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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영임 Sep 15. 2024

교장이 갑이라고요?  갑을병정… 졸이죠. 쫄!

#교장 #갑을관계 #갑질 #퇴직 #은퇴 #학교


빨리 일어나 학교에 가야지?


엄마가 아들을 깨운다. 아들이 이불을 뒤집어쓴다. “얼른 일어나라니까!” 한번 더 다그친다. “학교 가기 싫다니까요!” 아들이 이불 킥 날리며 투정이다. “너는 교장이잖니?” 엄마가 나무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딱, 내 이야기다. 

학교 가기 힘든 건 교장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학생 사안이 뻥뻥 터지고, 선생님들과 업무로 첨예하게 대립될 때는 학교 가는 게 겁나고 무섭기까지 하다.      





북한이 왜 남한을 못 쳐들어오지 알아요?

 

대한민국 평화가 유지되는 건 순전히 중2 덕분이다. 

북한의 '김○○'도 남한의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무서워서 감히 내려올 엄두를 못 낸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아이들이 ‘평화유지군’인 셈이다.

학교폭력, 안전, 진로진학 등 학생 교육을 위하여 다양한 외부 강사들이 학교를 찾아온다. “강사님! 아이들한테 상처받지 마세요.” 교실에 들어가기 전 미리 일러둔다. 우리 아이들은 저명한 강사나 대학교수라고 봐주는 법이 없다. 공손하게 경청하기는 고사하고 엎드려 자거나 “뭐래?” 토 달지도 모른다. ‘너는 떠들어라’하는 식으로 자기네들끼리 낄낄거리며 장난치는 것도 다반사일 것이다. 심한 경우엔 “언제 끝나요?” 대놓고 지겹다는 의사 표현을 하는 녀석도 있을 것이다.

“강사님 강의 탓이 아니에요. 우리 아이들이 중학생이잖아요.” 성장과정 중 마땅히 거쳐야 하는 ‘사춘기’ 다. '질풍노도'의 시기다. 무서울 게 없는 나이다. 한 명 한 명이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돌진하는 용병들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언제 어떻게 터질지 도통 감 잡을 수 없다. 그렇다고 점프해서 이 단계를 생략하고 어른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학생들을 잘 모셔야 한다.


      



교장도 상처받는다. 교장도 아프다.



어디 학생들 뿐인가? 내게 더 어려운 고객은 선생님들이시다.

나부터 선생님들은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다. 똑똑하지 않은 교사가 어디 있겠는가? 자존심 없는 선생이 어디 있으랴. 

선생님들은 교감, 교장선생님 눈치 보느라 힘들다고 한다. 교장은 억울하다. 요즘 선생님들이 하라는 대로 소신 없이 구분고분 따르는 사람들인가? 더구나 젊은 MZ세대 선생님들이 누구 눈치 보며 사는 세대인가? 학교에는 학생들이 있다. 그야말로 미성년자들 아닌가. 알아서 척척 하길 바랄 수 없다. 선생님 손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꼭 맡아서 해야 할 업무가 있다. “선생님께서 어떻게 좀 맡아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한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 학교에도 이 세 가지 질문인 ‘3요?’가 예외일 수는 없다.  


교장실 문 앞에서 늘 갈등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문 앞에서 문지방을 "넘어갈까? 말까?" 고민한다. 선생님을 찾아가서 “말을 할까, 말까?" 문 밖으로 한발 내디뎠다가 “서운하게 받아들이면 어쩌지?” 내딘 발을 거둔다. “아니지 내가 교장인데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당당히 나갔다가 “에이~ 지금 수업시간일 텐데….” 슬그머니 돌아선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사회 전반에 '갑질 문제'가 종종 대두된다. 

외부 전문 강사를 불러 전 교직원이 꼭 들어야 하는 필수 연수 중 하나가 ‘갑질문화’다. 상급자인 교장이 갑질을 했는가? 체크리스트와 더불어 갑질신고 절차와 매뉴얼까지 가르쳐 준다. 교장 때문에 ‘서운했나? 기분 나빴나?’ 잘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즉, 교장인 나를 예의주시하고 ‘갑질이다’ 싶으면 즉시 신고하라는 것이다.

더불어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예방교육'도 있다. 필수 교육 대상자는 교장이다. 사전에 공부를 시키겠다는 것이다. 전문지식과 경험이 많은 전문가(변호사, 노무사, 상담사, 인권단체 대표)로 구성된 '괴롭힘판단전문위원회'도 있다고 한다. 내가 괴롭힌 것이 아니다 억울하다고 하면 괴롭힘인지, 아닌지 판단해주겠다는 것이다. '어디 무서워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공손히 다소곳하니 부탁드려야 한다. 





20년 넘게 교사였고, 3년 교감도 거쳤고, 7년째 교장을 지내고 있다. 

두루두루 겪어 본 나로서 '갑을관계'를 따진다면 교장이 '갑'은 고사하고 ‘을’이다. 아니, 갑·을·병·정…. ‘졸’이다. 쫄!   

“내가 교장만 아니면 나도 선생님 안 봐요!” 가끔 외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이렇게 든 선생님은 아주 어쩌다 한둘이고, 좋은 선생님을 더 많이 만났다. 다행이다. ‘좋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만났느냐’가 ‘내가 잘 살았구나’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참, 잘 살았네. 인복(人福)을 타고났나 봐." 우쭐할만하다.

이제 정년퇴직이 '갑을관계'도 자연스레 마무리 지어 줄 것이다. 



아~ 퇴직하면 학교 안 가도 되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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