지낸단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창문 좀 열어도 될까요?" 또는 “저, 씻어도 되나요?” 화장실 가는 것까지 일일이 물어보고 허락받아야 하는 이 상황이 얼마나 웃픈 일인가. '드렁드렁, 코까지 골면 어쩌지?' 잠잘 때까지도 남 눈치를 봐야 한다니…. 그래도 여기까지는 다 같은 입장이라 서로 이해할 수 있다 치자.
내가 교장이라는 것이 문제다.
학교 선생님이나 행정실 직원과 한 방에 배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다 쳐도 그들이 나를 얼마나 불편해 할까? “아~, 재수 없어. ○○학교 교장하고 같은 방 썼는데 말이야~.” 이 한마디면 게임 끝이다. 교장인 것도 죄가 되나? 그렇다. 죄인도 그런 죄인이 없다. ‘누가 뭘 해달라고 했나?’ 그래도 교장이란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기 충분하다.
“교장으로 퇴직하면 혼자 지내기 십상이지.”라는 말이 확, 와닿는다. 내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나를 끼워주지 않을지 모른다. 거절당할까 봐 같이 놀자는 소리를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애써도 교장은 교장이란다. 결국엔 방값을 더 지불하고 사정사정해서 1인실로 옮겼다. 주홍글씨처럼 '민폐녀' 딱지가 붙을까 봐.
참, 어렵다 어려워.
친절한 영임 씨!
자칭 '친절한 영임 씨'다. 내가 먼저 말 걸어주고, 웃어주자. "김 선생! 이리 와 보세요." 성으로 부르지 않고 이름 붙여 "김○나 선생님! 저 좀 뵐까요?" 말건다. 요즘 그런 세상도 아니지만 손님 접대한다고 차 내오게 하는 일 없다. 바리스타 자격증은 없지만 외부 손님이 오거나 교장실에서 협의회가 있을 때는 내가 직접 커피를 내린다. 가끔은 '배달의 민족' 대신 내가 직접 교무실로 커피 배달도 간다.
우리 학교 교장실 문은 늘 한 뼘 정도 열려있다. 혼자라 좋기도 하지만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싫다. 나도 그렇지만 선생님들이 문밖에서 "흠~ 흠~" 헛기침하고, "똑똑!" 노크하는 일련의 과정을 생략하고 싶다. 그냥 복도 지나다가 빼꼼히 들여다보며 “뭐 하세요?” 말 걸어 주길 바란다.
'낄끼빠빠' 낄 자리에 끼고, 빠질 때 빠진다.
교장으로서 나의 모토다. 회식이나 송별회 자리는 1차만 끝내고 빠져나온다. ‘이순신 장군’ 마지막 명대사처럼 “교장이 떠나는 것을 알리지 마라.” 조용히 사라진다. 직장인들은 회식자리나 밥 먹을 때 상사가 업무 이야기를 꺼내서 불편하단다. 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억울하다. 회식 자리에서 제발 업무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학교, 학생, 교실, 수업, 시험….' 등 금칙어를 정해두고 이 단어를 꺼내면 벌금을 물리겠다고 미리 단도리한다. 그런데도 선생님들은 이내 직업병 도지듯 학교이야기, 학생이야기뿐이다. 선생님들이 자꾸 업무 이야기를 해서 교장은 괴롭다. 밥이 안 넘어간다. 커피가 쓰다.
공문 작성에 오류가 있어 교육청으로 수정 발송해야 하거나, 제 때 마감 날짜를 챙기지 못해 학사 운영에 난감한 상황이 종종 생기기도 한다. 교장실 들어서는 선생님들 표정만 봐도 '무슨 일이 생겼고만.' 금방 직감할 수 있다. 그에 따라 '교장선생님은 이 정도 화를 내겠지?' 나름 척도를 염두하고 들어오는 것 같다. "교장선생님 어쩌죠?" 어렵게 말 꺼낼 때 “에이~ 그럴 수도 있지요.”, “죽고 살 일도 아닌 데요. 뭘~” 내 반응이 기대치 이하인지 오히려 선생님들이 당황하는 눈치를 보이곤 한다. '그 까짓꺼'라고 좀 쿨한 척 해도 무슨 소용인가.
교장은 꼰대라는데….
교사보다 교장 퇴직자 삶의 질이 더 떨어진단다.
누가 지어낸 말인지는 모르지만 퇴직하고 난 이후에도 교장 티를 내고, 교장 행세를 하기 때문이란다. “흥, 언제까지 자기가 교장인 줄 아나?” 얄미워서라도 곁을 내주기 싫단다. 주는 것 없이 얄미운가 보다. 그러니 혼자서 고립무원 신세겠지. 어쩔 수 없다. 꼰대 소리 안 들으려면 배워야지. 꼰대병을 고칠 수 있다면 돈 주고라도 배워야지. 더 몸 낮추는 것을….
그리고, 그리고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혼자 노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